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경제 살리기 시급하다 - 윤현석 경제·행정 부국장
2024년 12월 04일(수) 00:00
가끔 시간이 날 때 거리를 걷는다.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큼 현장을 파악하는 좋은 방법은 없다. 사람이 아닌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걷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춥든 덥든 습관적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갈수록 쇠락해가는 거리의 변천을 너무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젊은이들로 북적였던 구시청 사거리의 밤은 완전히 암흑으로 바뀌었다. 거의 80%가 문을 닫았다. 구도심인 충장로·금남로, 신도심인 상무지구·용봉지구·첨단지구 등에도 임대·매매 문구를 큼지막하게 내건 상점들이 즐비하다. 점주, 종업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으며, 무엇을 하고 있을지 쓸데없는 궁금증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물가는 천정부지다. 이미 점심값 1만원 시대가 열렸고 이·미용, 세탁 등 개인 서비스 비용부터 신규 아파트 분양가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부담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금리는 높은데 화폐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가상화폐나 수도권 부동산 등 투기 자산들의 몸집은 비대해져 부의 양극화는 더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부유층들은 이러한 추세에 대응해 세금도 없이 부를 키워가지만, 그 나머지는 신세 한탄이 고작이다.



노조, 기업 유치·지역 발전 힘 모아야

세계 경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썩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전쟁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에 세계 각국이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며칠 전 중국, 멕시코, 캐나다 등에 추가 관세 10%를 예고했으며, 곧 그 파고는 우리를 덮칠 것이 자명하다. 멕시코, 터키 등 외국에 진출해 있거나 내수보다는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지역 기업들은 고금리에 관세 폭탄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광주 수출 품목 1위 반도체는 지난해와 비교해 20% 이상 수출액이 떨어졌고, 전남 경제의 ‘효자’인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매출, 세금 납부액 등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상점과 기업은 지역 경제를 떠받드는 기둥이다. 이들이 거리를 활력 있게 만들고, 지역민을 고용해 임금을 지급하며, 세금을 납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지난 6월부터 기업인, 경제 관련 기관장·단체장 등 경제인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경제 현장에서 기업, 기관, 단체를 이끌어온 그들에게 이 지역의 미래가 경제적으로 보다 나아지기 위한 혜안을 구하고자 함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지역민·지방자치단체의 친기업 정서, 경제적 사고, 기업·자본 유치를 위한 혁신적인 정책, 정부의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조치 등을 바라고 있었다. 가장 먼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조가 사회적 책임, 지역의 미래 등을 저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존재감, 영향력 과시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위해 지역민 모두의 지지를 받고 현대자동차 위탁이라는 혜택을 받아 출범한 지역기업이 5년여 만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부흥에 국가 재정 아끼지 말기를

지역 성장·발전, 기업의 유치·정착·성공에 노조가 적극 협력하고 그 안에서 역할과 몫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정치·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고, 경제적 이슈에 둔감한 지역 내 분위기도 일신해야 한다. 주택·사무실 공실률 및 멸실률, 미분양 주택, 수출액, 취업률, 기업 및 투자 유치, 상장기업 동향 등의 정보가 보다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지역에 가져다줄 현재 또는 미래 이익이 확실하게 공개 검증된 경우 명분은 과감히 뒤로 미룰 용기도 필요하다.

수도권·영남권에 정부 재정을 집중시켜 특혜·압축 경제로 성장에 성공한 우리나라는 이제 국가균형재정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이끌어야 한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외면해왔던 지방 대도시·중소도시·읍시가지의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 서울의 80% 수준을 갖추게 해야 할 것이다. 2차 공공기관 이전, 대학·민간기업에 대한 혁신적인 이전 인센티브 제공으로 지방 인구 증가를 이끌고 동시에 대중교통의 질 향상, 명품 가로 조성 등을 통한 도보 인구 창출로 거리의 상점들이 활력을 되찾게 지원해야 한다.

중세 유럽은 무역, 식민지 개척 등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지방 도시에 투자했다. 그 덕에 수백 년이 지나도 유럽의 다양한 도시들이 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리고 몇 백년 미래를 위해 지방의 상업·산업을 부흥시키는데 국가 재정을 쏟아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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