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역사 마한을 깨우다
2021년 02월 02일(화) 09:00 가가
오는 6월부터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다. 마한(馬韓)을 비롯해 가야, 탐라, 백제, 신라, 고구려 등 6개 역사문화권별 문화유산을 연구·조사하고 발굴·복원함으로써 그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지역발전을 꾀하자는 취지이다. 영산강유역 마한의 역사는 남도의 뿌리이다. ‘잃어버린 왕국’ 마한의 역사적 위상과 함께 광주·전남에 산재한 관련 유적을 살펴본다.
■ 영산강 유역 고대왕국 마한의 부활
호남 역사 뿌리 ‘마한’ 역사찾기 본격화…교육·답사프로그램 추진
영산강유역 마한인 삶·문화 간직…유적·유물 연구, 역사복원 노력
영암 내동리 쌍무덤·담양 중옥리 고분 등 14개소 유적지 발굴조사
◇고대 해상왕국 ‘마한’(馬韓) 깨어나=“마한을 전라도 문화의 본류로 인식하고, 잊혀진 고대 마한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데 앞으로 온 힘을 쏟겠습니다. 나아가 마한문화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해 11월 13일 서울시 중구 프레스 센터.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이날 열린 ‘2020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포럼’에서 고대 해상왕국 마한의 역사·문화를 발전시켜나가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고대 마한인이 김 지사와 정재숙 문화재청장에게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전달한데 이어 행사 참석자들이 대형 옹관 내에 염원상자를 집어넣은 후 봉인하는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잊혀진 왕국’ 마한(馬韓)이 역사의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마한역사문화권을 포함하는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오는 6월부터 시행되면서 마한 역사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도 높아졌다. 특별법은 마한역사문화권을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남 일대 마한시대의 유적·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으로 정의하고 있다. ‘마한역사문화권’에서 빠진 광주시는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영산강 상류인 광주 또한 신창동 유적(국가사적 제375호)을 비롯해 월계동 장고분, 명화동 고분 등 마한과 관련된 유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는 광주시 동구 전일빌딩 245에서 마한역사문화권 확대지정을 위한 학술회의 ‘광주 무진주와 마한·백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마한은 광주·전남 역사의 뿌리이다. 1917년 12월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9호분 이후 광주·전남·북 지역의 여러 곳에서 마한 관련 유적이 발굴됐지만 여전히 마한의 역사문화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수천 년간 땅속에 깊이 묻혀있던 유물· 유적이 하나 둘 발견됨으로써 마한의 역사는 한줄 한줄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영산강 유역 고분은 마한인의 삶과 역사·문화를 간직한 ‘타임캡슐’이다.
◇퍼즐 맞춰가는 마한의 역사문화=광주·전남 각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마한 인들의 삶과 역사를 퍼즐처럼 맞춰보자. 1997년 광주 신창동 저습지 농경유적에서는 목제(木制) 수레바퀴 일부분이 출토됐다. 이는 “소나 말을 탈줄 모르며, 소나 말은 모두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쓴다(不知乘牛馬 牛馬盡於送死)”라고 한 중국 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마한 관련 기록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자료였다. 2100여 년 전 신창동 마한인들은 나무괭이 등 농기구를 이용해 벼농사를 지었다. 155㎝ 높이의 왕겨 층이 당시의 활발한 쌀 생산을 보여준다. 옻칠을 한 목기를 생산하고, 구슬을 귀하게 여겼으며 10현(弦)의 현악기를 연주했다. 무엇보다 영산강과 바닷길을 발판삼아 일본, 중국, 낙랑 등지와 국제적인 해상 교역을 했다.
