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석대와 한병태’ - 박성천 문화부장
2024년 12월 08일(일) 22:00 가가
일상에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적잖이 일어난다. 상상 속 일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라는 표현을 쓴다. 작금의 국내 상황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에 비견된다. 소설은 있을 법한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사실은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가장 보편적인 장르다.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권력의 욕망과 실체를 그린다. 한병태는 부친의 좌천으로 서울에서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곳에는 반장인 엄석대가 아이들에게 군림하며 횡포를 일삼고 있다. 심지어 엄석대는 우등생들에게 시험지의 이름을 바꾸게 함으로써 1등을 독차지한다.
한병태는 엄석대의 행위가 폭력적이며 불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무리에 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소외감을 느낀다. 엄석대라는 ‘권력’의 강고함과 교묘한 술책, 폭력이 그만큼 견고하다. 한편으로 한병태는 엄석대의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고 반대급부로 이익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년이 바뀌고 새롭게 담임을 맡은 교사는 엄석대의 폭압적이고 불의한 행태를 알게 된다. 담임은 순치되고 ‘부역’하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들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들의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너희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아이들의 세계를 모티브로 불의한 권력의 출현과 붕괴 과정을 그렸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우리 현대사의 일면을 담고 있다. 오늘의 현실 또한 소설 속 교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폭력과 불의, 불법을 일삼고 눈감는 엄석대와 한병태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skypark@kwangju.co.kr
한병태는 엄석대의 행위가 폭력적이며 불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무리에 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소외감을 느낀다. 엄석대라는 ‘권력’의 강고함과 교묘한 술책, 폭력이 그만큼 견고하다. 한편으로 한병태는 엄석대의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고 반대급부로 이익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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