“불안한 눈빛들에 묵묵히 자기 몸을 내어주는 지리산 같은 사람”
2025년 08월 21일(목) 18:10 가가
김수 시인 40년 만에 첫 시집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 펴내
역사, 개인사, 자연 등 모티브…30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서 출판기념회
역사, 개인사, 자연 등 모티브…30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서 출판기념회
40년 만의 첫 시집, 암 투병, 치유 과정으로서의 시 쓰기 등….
김수 시인(본명 김형수)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한마디로 서사가 있는 삶이다. 역동적인 인생이 반드시 버라이어티 한 서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물론 비례관계는 아니지만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는 분명 의미 있는 단초가 된다.
광주 출신 김수 시인이 첫 시집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시학)를 펴냈다.
문청 시절 이후 강산이 네 번 바뀌는 40년이 흘러 작품집을 발간한 것도 뉴스지만 “2년 전 암 진단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도 놀라운 소식이었다.
21일 간단회 자리에서 만난 그는 시집을 내기까지의 지나온 세월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중절모자를 쓴 모습이 중후한 신사의 모습으로 비쳤지만, 몸이 아팠다는 것을 안 후로는 역경을 극복해온 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저에게 이번 시집은 새로운 의미를 줍니다. 80년대 초반 문청시절, 군복무 시절, 이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시를 좋아했거든요.”
83년 동인 ‘광주 젊은 벗들’에서 ‘부활’ 등을 발표하며 잠시 문청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오롯이 창작을 하며 버텨내기에는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우리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사회운동을 했고 10여 년 넘게 내일신문 기자를 하기도 했다. “80년 광주 오월을 겪은 후 삶의 정체성을 고민하다 사회운동가로 20대부터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서 그가 추구해온 가치가 어떠한지 대략 가늠이 됐다.
‘시인’이라는 명함을 ‘취득’한 것은 지난 2019년 광주전남작가회의 ‘작가’ 신인상을 수상하면서다. ‘몸으로 시를 쓰며’ 살아온 지난날의 세월은 고스란히 이번 작품집에 응축됐다.
김 시인은 “시집을 내고 굉장히 부끄러웠다. 내 시가 세상에 나와 독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며 “그럼에도 아픔 속에서 나온 시라 개인적으로는 ‘내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는”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개인적인 서사를 아는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2년 전 암 판정을 받아 장기 하나를 떼 냈지요. 10대 시절에는 폐결핵 말기 환자로 희망을 잃은 채 나주 불회사에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87년 노동자투쟁 때는 민주광장에서 시위를 하다 최루탄을 맞아 기절한 적도 있었구요.”
아마도 그는 시인이 될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몰랐다. 고전적인 시인의 상에 가장 어울릴 법한 시난고난한 인생의 곡절을 겪었으니 말이다.
이번 시집에는 모두 54편의 시가 실렸다. 1부는 암 판정 후 지리산 둘레길 등 여행을 하며 쓴 시들이, 2부는 세월호, 5·18 등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3부는 개인사의 단상이나 사유를, 4부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성찰 등을 포괄한다.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대변한다는 말을 방증하듯, 시집은 그의 생의 시간을 관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혼수품인 제 짝 장롱을/ 한 짝만 옮기는 허전함에/ 한파가 먼저 고개를 내미는 날// 비우는 삶이 아름답다며/ 깨끗한 집으로 이사한다며/ 앞날을 희망으로 채울 수 있다며/ 애써 좋아하는 당신의 살가운 마음에/ 무기력한 진실의 시간을 가늠해본다(후략)”
표제시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는 부인을 향한 애틋함과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자책과 회한을 넘어 현실의 결핍을 담담히 승화하는 부부의 정이 이면에 드리워져 있다.
시인인 백수인 평론가는 “고백은 언어 너머의 참회이자, 말하지 못한 것을 통해 더 깊이 말하는 역설적 수행의 언어이다”며 “시적 화자는 불안전한 삶을 통해 완전한 마음의 태도를 모색하는 생의 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평한다.
아침마다 시집에 수록된 시 한편씩을 부인과 함께 낭송한다는 그는 “앞으로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손끝이 아닌 마음에서 발현되는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시나브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세포처럼 나의 작품도 기억에서 사라지겠지만 단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슬픔에 위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길 위에서 오랜 결핍을 견뎌온 응어리진 통증도, 닿을 수 없는 낮은 사랑도, 내 안의 파랑새도 놓아주어야겠지만요.”
김완 시인(광주평화포럼이사장)은 이번 작품집에 대해 “기댈 곳 없는 메마른 어깨들과 마음 둘 곳 없는 불안한 눈빛들에게 묵묵히 자기 몸을 내어주는 지리산 같은 사람이다”며 “시를 외면할 요소가 많은 요즘에도 그의 말은 시대에 공명한다”고 말한다.