영산강유역 마한인들은 왜 누에고치 모양의 대형 옹관에서,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신은 채 영면했을까? 토기 표면의 조족문(鳥足文·새발자국 형태의 무늬)과 토기몸통에 구멍을 뚫은 유공(有孔) 토기에는 어떤 상징이 남겨있는 것일까? 또한 영산강 유역에 왜 일본계통 장고형 고분(전방후원분)이 다수 자리하고 있는지, 마한은 언제쯤 백제에 통합됐는지, 여전히 마한의 역사·문화는 물음표의 연속이다.
◇‘마한사 디지털 아카이브’등 다양하게 마한 조명=광주시와 전남도를 비롯해 국립 나주문화재연구소, 국립 광주박물관, 국립 나주박물관은 마한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광주시는 광산구 신창동 유적지 일원에 ‘선사(先史)체험 학습관’을 건립하고 있다. 학습관내에는 상설 전시실과 기획 전시실, 휴게공간 등이 조성되고, 전시체험물이 설치될 예정이다. 전시실은 ▲과거를 열다 ▲삶을 연결하다 ▲미래를 연결하다는 콘셉트로 나눠 대표 유물을 배치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마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역사문화의 가치를 깨닫게 할 구상이다. 박영재 광주시 학예연구사는 “마한은 크고, 으뜸이 된다는 의미의 ‘말한’, ‘몰한’ 등으로 불린 것이 말마(馬)자를 차용해 표기한 것”이라며 “전남 마한유적이 고분 위주라면 광주는 동림동 유적과 평동 유적 등처럼 주거(마을) 유적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했던 전남도는 특별법 시행에 따라 올해 마한역사문화 발굴 활용 및 정비체계 구축에 발 벗고 나선다. 2월에 문화재청에서 올 상반기에 수립하는 ‘역사문화권 정비 기본계획’에 마한문화권 정비계획 우선 반영을 요청할 계획이다. 나주 다시고분군과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 영암 내동리 쌍무덤, 담양 중옥 고분 등 4개소를 국가사적 승격 추진한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될 경우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마한문화권 국제 학술대회(10월 예정)도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영암 내동리 쌍무덤과 담양 중옥리 고분 등 14개소의 마한유적 발굴조사를 3월부터 10월까지 실시한다. 마한 역사문화교육 사업과 마한 답사프로그램 운영 등 홍보 및 활용사업도 병행해 추진한다. 특히 전남도는 마한 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마한사(史) 디지털 아카이브인 ‘마한 역사문화 전라남도 기록보관소’를 구축해 선보인다. ‘잠들었던 고대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라는 주제로 ▲국내외 학술자료 ▲발굴조사 보고서 ▲사진·영상·오디오·VR콘텐츠 등을 업로드해 놓아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국립 나주박물관앞 덕산리 3호분 일대에 마한역사 체험 랜드 마크인 ‘마한고분유적 발굴관’을 오는 2022년 완공목표로 건립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립 나주박물관은 영산강유역 고분문화를 쉽게 알 수 있도록 ‘3D 디지털체험관’을 구축한다. 신촌리 9호분 독널(옹관) 등 주요 소장품을 3D로 촬영해 홈페이지에 공개할 계획이다. 독널(관련) 자료를 집대성해 저널 ‘아시아의 독널문화’(제4호)를 펴내고, ‘마한의 옥(玉)과 교역 네트워크’를 주제로 한 국제 학술심포지엄도 11월에 개최할 예정이다. 12월에는 일본 미야자키(宮崎) 현립 사이토바루(西都原) 고고 박물관과 함께 한일 고대문화 공동 연구 사업을 추진한다.
