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품격 - 임동욱 선임기자 겸 이사
2023년 10월 10일(화) 00:00 가가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홍콩 영화배우 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67)의 언행이 세간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1980년대 홍콩 누아르를 세계적 장르로 만든 주역이다. 영화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이 대표적이다. 검은 선글라스에 쌍권총, 트렌치코트에 입에 문 성냥개비, 특유의 눈빛과 분위기는 시대를 사로잡았다. 종횡사해, 와호장룡, 도신 등 드라마, 코미디, 사극 분야에서도 다양한 연기를 펼치는가 하면 캐리비안의 해적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 진출,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가 영원한 ‘따거(大哥·큰형님)’로 사랑받는 이유는 소탈하면서도 대인배적 품성에 기인한다는 평이다. 아내에게 매달 15만 원 정도의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것은 물론 버스와 지하철을 애용하고 서민 식당을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2010년 “사후(死後)에 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재산은 2018년 기준으로 9600억 원에 이른다. 또한 중국의 압박에 맞서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옹호하는 언행을 일관되게 보여 왔다.
저우룬파의 품격은 지난 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며 좌중을 주도했다. 배우 생활 50년을 맞아 늙어감에 대해 “태어나면 죽는 게 인생이라는 점에서 나이 드는 것은 두렵지 않다”며 “현재를 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산 기부에 대한 질문에는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갈 때도 빈손으로 가면 된다”면서 “하루에 밥 두 그릇만 있으면 된다”고도 했다. 홍콩 영화의 침체 이유를 놓고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중국의 검열 요구가 많다”고 중국 정부를 직격하기도 했다.
저우룬파는 노점상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장 직원, 우편배달부 등을 지내면서도 영화계의 큰 별로 성장했다. 인생 역정을 통해 빚어진 그의 품격은 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정쟁이 난무하고 민생이 표류하는 우리 현실에 깊은 울림을 준다.
/tu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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