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 외면 판결’ 우리 법원 맞나
2021년 06월 09일(수) 01:00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 등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 합의 34부가 최근 각하 판결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심리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것으로, 결국 일제의 불법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은 2018년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재판부는 1965년 한국 정부가 일본의 자금 지원을 대가로 대일 청구권을 포기한 한-일 청구권협정의 문언과 체결 경위 등을 볼 때 강제징용 피해자도 협정의 적용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대법원은 청구권협정문이나 체결 과정에서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없는 만큼 강제징용이라는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는 한-일 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황당한 논리로 점철된 이례적인 판결이라 할 것이다.

더욱이 재판부는 “청구권 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에 큰 기여를 했다”고 했다. 과연 이러한 판결이 우리 법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황당하다. 게다가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결국 우리 안보와 직결된 미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등 사건 쟁점과 무관한 주장까지 판결문에 담았다. 피해자 승소 판결로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국제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역효과 등까지 고려해 보면 국가의 안전 보장과 질서 유지라는 헌법상의 대원칙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논리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법관으로서의 독립과 양심을 저버린 판단’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어떻게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거듭 상처를 줄 수 있느냐며 분개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상급심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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