또한 박물관 상설 전시실을 개선해 ‘실감형 디지털 체험관’을 구축하게 된다. 반남고분군을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 독널(옹관)문화에 대한 실감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시각·음향 효과를 스토리텔링과 연출해 흥미와 감동을 주는 디지털 기반 문화콘텐트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특별전으로 ▲마한의 부엌(5~8월) ▲금은보다 귀한 옥(玉)(10월~2022년 1월)을 마련한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 제공=국립나주박물관
■ 전라도 문화의 본류다양한 유적
독특한 고분·대형 옹관·금관·금동신발 등 역사적 가치 뛰어나
‘아파트형 무덤’ 등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고분양식 보여줘
광주·영암서도 많은 흔적들…철기시대 마한의 생활상 그대로
◇‘아파트형 무덤’ 나주 복암리고분
영산강을 중심으로 한 전남 나주에는 다수의 고분이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반남 고분과 복암리 고분이다. 드넓은 다시들 농경지 사이에 4기의 고분이 가까이에 모여 있는 복암리 고분군은 본래 7기로 전해온다.
일제 말기부터 다시들에 경작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7기의 고분 중 3기가 없어지고 3기만 남게 됐다고 전해졌다. 남아있는 4기 중 1, 2, 4호분 석실도 도굴되고 그나마 안동권씨 집안의 선산으로 이용됐던 3호분만이 도굴되지 않고 후세에 전해올 수 있었다.
4기의 복암리 고분 중 가장 큰 3호분은 당시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영산강 유역에서 나타난 모든 형태의 무덤방들이 하나의 봉분에 모여 있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특히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있는 듯한 모양새로 인해 ‘아파트형 고분’이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복암리 고분은 발굴조사 과정중에 전남도 지방문화재에서 국가 사적 제404호로 승격되기도 했다.
고분이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300여m 떨어진 곳에 건립된 ‘나주복암리고분전시관’에는 복암리 3호분의 발굴 완료된 모습이 그대로 재현 전시돼 있다.
평면 네모꼴로 한 변이 최대 42m나 되는 복암리 3호분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개의 무덤방들이 하나의 봉분 안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무려 41개의 무덤이 한 고분에서 나왔는데 무덤의 종류도 시기가 달랐다. 독널무덤(옹관묘) 22기,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 3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11기, 앞트기식돌덧널무덤(횡구식 석곽묘) 1기,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 석실묘) 2기, 돌덧널독널무덤(석곽 옹관묘) 1기, 나무널무덤(목관묘) 1기 등 4세기에서 7세기까지의 묘제가 확인됐다.
종류가 다른 무덤이 있다는 것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처음 옹관무덤을 사용하다가 돌방무덤을 채용하면서 봉분을 네모꼴로 확장했고 이후 새롭게 백제양식 돌방무덤을 추가하면서 여러개의 무덤방이 완성됐다.
“복암리 3호분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학계에서는 ‘옹관 고분이 축조되다가 없어지고 돌방무덤으로 바뀌었다’는 게 정설이었습니다. 하지만 발굴해 보니 무덤은 돌방인데 안에 옹관이 그대로 있는게 확인된 거죠. 마한시대 사람들의 묘지가 단순히 백제가 들어왔다고 해서 모두 없어진게 아니라 존속을 하고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박영훈 복암리고분전시관 조사연구팀)
3호분에서는 시기별 무덤 외에 금제관식, 철기,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함께 발견됐다. 발견된 토기 가운데 조족 무늬가 새겨진 토기도 다수 나왔는데 대표적인 마한 문양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촌고분과 대형옹관
복암리 고분전시관 뒤 야트막한 언덕에는 또 하나의 고분이 있다. 2013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정촌고분이다. 정촌고분은 한 변 길이 30m, 높이 9m인 5세기 후반대 마한 수장급의 방형 무덤으로, 1500여년 전 마한의 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분으로도 꼽힌다. 정촌고분 역시 복암리 고분과 마찬가지로 무덤 내에서 돌방 3기, 돌널 4기, 독널 6기 등 14기의 매장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촌고분, 복암리 고분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마한의 매장 문화다. 무덤은 땅을 파서 죽은 사람을 묻고 그 위에 흙더미를 쌓는 봉분묘, 지상에 흙더미를 쌓고 그 안에 주검을 안치한 분구묘로 구분된다. 분구묘는 마한지역에서 쓰이기 시작했으며 4세기말부터 6세기초까지는 영산강 유역에서 특히 성행했다. 복암리 고분이나 정촌고분 모두 분구묘다.
