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 실은 ‘오아시스 트럭’ 왔다” 섬 주민들 함박웃음
2025년 10월 30일(목) 19:40
섬으로 식료품·생활용품 배달하는 ‘어복장터’ 차량 따라가 보니
해수부·신안농협 ‘식품사막’ 해소 위한 시범사업…4개 섬 주 1회 순회
동네 슈퍼도 없어 그동안 배 타고 버스 타고 목포로 장보러 가느라 불편
“이거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당가?…마을까지 배달 오니 너무 행복해”
“이거 없을 때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당가?”

30일 오전 10시께, 신안군 암태면 당사도에 3.5t 저온 탑차가 도착하자 섬 주민들이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했다.

해양수산부와 신안농협이 지난달 25일부터 당사도와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등 4개 섬을 주 1회 순회하며 운영 중인 ‘어복장터’ 차량이다. 섬 지역의 식품사막화 해소를 위해 올해 시범사업으로 도입한 것으로, 동네 슈퍼 하나 없는 섬마을에 주민들의 주문을 받아 일주일 치 생필품을 담아 오는 ‘산타클로스’ 같은 탑차다.

이날로 5회차를 맞은 어복장터 사업은 총 10회 운영으로 기획됐다. 주민들이 마을 이장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주문해두면, 매주 목요일 트럭을 보내 상품들을 전달하는 식이다. 결제는 카드·현금은 물론 민생회복소비쿠폰도 가능하다.

탑차 문이 열리자 주민들은 “와” 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생수묶음부터 초코파이 한박스, 농약 3㎏, 세제 5㎏, 1.8ℓ짜리 콜라 8개 묶음, 찹쌀 10㎏, 된장 2㎏, 두부, 라면, 계란 등 생필품들이 탑차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내 찹쌀 왔지?”, “된장 두 통 주소” 하며 분주한 손길로 주문한 물품들을 수령해 갔다. 일부 주민들은 카탈로그를 펼쳐 보며 “다음 주 김장하니 멜젓 좋은 거 갖다주라”며 다음 주문할 물품을 고르기도 했다.

30일 신안군 암태면 당사도 주민들이 ‘찾아가는 어복장터’에서 주문한 물건을 계산하고 있다.
당사도 주민들은 이처럼 신선한 식품은 물론이고 생필품을 살 동네 구멍가게조차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도서 지역이라는 이유로 인터넷 주문 배송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특히 고기·채소 같은 신선식품은 배송 중 상하는 경우가 잦아서 주문할 엄두조차 못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끼니를 편하게 때울 식당, 카페조차 없다 보니 신선식품을 배송받을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섬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당사도에서 46년째 거주 중인 김명월(67)씨는 “예전에 큰 맘 먹고 인터넷으로 닭고기를 배송 주문한 적이 있는데, 이틀 넘게 걸려서 도착한데다 얼음이 죄다 녹아버려 상해버린 채 도착했다”며 “어복장터처럼 당일에 신선한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등을 차례로 방문해 보니 다른 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 섬에서 장을 보기 위해 목포로 가려면 당사도 40~50분, 대기점도 1시간 등 시간이 소요된다. 그나마 배편도 각 섬에 하루 4~5번씩밖에 없어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장을 보겠다고 목포를 갔다가 배편 시간을 못 맞추거나 기상 여건이 안좋으면 하루, 이틀 잠을 자고 와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대기점도 주민 안승례(66)씨는 “목포 가려면 배 타고 버스 타고, 하루 자고 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배편도 하루 4~5번뿐이라 시간 맞추기 어렵다. 여기까지 배달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라고 말했다.

소악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영매(62)씨도 “점심 장사를 하려면 편도로 한 시간씩 걸려 가며 아침 첫 배를 타고 목포로 가서 30~40분 만에 장을 보고, 얼른 돌아와야 한다”며 “시간이 촉박하니 필요한 걸 자주 빼먹고 돌아와 속상한 일이 많았는데, 어복트럭이 덕에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어복장터 트럭(위)과 트럭 안에 실린 생필품.
어복장터는 전남사회서비스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직원들이 번갈아 동행해 판매·안내를 맡고 있다. 또 ‘어복버스’를 함께 시행해 신안을 포함한 전남 지역 섬마을을 돌며 이미용·진료·목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어복장터 트럭을 운전하는 박상우(52)씨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금액 그대로 주민들께 제공하다보니 도선료나 기름값 등 남는 건 없지만 매주 이렇게 다니면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신다”며 “섬지역 돌아다니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어르신들이 ‘이번주에 언제 오냐’고 전화주시면 너무 보람차다. 시범운영이 끝나더라도 어르신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이런 사업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안 당사도 글·사진=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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