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로 풀어보는 화학의 풍미…한권의 과학에 취하다
2025년 07월 25일(금) 00:00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들뜨는 밤엔 화학을 마신다- 장홍제 지음
화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 가운데 술의 본질인 알코올을 빼놓을 수 없다. 인류가 오래 전부터 마셔온 와인. <클립아트코리아>


제목부터 끌리는 책이 있다. 물론 책은 ‘제목장사’라는 말이 있다. 제목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고 판매에 영향을 준다.

제목은 그럴싸했지 내용은 기대 이하인 책들도 많다. ‘낚였다’는 표현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색적인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흥미롭고 풍성하다면 그야말로 ‘득템’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들뜨는 밤엔 화학을 마신다’는 제목에 끌려 선택한 책이다. 책을 처음 본 순간 어떻게 화학을 마실까, 라는 호기심이 일었다. 일상과 친숙한 대상 가운데 마실 수 있는 대표적인 ‘화학’은 바로 술이었다.

“과학과 실험 속에 낭만이 살아 숨 쉰다고 믿는 화학자”인 광운대학교 장홍제 화학과 교수가 저자다.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술은 결국 화학”이라고 본다. “술을 마시는 순간만큼은 과학자보다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 한다”며 “이 책은 화학에서 용액(Solution)으로 쓰이는 술의 주요한 성분 에탄올이 인생의 해답(Soiution)이 되기까지” 술과 관련한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화학은 대중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분야다. 연금술에 관한 이야기, 의약품과 마약에 대한 이야기, 노벨상의 기원이 된 폭탄에 대한 부분 등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이다.

술은 화학과 각별한 관계에 놓여 있다. 순도 높은 알코올을 제조하기 위한, 독한 술을 얻기 위한 증류는 간단한 실험기법 가운데 하나다.

최초의 술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 먼저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과한 과일을 먹고 취해 비틀거리는 원숭이의 모습, 이른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의 형태가 그것이다. 원숭이의 행태에 궁금증이 인 인간은 향기에 끌려 숙성된 과일을 먹었고 이내 숙취를 경험하기에 이른다.

인간이 술을 빚는 장면은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에도 기록돼 있다. 밀폐할 수 있는 토기와 뚜껑을 만들 수 있었다는 의미다. 물론 수메르의 시에는 보리빵을 이용해 맥주를 제조한 내용이 나와 있으며, 조지아에서는 기원전 6000년경 와인 흔적이 발견된 적도 있다.

언급한 대로 인간이 술을 마시게 된 계기는 발효된 과일의 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발효된 과일은 달짝지근하면서도 안전하다. 안전하게 보관도 가능하며, 체내에 들어간 알코올은 화학적 작용을 통해 분해된다.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했다. 즉 사람은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모든 술은 에탄올을 함유한다. 과일에는 에탄올 성분이 있으며 배, 사과, 포도 등은 완숙됐을 때 비알코올 맥주에 비해 약 0.05% 에탄올을 함유한다.

기호식품인 술은 몸속에 들어가면 다양한 작용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감에 자극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춤추게 만드는 작은 우주와 같다”는 표현은 술의 향기는 ‘자연의 선물’이며 맛은 ‘인간의 예술’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보기 좋은 술이 먹기 좋다’는 말도 있다. 초창기 맥주는 불투명하고 찌꺼기들이 섞인 모습이었으나 중세시대 맥주순수령을 기점으로 품질도 균일하고 황금빛을 얻을 수 있었다. 황홀한 술의 빛깔은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녹색요정’으로 불리는 압생트를 자주 마신 이는 반 고흐였다. 술은 그의 불안한 정신뿐 아니라 강렬한 화풍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믈리에가 와인, 위스키를 마실 경우 순차적으로 몰입하는 순서가 있다. 먼저 눈으로 색상을 보고 이후 향, 맛, 목 넘김이 그것이다. 취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종합적인 예술이자 미식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술에 대한 이색적인 내용과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도 많지만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에탄올에 의해 인간의 본질인 뇌의 억제가 억제된다면 적어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선까지 제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술을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휴머니스트·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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