정촌고분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 보관돼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곳이지만 코로나19로 방문 당시에는 관람이 제한돼 있었다.
마한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가 대형화된 옹관이다. 옹은 옛날부터 생활용으로 사용되다가 어린 아이가 죽으면 관으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에서는 성인의 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형 옹관을 별도로 제작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대형옹관을 복원하기 위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대형옹관제작 고대기술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오량동 옹관가마터 발굴조사를 실시하면서 연구소 뒤편에 동일한 비율로 가마를 재현해 옹관을 제작하며 연구하고 있다.
◇자미산성과 반남고분군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에는 사적 제513호인 반남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영산강에 인접한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고분까지 40기의 고분이 반남 고분군에 포함된다. 반남 고분군은 4~5세기 마한 토착세력이 남긴 유적으로 알려지는데,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던 시기와 맞물려 조성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반남 고분군의 특징은 대형옹관고분이라는 점이다. 대형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관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양식으로, 3~6세기 이 일대에서 크게 유행했다.
3세기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했으며 분구의 규모도 훨씬 대형화 돼 규모가 40~50m에 이른다. 고분은 피라미드형, 원추형, 사각형 등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대형옹관고분은 나주 반남 일대는 물론 영암, 함평, 무안 등 영산강을 따라 형성되고 있으며, 옹관고분의 밀집도로 봤을 때 반남 지역이 고대 지배세력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남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은 인근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촌리 9호분에서 발굴된 금동관, 금동신발, 은장삼엽문 환두도자, 옹관 등은 물론 마한시대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도 많다. 아쉽게도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휴관 상태이기 때문에 미리 개관 여부를 확인 한 후 방문하는게 좋겠다.
반남고분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자미산성을 올라가보는 것도 좋다. 자미산성은 해발 98m의 그리 높지 않은 자미산에 위치한다. 나지막한 산이지만 사방이 탁 트여 주변부가 모두 보이는 건 나주평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암 쌍무덤과 광주 신창동
영산강을 끼고 있는 영암에도 도기박물관이나 마한문화공원 쌍무덤 등 마한 흔적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조심스레 영암을 방문하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이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소식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영산강과 가까운 시종면 일대에는 내동리 쌍무덤, 신연리 고분군, 장동 방대형 고분 등 마한시대 고분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지난해 전남문화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시작한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에서는 마한시대 금동관 조각(앞장식)과 동물모양 토기 등이 출토됐다.
시종면 외에도 영암읍 옥야리, 학산면 금계리, 미암면 남산리, 덕진면 금산 고분군이 전남도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옥야리 고분군은 28기에 달한다. 옥야리 무덤들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 광산구 신창동 유적(국가사적 375호) 역시 초기 철기시대 마한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거대한 농경복합유적이기도 하다. 1963년 옹관묘 조사를 통해 처음 발견된 이후 수십개의 독널과 토기가마, 도랑, 주거지 등이 확인됐다. 유적에서는 칼 활 등 무기, 괭이 낫 등 농공구, 원통모양칠기를 비롯한 각종 용기, 현악기, 빗, 신발골 등 다양한 목기와 칠기 유물이 출토됐다. 다만 마을 유적은 고분처럼 지표위에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호남 역사 뿌리 ‘마한’ 역사찾기 본격화…교육·답사프로그램 추진
영산강유역 마한인 삶·문화 간직…유적·유물 연구, 역사복원 노력
영암 내동리 쌍무덤·담양 중옥리 고분 등 14개소 유적지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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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와 국립 나주문화재연구소 공동 주최로 열린 ‘2020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포럼’ 중 비전 선포식. <전남도 제공> |
마한은 광주·전남 역사의 뿌리이다. 1917년 12월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9호분 이후 광주·전남·북 지역의 여러 곳에서 마한 관련 유적이 발굴됐지만 여전히 마한의 역사문화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수천 년간 땅속에 깊이 묻혀있던 유물· 유적이 하나 둘 발견됨으로써 마한의 역사는 한줄 한줄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영산강 유역 고분은 마한인의 삶과 역사·문화를 간직한 ‘타임캡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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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에서 출토된 금동관. |
영산강유역 마한인들은 왜 누에고치 모양의 대형 옹관에서,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신은 채 영면했을까? 토기 표면의 조족문(鳥足文·새발자국 형태의 무늬)과 토기몸통에 구멍을 뚫은 유공(有孔) 토기에는 어떤 상징이 남겨있는 것일까? 또한 영산강 유역에 왜 일본계통 장고형 고분(전방후원분)이 다수 자리하고 있는지, 마한은 언제쯤 백제에 통합됐는지, 여전히 마한의 역사·문화는 물음표의 연속이다.
