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2년 11월 03일(목) 23:30
가을은 풀들의 키가 작아지는 계절이다. 지난여름, 사람 허리까지 울창했던 등산로 옆 풀들은 지지리도 말 안 듣는 10대 아들의 덥수룩한 머리카락 같아서, 마치 정글을 보는 듯했다. 한때는 ‘국립공원에서 저런 거 안 베고 뭐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보면 볼 수록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 자주 자주 눈맞춤하는 맛이 있었다.

그러던 길가 정글이 어느새 얌전하고 단아해졌다. 키는 무릎도 채 되지 않고 군데군데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 확실히 나무들이 빼어나게 돋보인다. 자세히 보니 나무들도 눈에 띄게 말랐다. 조금씩 색도 바래가고 있다. 먼저 색이 바랜 뒤에 이파리가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번들번들하고 풍성하고 축축하던 여름은 가고 꺼칠하고 야위고 메마른 계절이 찾아오고 있다. 그 와중에 풀들은 키까지 작아지니 풀들에게 가을은 참으로 잔인한 계절이다. 나무야 잎을 버려서 겨울을 난다지만 버릴 잎이 없는 풀들은 목숨을 버려 다가올 봄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풀들은 사라지며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무는 좋겠다. 버릴 것이 있어서. 아… 나는 왜 나무가 되지 못했을까?’

사라진다는 것, 부서진다는 것, 풍성함을 잃는 것, 색이 바랜다는 것, 윤기를 잃는 것… 모두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소회이다. 오직 1년만 사는 풀에게 “풍성함과 색과 윤기를 잃는다”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풀들에게 그것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다시는 함께할 수 없는 이별을 의미한다. 다만 수십 년을 사는 인간이 1년을 사는 풀을 대하며 그렇게 느낄 뿐이다.

삶이 1년을 넘지 못하는 풀에게 내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풀이 윤회를 믿는다면 다음 생엔 더 좋은 땅에서 더 튼튼한 풀로 태어나길 바랄 것이다. 나무는 풀들의 여러 생에 해당하는 시간을 살면서 풀들이 나고 죽는 것을 숱하게 봐 오고 있다. 이런 사실을 풀들은 꿈에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무는 풀들의 다음 생, 또 그 다음 생, 또 그 다음 생을 무덤덤하게 지켜본다.

풀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다음 생이 나무에게는 그저 내년일 뿐이다. 설령 풀이 같은 장소에 다시 태어나 작년의 그 나무를 보더라도 풀은 전생의 그 나무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풀은 나무를 자신과 같은 풀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신들과 같은 시간 속의 삶을 사는 아주 멋지고 크고 단단한 풀로 여길 것이다. 자신에게는 수십 번의 생에 해당하는 시간을 저 나무가 살아가고 있음을 풀은 알지 못할 것이다.

4차원을 사는 우리들은 한번 지나간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 우리들에게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반면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지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한다.

N차원에서 사는 존재는 오직 N-1차원까지만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4차원에서 살기 때문에 3차원까지만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4차원의 존재인 우리들은 시간을 인식하지 못한다. 만약 5차원에서 사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은 시간까지 인식할 수 있다. 마치 눈으로 보고 귀로 소리를 듣듯, 그렇게 시간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4차원을 사는 우리들의 생각처럼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일방적인 선형이 아니라면, 다음 생이란 것은 도대체 뭘까? 5차원 같은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다음 생, 또 다음 생, 또 그 다음 생… 이렇게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일 년만 사는 풀이 수백 년을 사는 나무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듯, 5차원의 삶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하지만 우리의 몸이 차원의 한계를 넘지 못할지라도, 사고는 나름의 방식으로 차원을 뛰어넘을 수 있다. 오래 전, 스티븐 호킹의 저서 ‘시간의 역사’를 본 적 있다. 문득, 왜 스티븐 호킹이 책 제목을 ‘시간의 역사’로 지었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아인스타인이나 스티븐 호킹 같은 이는 차원을 뛰어넘는 사고를 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풀의 물리적 한계를 생각만으로 뛰어넘은 어떤 풀이 나무의 존재를 상상하듯 말이다. 가을의 끝자락엔 혹독한 겨울이 닥치고 겨울을 지나면 다시 찬란한 봄이 반복된다. 마침내 가을이다. 이 가을에 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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