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무관한 능력-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5년 01월 03일(금) 06:00 가가
2024년 12월 29일 아침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소식을 접했다. 승객들이 안전하게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나의 기도에 응답은 없었다. 이틀 전 라오스에서 제주항공 여객기를 이용해서 귀국한 외손녀 소식을 듣지 못하셨던 외할아버지는 급한 마음에 확인 전화를 하셨다. 안도의 한숨을 내셨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가시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사고의 원인 규명을 해야 할 것이고 공항의 문제점도 파악하여 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하지만 그 많은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가족들의 눈물을 닦고 위로해 주어야 할 이 나라의 정부가 제대로 서 있지 못하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라오스에서 4개월의 단기 선교를 마치고 귀국한 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라오스의 젊은이들이 국가와 정부를 극도로 싫어 한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다른 나라에 속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잘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해되기도 하였다. 라오스는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에 둘러싸인 내륙국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적으로 월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농경에 의지해야 하고 젊은이들은 주변국에 가서 일을 해야 하는 처지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K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는 나라가 되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층 더 위상을 높여주는 위대한 업적이 되었다. 그런데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있던 날 우리나라에서는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 얼마나 역사의 아이러니란 말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통령 부부를 보면서 성경의 인물이 자주 떠오르곤 하였는데 바로 아합과 이세벨이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왕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게 되는데 북이스라엘의 7대 왕이 바로 아합왕이다. 그는 선대왕들보다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였는데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했다. 그녀의 친정은 바알우상의 왕국이었으므로 그녀는 아합에게 시집와서 사마리아에 바알을 위한 사당을 만들고 사당 안에 바알의 제단을 쌓았으며 또 다른 우상인 아세라를 만들어 섬겼다. 이세벨은 남편 아합 보다 한 술 더 뜨는 악녀 중의 악녀로서 마치 악을 행하기 위해 태어난 여인 같았다.
왕궁을 우상숭배의 전당으로 만든 것처럼 대통령실을 무속이 판을 치는 장소로 만들어버렸다. 그 시대와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아합왕 때는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어 그러한 악을 통쾌하게 물리쳤는데 지금은 강하게 쓴소리 한 번 못하는 것 같다. 성경에는 엘리야가 이세벨의 바알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통쾌하게 물리치고 그들 모두의 목을 베어 처단하는 장면이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사건보다 더 큰 승리가 아닌가 싶다. 엘리야라는 선지자와 사백오십 명의 바알선지자가 갈멜산에서 자신들의 신을 부르며 응답하는 신이 이기는 대결이었다. 이 이야기는 열왕기상 18장에 등장하는데 사백오십 명의 바알선지자들이 먼저 호들갑을 떨며 그들의 신을 부르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하지만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한다. 열왕기상 18장 37절과 38절에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귀신이 있고 무속이 어떠한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구원과 무관한 능력이다. 많은 이들이 순간의 이익과 영달을 위하여 너무 심취해 있지 않았으면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은 반드시 세상의 영광과 부귀를 가져올 것이라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핍박이나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했다.
권력과 함께 있어야 그 힘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 편에 있어야 그 힘이 영원할 것이다. 교회는 그래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나님 앞에 있어야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따끔하게 호통 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왕궁을 우상숭배의 전당으로 만든 것처럼 대통령실을 무속이 판을 치는 장소로 만들어버렸다. 그 시대와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아합왕 때는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어 그러한 악을 통쾌하게 물리쳤는데 지금은 강하게 쓴소리 한 번 못하는 것 같다. 성경에는 엘리야가 이세벨의 바알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통쾌하게 물리치고 그들 모두의 목을 베어 처단하는 장면이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사건보다 더 큰 승리가 아닌가 싶다. 엘리야라는 선지자와 사백오십 명의 바알선지자가 갈멜산에서 자신들의 신을 부르며 응답하는 신이 이기는 대결이었다. 이 이야기는 열왕기상 18장에 등장하는데 사백오십 명의 바알선지자들이 먼저 호들갑을 떨며 그들의 신을 부르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하지만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한다. 열왕기상 18장 37절과 38절에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귀신이 있고 무속이 어떠한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구원과 무관한 능력이다. 많은 이들이 순간의 이익과 영달을 위하여 너무 심취해 있지 않았으면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은 반드시 세상의 영광과 부귀를 가져올 것이라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핍박이나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했다.
권력과 함께 있어야 그 힘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 편에 있어야 그 힘이 영원할 것이다. 교회는 그래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나님 앞에 있어야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따끔하게 호통 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