◇‘마한사 디지털 아카이브’등 다양하게 마한 조명=광주시와 전남도를 비롯해 국립 나주문화재연구소, 국립 광주박물관, 국립 나주박물관은 마한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광주시는 광산구 신창동 유적지 일원에 ‘선사(先史)체험 학습관’을 건립하고 있다. 학습관내에는 상설 전시실과 기획 전시실, 휴게공간 등이 조성되고, 전시체험물이 설치될 예정이다. 전시실은 ▲과거를 열다 ▲삶을 연결하다 ▲미래를 연결하다는 콘셉트로 나눠 대표 유물을 배치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마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역사문화의 가치를 깨닫게 할 구상이다. 박영재 광주시 학예연구사는 “마한은 크고, 으뜸이 된다는 의미의 ‘말한’, ‘몰한’ 등으로 불린 것이 말마(馬)자를 차용해 표기한 것”이라며 “전남 마한유적이 고분 위주라면 광주는 동림동 유적과 평동 유적 등처럼 주거(마을) 유적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했던 전남도는 특별법 시행에 따라 올해 마한역사문화 발굴 활용 및 정비체계 구축에 발 벗고 나선다. 2월에 문화재청에서 올 상반기에 수립하는 ‘역사문화권 정비 기본계획’에 마한문화권 정비계획 우선 반영을 요청할 계획이다. 나주 다시고분군과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 영암 내동리 쌍무덤, 담양 중옥 고분 등 4개소를 국가사적 승격 추진한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될 경우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마한문화권 국제 학술대회(10월 예정)도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영암 내동리 쌍무덤과 담양 중옥리 고분 등 14개소의 마한유적 발굴조사를 3월부터 10월까지 실시한다. 마한 역사문화교육 사업과 마한 답사프로그램 운영 등 홍보 및 활용사업도 병행해 추진한다. 특히 전남도는 마한 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마한사(史) 디지털 아카이브인 ‘마한 역사문화 전라남도 기록보관소’를 구축해 선보인다. ‘잠들었던 고대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라는 주제로 ▲국내외 학술자료 ▲발굴조사 보고서 ▲사진·영상·오디오·VR콘텐츠 등을 업로드해 놓아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국립 나주박물관앞 덕산리 3호분 일대에 마한역사 체험 랜드 마크인 ‘마한고분유적 발굴관’을 오는 2022년 완공목표로 건립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립 나주박물관은 영산강유역 고분문화를 쉽게 알 수 있도록 ‘3D 디지털체험관’을 구축한다. 신촌리 9호분 독널(옹관) 등 주요 소장품을 3D로 촬영해 홈페이지에 공개할 계획이다. 독널(관련) 자료를 집대성해 저널 ‘아시아의 독널문화’(제4호)를 펴내고, ‘마한의 옥(玉)과 교역 네트워크’를 주제로 한 국제 학술심포지엄도 11월에 개최할 예정이다. 12월에는 일본 미야자키(宮崎) 현립 사이토바루(西都原) 고고 박물관과 함께 한일 고대문화 공동 연구 사업을 추진한다.