이승철 시인(한국문학사 연구가)은 “역사의 아픔과 ‘시대정신’에 충실한 그의 시를 읽어가노라면 우리는 ‘고요의 집 한 채’를 선사 받을 수 있다”고 벗의 작품집을 상찬한다.
한편 시집 출판기념회가 광주평화포럼 주최, 광주전남작가회의와 오월문예연구소 후원으로 오는 30일 오후 4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다목적강당에서 열린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김수 시인(본명 김형수)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한마디로 서사가 있는 삶이다. 역동적인 인생이 반드시 버라이어티 한 서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물론 비례관계는 아니지만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는 분명 의미 있는 단초가 된다.
문청 시절 이후 강산이 네 번 바뀌는 40년이 흘러 작품집을 발간한 것도 뉴스지만 “2년 전 암 진단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도 놀라운 소식이었다.
21일 간단회 자리에서 만난 그는 시집을 내기까지의 지나온 세월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중절모자를 쓴 모습이 중후한 신사의 모습으로 비쳤지만, 몸이 아팠다는 것을 안 후로는 역경을 극복해온 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83년 동인 ‘광주 젊은 벗들’에서 ‘부활’ 등을 발표하며 잠시 문청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오롯이 창작을 하며 버텨내기에는 어려웠다고 했다.
‘시인’이라는 명함을 ‘취득’한 것은 지난 2019년 광주전남작가회의 ‘작가’ 신인상을 수상하면서다. ‘몸으로 시를 쓰며’ 살아온 지난날의 세월은 고스란히 이번 작품집에 응축됐다.
김 시인은 “시집을 내고 굉장히 부끄러웠다. 내 시가 세상에 나와 독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며 “그럼에도 아픔 속에서 나온 시라 개인적으로는 ‘내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는”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개인적인 서사를 아는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2년 전 암 판정을 받아 장기 하나를 떼 냈지요. 10대 시절에는 폐결핵 말기 환자로 희망을 잃은 채 나주 불회사에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87년 노동자투쟁 때는 민주광장에서 시위를 하다 최루탄을 맞아 기절한 적도 있었구요.”
아마도 그는 시인이 될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몰랐다. 고전적인 시인의 상에 가장 어울릴 법한 시난고난한 인생의 곡절을 겪었으니 말이다.
![]() ![]() |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대변한다는 말을 방증하듯, 시집은 그의 생의 시간을 관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혼수품인 제 짝 장롱을/ 한 짝만 옮기는 허전함에/ 한파가 먼저 고개를 내미는 날// 비우는 삶이 아름답다며/ 깨끗한 집으로 이사한다며/ 앞날을 희망으로 채울 수 있다며/ 애써 좋아하는 당신의 살가운 마음에/ 무기력한 진실의 시간을 가늠해본다(후략)”
표제시 ‘끝내 미안하다 말하지 못했다’는 부인을 향한 애틋함과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자책과 회한을 넘어 현실의 결핍을 담담히 승화하는 부부의 정이 이면에 드리워져 있다.
시인인 백수인 평론가는 “고백은 언어 너머의 참회이자, 말하지 못한 것을 통해 더 깊이 말하는 역설적 수행의 언어이다”며 “시적 화자는 불안전한 삶을 통해 완전한 마음의 태도를 모색하는 생의 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평한다.
아침마다 시집에 수록된 시 한편씩을 부인과 함께 낭송한다는 그는 “앞으로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손끝이 아닌 마음에서 발현되는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시나브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세포처럼 나의 작품도 기억에서 사라지겠지만 단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슬픔에 위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길 위에서 오랜 결핍을 견뎌온 응어리진 통증도, 닿을 수 없는 낮은 사랑도, 내 안의 파랑새도 놓아주어야겠지만요.”
김완 시인(광주평화포럼이사장)은 이번 작품집에 대해 “기댈 곳 없는 메마른 어깨들과 마음 둘 곳 없는 불안한 눈빛들에게 묵묵히 자기 몸을 내어주는 지리산 같은 사람이다”며 “시를 외면할 요소가 많은 요즘에도 그의 말은 시대에 공명한다”고 말한다.
이승철 시인(한국문학사 연구가)은 “역사의 아픔과 ‘시대정신’에 충실한 그의 시를 읽어가노라면 우리는 ‘고요의 집 한 채’를 선사 받을 수 있다”고 벗의 작품집을 상찬한다.
한편 시집 출판기념회가 광주평화포럼 주최, 광주전남작가회의와 오월문예연구소 후원으로 오는 30일 오후 4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다목적강당에서 열린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