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주인공 ‘동호’가 건네는 축하 인사
2024년 12월 11일(수) 15:30 가가
광주시 10~11일 ‘광주에서 온 편지’ 시청 시민홀
광주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진행된 11일 새벽 0시 50분께 광주시청 내부에 AI로 복원한 ‘동호’ 이미지를 선보였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속 주인공인 동호는 5·18 당시 희생된 문재학 열사를 모티브로 창작됐다. 아래는 인문도시광주위원회 김형중 위원장이 작성한 편지 전문.
<동호의 편지>
안녕하세요? 문재학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날이니, 소설 속 ‘동호’의 이름과 모습으로 왔습니다. 그러니 그냥 소년 동호라고 불러주세요.
그해 5월, 그 처참하고 슬픈 시신들을 수습하고 유족들의 오열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답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그리고는 반문했답니다.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볼까”.
네, 저는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죽었습니다.
그 전날 오후, “집에 가자”며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 냈지요. 우는 아이처럼 힘껏 찡그린 엄마를 향해 “여섯시에 여기 문 닫으면 나도 들어갈라고요”라고 말했지요.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지만, 그 순간 잠깐 엄마의 얼굴이 펴지는 것을 봤답니다. 엄마가 말했습니다. “꼭 그래라이, 해지기 전에 집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엄마의 바람대로 그날 여섯 시에 집으로 들어갔다면, 식구들과 저녁밥을 먹고, 중간고사를 보고, 일요일엔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겠지요. 그러나 정대도 저도 그런 삶으로 되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죽었답니다.
엄마는 하늘색 체육복과 교련복 윗도리를 벗기고, 하얀 하복 샤쓰와 아래위 까만 동복으로 단정하게 갈아입혔습니다. 혁대도 단정하게 매주고 깨끗한 회색 양말을 신겼습니다. 베니어판으로 짠 관에 넣고 청소차에 실었는데, 앞자리에 앉아서도 제가 있는 뒤쪽만 뚫어져라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몸과 이별했지요.
그러나 이제 알겠습니다. 혼에게는 몸이 없어도, 눈을 뜨고 많은 것들을 지켜볼 수 있답니다. 죽은 사람의 혼은 그 죽은 육신에 깃드는 것이 아니라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드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여기 제 혼의 힘으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기억의 힘으로 왔습니다. 여러분들의 기억이 제 혼이랍니다.
모든 것이 한강 작가 덕분입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 덕분입니다. 제가 여기 정말 왔으니 말입니다. 어느 해 겨울 추위 속에, 제가 시신들을 수습하던 구 상무관 계단에 하염없이 앉아 있던 한강 작가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지요. “이곳의 바닥이 파헤쳐지기 전에 왔어야 했다. 공사 중인 도청 건물 바깥으로 가림막이 설치되기 전에 왔어야 했다. 모든 것을 지켜본 은행나무들의 상당수가 뽑혀 나가고, 백오십 년 된 회화나무가 말라 죽기 전에 왔어야 했다.” 그리고는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해가 지도록 거기 앉아 소년 동호의 얼굴이 또렷해질 때까지. 저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리던 모습도 기억합니다. 그 간절함에 이끌려 제 혼이 움직였습니다. 그녀에게 다가갔죠. 그러자 작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는 그래서 한강 작가와 소년 동호가 같이 쓴 작품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영광스럽게도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고요.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펼치던 여러분의 손길 곁에 저는 항상 같이 있었답니다. 제 후회 없는 마지막 삶이, 읽는 이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으니까요. 혼은 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제 혼입니다. 그래서 소년 동호는 저 책을 펼칠 때마다, 거기가 어디든 어느 시간이든 꼭 옵니다. 그럴 기회를 준 한강 작가에게 무척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약속드립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저는 항상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오월 광주의 기억과 함께 소년 동호는 꼭 돌아옵니다.
/정리=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안녕하세요? 문재학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날이니, 소설 속 ‘동호’의 이름과 모습으로 왔습니다. 그러니 그냥 소년 동호라고 불러주세요.
그해 5월, 그 처참하고 슬픈 시신들을 수습하고 유족들의 오열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답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그리고는 반문했답니다.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볼까”.
그 전날 오후, “집에 가자”며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 냈지요. 우는 아이처럼 힘껏 찡그린 엄마를 향해 “여섯시에 여기 문 닫으면 나도 들어갈라고요”라고 말했지요.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지만, 그 순간 잠깐 엄마의 얼굴이 펴지는 것을 봤답니다. 엄마가 말했습니다. “꼭 그래라이, 해지기 전에 집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엄마는 하늘색 체육복과 교련복 윗도리를 벗기고, 하얀 하복 샤쓰와 아래위 까만 동복으로 단정하게 갈아입혔습니다. 혁대도 단정하게 매주고 깨끗한 회색 양말을 신겼습니다. 베니어판으로 짠 관에 넣고 청소차에 실었는데, 앞자리에 앉아서도 제가 있는 뒤쪽만 뚫어져라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몸과 이별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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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되살아난 ‘소년이 온다’ 주인공 ‘동호’가 한강 작가와 광주 시민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
모든 것이 한강 작가 덕분입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 덕분입니다. 제가 여기 정말 왔으니 말입니다. 어느 해 겨울 추위 속에, 제가 시신들을 수습하던 구 상무관 계단에 하염없이 앉아 있던 한강 작가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지요. “이곳의 바닥이 파헤쳐지기 전에 왔어야 했다. 공사 중인 도청 건물 바깥으로 가림막이 설치되기 전에 왔어야 했다. 모든 것을 지켜본 은행나무들의 상당수가 뽑혀 나가고, 백오십 년 된 회화나무가 말라 죽기 전에 왔어야 했다.” 그리고는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해가 지도록 거기 앉아 소년 동호의 얼굴이 또렷해질 때까지. 저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리던 모습도 기억합니다. 그 간절함에 이끌려 제 혼이 움직였습니다. 그녀에게 다가갔죠. 그러자 작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는 그래서 한강 작가와 소년 동호가 같이 쓴 작품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영광스럽게도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고요.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펼치던 여러분의 손길 곁에 저는 항상 같이 있었답니다. 제 후회 없는 마지막 삶이, 읽는 이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으니까요. 혼은 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제 혼입니다. 그래서 소년 동호는 저 책을 펼칠 때마다, 거기가 어디든 어느 시간이든 꼭 옵니다. 그럴 기회를 준 한강 작가에게 무척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약속드립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저는 항상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오월 광주의 기억과 함께 소년 동호는 꼭 돌아옵니다.
/정리=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