또한 박물관 상설 전시실을 개선해 ‘실감형 디지털 체험관’을 구축하게 된다. 반남고분군을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 독널(옹관)문화에 대한 실감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시각·음향 효과를 스토리텔링과 연출해 흥미와 감동을 주는 디지털 기반 문화콘텐트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특별전으로 ▲마한의 부엌(5~8월) ▲금은보다 귀한 옥(玉)(10월~2022년 1월)을 마련한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 제공=국립나주박물관
■ 전라도 문화의 본류다양한 유적
독특한 고분·대형 옹관·금관·금동신발 등 역사적 가치 뛰어나
‘아파트형 무덤’ 등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고분양식 보여줘
광주·영암서도 많은 흔적들…철기시대 마한의 생활상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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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형 무덤' 3호분에는 영산강 유역에서 나타난 모든 형태의 무덤방이 모여 있다. |
영산강을 중심으로 한 전남 나주에는 다수의 고분이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반남 고분과 복암리 고분이다. 드넓은 다시들 농경지 사이에 4기의 고분이 가까이에 모여 있는 복암리 고분군은 본래 7기로 전해온다.
일제 말기부터 다시들에 경작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7기의 고분 중 3기가 없어지고 3기만 남게 됐다고 전해졌다. 남아있는 4기 중 1, 2, 4호분 석실도 도굴되고 그나마 안동권씨 집안의 선산으로 이용됐던 3호분만이 도굴되지 않고 후세에 전해올 수 있었다.
4기의 복암리 고분 중 가장 큰 3호분은 당시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영산강 유역에서 나타난 모든 형태의 무덤방들이 하나의 봉분에 모여 있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특히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있는 듯한 모양새로 인해 ‘아파트형 고분’이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복암리 고분은 발굴조사 과정중에 전남도 지방문화재에서 국가 사적 제404호로 승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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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고분전시관에 재현된 3호분 96석실 돌방무덤. |
평면 네모꼴로 한 변이 최대 42m나 되는 복암리 3호분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개의 무덤방들이 하나의 봉분 안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무려 41개의 무덤이 한 고분에서 나왔는데 무덤의 종류도 시기가 달랐다. 독널무덤(옹관묘) 22기,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 3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11기, 앞트기식돌덧널무덤(횡구식 석곽묘) 1기,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 석실묘) 2기, 돌덧널독널무덤(석곽 옹관묘) 1기, 나무널무덤(목관묘) 1기 등 4세기에서 7세기까지의 묘제가 확인됐다.
종류가 다른 무덤이 있다는 것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처음 옹관무덤을 사용하다가 돌방무덤을 채용하면서 봉분을 네모꼴로 확장했고 이후 새롭게 백제양식 돌방무덤을 추가하면서 여러개의 무덤방이 완성됐다.
“복암리 3호분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학계에서는 ‘옹관 고분이 축조되다가 없어지고 돌방무덤으로 바뀌었다’는 게 정설이었습니다. 하지만 발굴해 보니 무덤은 돌방인데 안에 옹관이 그대로 있는게 확인된 거죠. 마한시대 사람들의 묘지가 단순히 백제가 들어왔다고 해서 모두 없어진게 아니라 존속을 하고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박영훈 복암리고분전시관 조사연구팀)
3호분에서는 시기별 무덤 외에 금제관식, 철기, 토기 등 다양한 유물이 함께 발견됐다. 발견된 토기 가운데 조족 무늬가 새겨진 토기도 다수 나왔는데 대표적인 마한 문양으로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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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 전시돼 있는 정촌고분 출토대형옹관. |
복암리 고분전시관 뒤 야트막한 언덕에는 또 하나의 고분이 있다. 2013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정촌고분이다. 정촌고분은 한 변 길이 30m, 높이 9m인 5세기 후반대 마한 수장급의 방형 무덤으로, 1500여년 전 마한의 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분으로도 꼽힌다. 정촌고분 역시 복암리 고분과 마찬가지로 무덤 내에서 돌방 3기, 돌널 4기, 독널 6기 등 14기의 매장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촌고분, 복암리 고분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마한의 매장 문화다. 무덤은 땅을 파서 죽은 사람을 묻고 그 위에 흙더미를 쌓는 봉분묘, 지상에 흙더미를 쌓고 그 안에 주검을 안치한 분구묘로 구분된다. 분구묘는 마한지역에서 쓰이기 시작했으며 4세기말부터 6세기초까지는 영산강 유역에서 특히 성행했다. 복암리 고분이나 정촌고분 모두 분구묘다.
