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 때린 값
2022년 01월 07일(금) 04:00
여자를 때리는 한국 남성들이 늘고 있는 모양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신변 보호 요청 건수도 올 한 해 처음으로 2만 건을 돌파했다. 3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해 첫 미사에서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말이다. “얼마나 많은 폭력이 여성을 향해 있는가. 이제는 멈춰야 한다. 여성을 해치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특히 배우자에 대한 폭행은 옛날에도 없지 않았다. 고려시대에는 왕비를 때려 왕위에서 쫓겨난 왕까지 있었다. 27대 충숙왕(1294~1339년)이 그 당사자다. 왕은 유년 시절을 원나라에서 볼모로 지냈고, 20세에 왕위에 올라 고려로 돌아왔다. 원의 대외 정책에 따라 충숙왕은 원나라 공주인 복국장공주를 왕비로 맞았다. 하지만 충숙왕은 왕비를 멀리하고, 고려 여인 덕비를 총애했다.

왕비는 왕에게 “후궁에 정신을 쏟지 말고 정사를 돌보라”고 말하며 덕비와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 심지어 왕이 덕비를 데리고 밀회를 즐기러 간 곳까지 쫓아가 간섭했다. 충숙왕은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왕비의 뺨을 때리게 된다. 왕비는 코피까지 흘리고 충격에 몸져누웠으나, 충숙왕은 병문안 한 번 가지 않았다.

결국 왕비는 화병(火病)으로 수일 만에 숨지고 마는데, 이 사실이 원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하지만 원나라에서 파견된 조사관들을 매수해 병사(病死)라고 허위로 보고하며 왕은 잠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 버티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결국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만다. 마누라 한 대 때린 폭력 사건으로 왕위까지 내주어야 했으니, 아마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큰 합의 대가일 듯하다.

요즘 데이트 폭력과 가정 폭력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살인으로까지 비화되는 등 흉포화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자못 크다. 이제 경찰서 관련 부서인 여성청소년계의 조직과 기능을 좀 더 강화해야 할 것 같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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