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의병장 34명 중 21명 왜적과 싸우다 전사
2021년 01월 29일(금) 10:00 가가
‘의병열전(1975.12.1~1977.7.21)’에서 다룬 임진왜란은 전체 49편 가운데 절반이 넘는 25편이다. 이 가운데 2명 이상의 의병장을 다룬 강희보·강희열편, 왕득인과 7의사편, 홍민언·홍민성편 등이 있어 의병장은 모두 34명이다.
이들 가운데 왜적과 싸우다 전장에서 산화한 의병장은 모두 21명이다. 자신의 고장을 지키다 전사한 사례는 왕득인과 7의사 중 6명(구례 석주관), 최대성(보성 오돈치), 최오(나주 백년산) 등이다. 나머지는 모두 자신과 타지에서 숨을 거뒀다.
특히 호남의 길목이라고 할 수 있는 진주성에서 7명의 의병장(김천일, 최경회, 강희보, 강희열, 양삼숙, 심우신, 범기생)이 전사했다. 관군과 명나라군, 심지어 곽재우 등 일부 의병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주성에 들어가 수만의 왜적과 대적했으며, 7번 전투를 모두 막아냈으나 장마 등으로 성벽이 무너지면서 패배했다.
다음이 충남의 금산성으로, 모두 4명의 의병장(고경명, 김세근, 유팽로, 양대박) 등이 전사했다. 제1차 금산성 전투라고 불리며, 이후 제2차 금산성 전투에서는 조헌과 700의사가 모두 숨지는 임란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 전사한 의병장의 평균 연령은 44세였다. 가장 젊은 나이에 산화한 이는 28세의 유팽로였다.
보성이 고향인 정사제는 남원에서, 강진이 고향인 염걸은 거제도에서 각각 전사했다. 왕득인과 7의사 중 왕득인의 아들인 왕의성은 구례 석주관에서 조총을 맞고 기절했다가 시체 속에서 살아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거병하기도 했다.
김덕령은 모함을 받아 옥사했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이들 가운데 왜적과 싸우다 전장에서 산화한 의병장은 모두 21명이다. 자신의 고장을 지키다 전사한 사례는 왕득인과 7의사 중 6명(구례 석주관), 최대성(보성 오돈치), 최오(나주 백년산) 등이다. 나머지는 모두 자신과 타지에서 숨을 거뒀다.
김덕령은 모함을 받아 옥사했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