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내 균형 발전 ‘큰 그림’이 필요하다
2020년 09월 02일(수) 00:00

논설실장·이사

현재 광주광역시의 행정구역은 5개 자치구에 95개 행정동(洞)으로 구성돼 있다. 광주에 행정 단위로서 구(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1973년 7월이었다. 6개 출장소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도시 행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이른바 ‘구제’(區制)를 도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행정구역 가운데 중부·동부 출장소를 통합해 동구가, 남부·서부 출장소를 합쳐 서구가 출범했다. 1980년 4월에는 나머지 출장소마저 폐지되고 북구가 신설됐다. 1986년 11월 광주는 국내 네 번째 직할시로 승격됐고, 2년 뒤 송정시와 광산군 전역을 흡수하면서 광산구가 설치됐다. 이에 따라 광주의 면적은 215㎢에서 501㎢로 크게 늘어났다. 이어 1995년 3월 서구에서 남구가 분구되면서 지금의 5개 자치구 체제가 완성됐다.

광주에 구제가 시행된 이후 가장 극심한 변화를 겪은 지역은 동구이다. 동구 일대는 7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의 유일한 도심지였다. 다른 도심지가 생겨나기 전에 처음 형성된 ‘원도심’(原都心)으로 주요 관공서, 은행, 사업체들이 한데 모여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기능을 수행했다. 그 역사는 광주 읍성을 중심으로 500년 이상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던 조선시대부터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도시가 확장되고 행정구역 개편이 잇따르면서 동구는 쇠퇴를 거듭하게 된다. 그것은 인구 추이만 봐도 알 수 있다. 1973년 동구와 서구가 처음 설치될 당시 광주 인구는 55만 2432명. 이 가운데 동구는 31만 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이후 수차례의 분구로 1990년에는 20만 명 선이 붕괴됐고 2015년에는 10만 명 선도 무너졌다.

그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동구 중심의 단핵도시였던 광주는 상무·첨단·수완 지구 등 외곽 신시가지가 잇따라 개발되면서 다핵도시로 변모해 갔다. 특히 동구는 2004년 광주 시청이 상무지구로 이전하고 이듬해 전남 도청이 무안 남악 신도시로 옮겨 가면서 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 몸살을 앓았다.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상업·업무 시설들이 덩달아 빠져나가면서 금남로·충장로 상권은 유례없는 침체를 겪었고 도심은 활기를 잃어 갔다.



자치구 간 격차 너무 커져



그 결과 지난 7월 말 기준 동구 인구는 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적은 9만 9228명으로 줄어들었다. 인구가 가장 많은 북구(43만 3463명)에 비하면 4분의 1이 채 안 된다. 남구 21만 5987명, 서구 29만 8898명, 광산구 40만 7133명 등에 비해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 각 분야의 구별 격차는 ‘광주통계연보’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2018년 기준 일반회계 세입 예산은 동구 2734억 원, 남구 3912억 원, 서구 4614억 원, 광산구 6111억 원, 북구 6458억 원 등이다.

자치구 간 불균형은 비단 동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공체육시설을 보면 서구가 37개로 가장 많은 데 비해 남구는 11개뿐이다. 공연장·영화관·미술관 등 문화공간의 경우, 40개로 가장 많은 동구에 비해 남구는 고작 5개밖에 없어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물론 도시는 유기체와도 같아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쇠를 거듭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갈수록 확대되는 도시 내 불균형 문제는 결코 수수방관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주민에 대한 행정 서비스, 나아가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동구의 경우 그동안 인구 격감으로 행정조직이 축소되고 교부세가 줄어드는 등 불이익이 뒤따랐다. 인구가 많다고 하여 마냥 주민들에게 유리한 것도 아니다. 한정된 숫자의 공무원이 감당해야 할 업무가 늘어나 처리가 지연되고 복지에 대한 부담도 증가하는 탓이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대 들어 광주 내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자치구 간 경계 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목소리가 커지자 광주시의회는 지난 2006년 ‘광주시 지역 균형발전 조례안’을 제정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 2011년에는 전국 최초로 경계 조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각 구가 몇 개 동을 주고받는 미봉책에 불과, 동구 인구는 고작 5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급기야 20대 총선을 앞두고 동구는 인구 하한선에 걸려 광주 국회의원 의석수가 줄어들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래서 부랴부랴 행정구역상 남구 일부를 동구에 붙여 만든 것이 ‘동남 갑·을’이라는 기형적 선거구다. 광주시는 2018년에도 시민 설문과 연구 용역을 바탕으로 경계 조정을 추진했는데, 소·중·대 등 세 가지 안이 제시됐지만 끝내 무산됐다.

이처럼 자치구 간 경계 조정이 2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데는 일부 주민의 반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등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이들은 선거구 등 이해관계에 매몰돼 기득권 지키기에만 골몰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광주 공동체의 미래’라는 대의(大義)를 생각하며 추진해야 할 때이다. 다행히 광주일보가 최근 지역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덟 명 모두가 경계 조정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올해 경계 조정 추진해야



경계 조정의 대원칙은 자치구 간 불균형 해소와 시민 생활 편의 및 행정 서비스 효율성 제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 자치구가 경쟁력을 갖추고 지역별 특성을 살려 조화로운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적정 수준의 인구 배분을 해야 한다. 시기상으로는 올해가 적기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오는 내년 상반기가 되면 이미 늦다. 정치적 환경이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견 수렴은 광주시가 주도하되 전문가와 시민들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 정치권은 대원칙에만 합의한 뒤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건설처럼 공론화 절차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도 검토해 볼 만하다.

다행히 경계 조정에 대한 광주 시민의 공감대도 이미 조성돼 있다. 지난 2018년 용역 팀의 조사 결과 시민의 66.5%가 이에 동의한 것이다. 광주를 비롯한 호남은 과거 정부의 불균형 발전 정책으로 낙후가 심화됐고 그런 차원에서 국가 균형 발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나라의 균형 발전도 중요하지만 광주 자치구 간 균형 발전도 절실하다. 점점 커지는 우리 내부의 불균형을 언제까지 외면하고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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