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출신 하호인 시인 시집 ‘이 비 그치고 햇살 돋으면’ 발간
2023년 10월 23일(월) 11:55
“오래 걸었습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주름지고 낡아지는 것들 그대로 따듯하게 다독여 주고 싶습니다. 여린 풀꽃 한 송이도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어, 담담히 건네지는 위로가 있듯 누군가에게 그런 언어로 다가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시인의 말이 따뜻하고 깊이가 있다. 시인은 낡은 것들 그리고 여린 풀꽃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담담한 위로의 언어를 시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광주 출신 하호인 시인이 시집 ‘이 비 그치고 햇살 돋으면’(상상인)을 펴냈다.

‘달아난 못’, ‘골리앗의 도시’, ‘흰빛을 터트리는 아침’, ‘맹물의 속성’ 등 모두 50여 편의 시들은 기억과 시간, 존재에 대한 단상 등으로 풀어낸다. 시의 전편에 흐르는 예민하면서도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는 시인의 성정이 발현된 결과물이다.

조선의 시인은 “번잡한 세속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조용하게 몸부림친다. 말을 세우는 정신이 올곧다”며 “시의 완성도를 위해 느낌과 감성을 전략화하지만 시에 갇히지 않으려고 모호함과 고리타분함을 배척한다”고 평한다.

“자두꽃 핀 골목길 돌아들면 그리운 빈집// 서까래는 기울고 벽이 허물어지면서/ 순한 두 눈만 껌벅이는 게으른 손처럼, 열린 봉창으로 바깥만 내다보고 있다// 손대지 못하고 미루던 일들로/ 뼈만 남은 집/ 구석구석을 쓰다듬는 바람// 파킨스병을 앓던 부실한 다리로 오르내릴 때/ 흔들리던 몸을 단단하게 지지하던 툇마루가/ 어머니의 기억과 함께 부서지고 있다…”

위 시 ‘흔들리며 피는 집’은 빈 공간이 ‘어머니의 기억’으로 대체되고 있다. 눈 앞에 펼쳐진 집을 바라보는 화자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또렷하다. 흔들리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기억은 화자의 내면에 드리워진 어떤 심지처럼 보인다.

이성혁 문학평론가는 ‘내밀한 기억과 시의 접착력’이라는 해설에서 “이 시집에는 시간에 대한 그의 예민한 감성과 의식을 드러내는 시가 많다”며 “ 그 시는 현재에 구멍을 내는 기억의 흔적에 시적 시선을 던지면서 이루어진다”고 평한다.

한편 하 시인은 2018년 ‘시에’로 등단했으며 ‘시에’, ‘시꽃피다’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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