정촌고분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 보관돼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곳이지만 코로나19로 방문 당시에는 관람이 제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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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야외에 재현해 놓은 옹관 가마. 연구소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대형옹관제작기술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고대옹관 제작기술을 밝혀냈다. |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대형옹관을 복원하기 위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대형옹관제작 고대기술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오량동 옹관가마터 발굴조사를 실시하면서 연구소 뒤편에 동일한 비율로 가마를 재현해 옹관을 제작하며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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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반남면 덕산리 고분군. |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에는 사적 제513호인 반남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영산강에 인접한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고분까지 40기의 고분이 반남 고분군에 포함된다. 반남 고분군은 4~5세기 마한 토착세력이 남긴 유적으로 알려지는데,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던 시기와 맞물려 조성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반남 고분군의 특징은 대형옹관고분이라는 점이다. 대형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관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양식으로, 3~6세기 이 일대에서 크게 유행했다.
3세기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했으며 분구의 규모도 훨씬 대형화 돼 규모가 40~50m에 이른다. 고분은 피라미드형, 원추형, 사각형 등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대형옹관고분은 나주 반남 일대는 물론 영암, 함평, 무안 등 영산강을 따라 형성되고 있으며, 옹관고분의 밀집도로 봤을 때 반남 지역이 고대 지배세력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남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은 인근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촌리 9호분에서 발굴된 금동관, 금동신발, 은장삼엽문 환두도자, 옹관 등은 물론 마한시대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도 많다. 아쉽게도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휴관 상태이기 때문에 미리 개관 여부를 확인 한 후 방문하는게 좋겠다.
반남고분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자미산성을 올라가보는 것도 좋다. 자미산성은 해발 98m의 그리 높지 않은 자미산에 위치한다. 나지막한 산이지만 사방이 탁 트여 주변부가 모두 보이는 건 나주평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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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암리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들. |
영산강을 끼고 있는 영암에도 도기박물관이나 마한문화공원 쌍무덤 등 마한 흔적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조심스레 영암을 방문하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이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소식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영산강과 가까운 시종면 일대에는 내동리 쌍무덤, 신연리 고분군, 장동 방대형 고분 등 마한시대 고분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지난해 전남문화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시작한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에서는 마한시대 금동관 조각(앞장식)과 동물모양 토기 등이 출토됐다.
시종면 외에도 영암읍 옥야리, 학산면 금계리, 미암면 남산리, 덕진면 금산 고분군이 전남도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옥야리 고분군은 28기에 달한다. 옥야리 무덤들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 광산구 신창동 유적(국가사적 375호) 역시 초기 철기시대 마한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거대한 농경복합유적이기도 하다. 1963년 옹관묘 조사를 통해 처음 발견된 이후 수십개의 독널과 토기가마, 도랑, 주거지 등이 확인됐다. 유적에서는 칼 활 등 무기, 괭이 낫 등 농공구, 원통모양칠기를 비롯한 각종 용기, 현악기, 빗, 신발골 등 다양한 목기와 칠기 유물이 출토됐다. 다만 마을 유적은 고분처럼 지표위에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