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 ‘권력기관 개혁’
2021년 03월 03일(수) 04:00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검찰·경찰·국정원 등 국가 권력기관 개혁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이후 ‘특권과 반칙 없는 공정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열망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핵심 정책으로 추진했다.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검찰 개혁’에는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법무부와 검찰,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세력 간 극심한 진영 대립이 펼쳐졌고 국론 분열이 심화됐다. 끝없는 갈등에 개혁의 대의는 빛이 바랬고, 코로나 사태로 시름겨운 국민의 피로감은 더욱 심해졌다.

그럼에도 아주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월 공수처법에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또한 공수처법·경찰법·국정원법 개정안도 지난해 말 잇따라 국회의 문턱을 넘어 권력기관 개혁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



이 가운데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령들은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 점이다. 그동안 검찰은 수사·기소는 물론 영장청구 권한까지 모두 독점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왔는데, 이 중 수사권을 경찰과 나누도록 한 것이다. 검찰의 직접 수사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 참사 등 6대 범죄와 경찰공무원 범죄로 한정됐고, 나머지 범죄에 대한 수사는 모두 경찰이 맡게 됐다.

이와 함께 공수처가 지난달 21일 공식 출범하면서 검찰의 기소독점권도 분산됐다. 공수처가 전·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원·판검사 등 3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고, 대법원장·대법관·검찰총장·판검사 및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범죄에 대해서는 직접 기소할 수 있게 되면서 검찰의 독점 체제가 허물어진 것이다.

검사의 영장청구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영장심의위원회’ 제도도 새로 마련됐다. 사법경찰관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청구하지 않을 경우 광주고검 등 각 고등검찰청 산하에 구성된 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이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 조직도 대대적으로 개편된다. 국가경찰, 자치경찰, 수사경찰 등 세 개의 지휘·감독 체계로 분리되면서 ‘한 지붕 세 가족’이 되는 것이다. 기존에 전권을 행사했던 경찰청장은 보안·외사·경비 등 국가경찰 사무만 관장한다. 자치경찰은 시도지사 산하 합의제 행정기관인 자치경찰위원회가, 수사경찰은 국가수사본부장이 이끄는 구조다.

자치경찰제도 오는 7월부터 전국에서 전면 시행된다. 지역 특성과 주민 수요에 따라 맞춤형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자치경찰의 주요 업무는 생활 안전과 교통·경비 그리고 학교 폭력 및 아동·여성 관련 범죄 수사 등이다. 이에 대비해 광주시와 전남도는 컨트롤타워인 ‘자치경찰위원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

형사소송법에 검사의 수사·기소권이 명문화된 것이 1954년이었으니, 형사사법 체계의 이러한 전환은 거의 70년 만의 대변혁이라 할 만하다. 변화의 폭도 크고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우선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게 되면서 수사 속도가 빨라져 시민의 불편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경찰과 검찰에서 ‘이중 조사’를 받아야 하는 사례가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반면 ‘정인이 사건’ 등에서 보듯 경찰의 부실 수사를 막기 위한 역량 강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자치경찰에 대해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치안 행정과 지방 행정을 연계해 지방 분권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분이 국가직이고 조직·인원·예산도 사실상 그대로이다 보니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치단체에 대한 감시·견제 약화나 유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립성·공정성으로 정의 구현을



우리는 사회의 갈등 현장에서 흔히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듣는다. 흥미로운 건 ‘법대로’를 외치는 쪽이 약자보다 강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법이 약자 보호보다 강자의 기득권을 지켜 주는 뒷배 역할을 해 온 탓일 게다. 법의식 조사에서도 여전히 국민의 80% 이상이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데 동의한다. 이러한 의식의 이면에는 검찰·경찰·법원 등이 법을 집행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거나 권한 오남용으로 인권 탄압과 차별을 일삼았던 흑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권력기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개혁 대상으로 꼽혔지만, 그럴 때마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조직을 앞세워 저항해 왔다. 하지만 저항이 아무리 거세도 권한 분산을 통한 견제와 균형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이번 수사권 조정으로 검경은 지휘와 복종의 수직적 관계에서 상호 협력의 수평적 관계로 전환됐다. 오랜 진통 끝에 개혁의 기반이 구축된 만큼 검찰과 경찰은 조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사사법 시스템이 조기에 안착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해 검찰에 남아 있는 6대 범죄 수사권을 넘기는 방안까지 나오지만, 당분간은 갓 시행된 제도의 안정화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아울러 각 기관은 시민의 민주적 통제 속에 중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하면서 인권 존중과 정의 구현의 보루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도를 다듬어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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