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얼굴 보는 날 - 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 전 카트만두대학교 객원교수
2024년 05월 07일(화) 22:00
오늘은 52회째를 맞는 ‘어버이날’이다. 1956년부터 17년간은 ‘어머니날’로 지켰는데 아버지를 소외시킴이 옳지 않다하여 1973년에 ‘어버이날’로 바꾸었다.

네팔에 살던 어느 날, 매주 만나는 청년들이 느닷없이 ‘어머니 얼굴 보는 날’(아마꼬 무크 헤르네 딘)이라 찾아왔다고 해서 잠깐 어리둥절했다. 그날이 네팔의 ‘어머니날’이었는데 양력 4월이나 5월로 네팔력이라 해마다 다르다. 간단하게 ‘어머니날(아마꼬 딘)’이라 하지 않고 구태여 ‘어머니의 얼굴 보는 날’이라며 찾아뵙는 행위를 확실히 한 것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물론 빈손으로 와서 어머니의 얼굴만 보고 가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어머니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데 내게는 자기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한 아름씩 가져 오곤 하였다.

무언가 선물로 보답하려는 자녀들이 있기에 이를 기대하는 마음이 부모들에게도 있기 마련이다. 캐나다의 한 쇼핑몰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머니날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좋은 식사(25%)에 이어서 상품권(16%), 휴가(13%) 등이었고 꽃은 가장 끝 순위였다고 한다.

한국 어버이들이 바라는 가장 좋은 선물은 단연 현금이다. 라이나생명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순위가 현금(56%)이었고 친필 편지(18%), 효도 관광(14%), 가전제품(8%), 공연·영화 티켓(4%) 순이었다. 현금과 친필 편지의 차이는 38%나 된다.

반면에 SBS가 조사한 어버이날 최악의 선물은 책(55%), 케이크(15%)에 이어 꽃, 그리고 전화(9%)였다. 책 선물이 싫은 이유는 시력이 나빠져 책 읽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좀 더 솔직한 이유는 나이 들어도 배우며 살라는 은근한 압력으로 느껴져 거부감이 든다는 것이다. 책과 케이크의 40% 격차는 책보다 케이크가 훨씬 좋은 선물임을 보여준다. 최악의 선물 목록에 오른 전화는 어버이날 선물로는 기대 이하나 섭섭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케이크나 꽃보다 자녀들의 목소리 듣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나타낸다.

현금이 최악의 선물 목록에 들지 않은 것은 현금이 가장 선호하는 선물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준다. 그렇다면 어버이날에 얼마 정도가 적당할까? 인터넷에는 이미 이에 대한 자료가 있다.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가 서울과 경기,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40세 미만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어버이날 적합한 금액은 20만원이란다. 이는 미국소매인협회가 조사한 172달러(약 23만원)와 단순 비교하면 얼추 비슷하다.

어버이날의 공휴일 지정은 오랜 논란거리인데 어떤 부모님들에게는 이날이 법정 공휴일이 아니어서 다행일 수도 있다. 세대 간의 불화나 갈등으로 왕래는커녕 어떤 연락도 없고 하루 종일 우두커니 공원에 앉아 소일하는 수많은 노인들에게는 어버이날은 일 년 중 가장 쓸쓸하고 가슴 아픈 날이다.

어버이날에 네팔처럼 어머니 얼굴을 뵈러 방문을 못 해도 괜찮다. 낳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사랑한다는 따뜻한 전화 한 통과 계좌 이체된 20만원은 이 특별한 날에 부모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다. 내년에는 전화 받을 부모님이 안 계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부모님 얼굴을 뵙고 현금 봉투를 드린 후 발톱을 깎아드리는 것이다. 연로한 부모님의 허리는 뻣뻣하고 눈은 침침하며 손이 무뎌서 손톱깎이로 자신의 두꺼워진 발톱을 깎기가 가장 곤혹스러운 일 중의 하나라고 한다.

자녀들이 품안에 있을 때는 미처 몰랐으나 뒤늦게 새록새록 떠오르는 후회와 자책이 많다. 가장 가까이서 사랑과 함께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주는 사람이 부모이기도 하다. 어버이날에 받는 선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부모 노릇이 서툴러서 자녀를 이해 못하고 마음 아프게 한 것들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등 서로 마음을 열고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는 시간, 감사와 용서, 웃음과 눈물, 화해와 감동이 있는 어버이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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