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의 교훈 - 박성천 문화부장
2025년 01월 05일(일) 21:30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시작된 지도 벌써 일주일 여가 지났다. 올해는 60간지 중 42번째 되는 푸른 뱀의 해다. 을(乙)은 푸른색을, 사(巳)는 뱀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뱀은 지혜와 영민을 상징하는 동물이자 변혁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나오는 뱀과 관련된 서사는 다소 결이 다르다.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부정적 대상으로 그려졌다. 지혜가 승하여 교활함으로 변한 것인데, 그만큼 뱀이 명민하고 상황판단이 빠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뱀 관련 지명이 적지 않은데 전남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전남도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210여 곳 가운데 전남이 42곳으로 파악됐다. 마을 27곳, 계곡과 섬 각각 5곳, 산 3곳, 골짜기 2곳이 뱀 지명과 연관이 있었다. 뱀처럼 긴 모양의 섬인 ‘장사도’, 구불구불한 형상의 ‘뱀골’ 등이 대표적이다.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의 사도는 뱀의 지형이며, 마을 앞 와도라는 섬은 뱀이 개구리를 잡기 위해 건너가는 모습에서 비롯됐다.

우리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푸른 뱀의 해는 1905년 을사년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당했던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다. 일본의 강압에 못이겨 고종이 조약에 서명을 했던 데서 을사늑약(勒約)이라고도 한다. 우리말 ‘을씨년스럽다’라는 어휘가 ‘을사’(乙巳)년에 발생한 변고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을 만큼 당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민초들은 국권침탈을 ‘을사년스럽다’고 표현했으며, 이후 이 말은 ‘을씨년스럽다’로 변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를 정의하는 말 가운데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이 있다. 작금의 ‘비상계엄’은 박정희 유신독재,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와 닮았다. 120년 전 을사조약은 ‘을사오적’이라는 매국노들의 반민족적 행위에서 비롯됐다. 역사는 오늘의 ‘비상계엄’ 또한 국회와 국민의 기본권을 침탈하기 위해 대통령과 정치군인들이 벌인 ‘쿠데타’로 기록할 것이다.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경고,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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