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2020년 02월 03일(월) 00:00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20세기 현대 사회의 특징을 예리하게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그레고리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외판원으로 근무하며 가족 생활비를 벌던 그는 졸지에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 그레고리는, 어느 날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상처를 입고는 방에 갇혀 죽고 만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공존이 불가능한 두 가족의 문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오를 만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봉 감독은 하나의 건물에 존재하는 빈곤과 부의 문제를 희극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하게 그렸다. 공간과 소품 및 냄새가 상징하는 계급과 계층은 ‘기생충’이라는 제목과 맞물려 영화적 상상력과 재미를 선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가 유럽과 북미는 물론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이방인에 대한 혐오가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중국인의 입국 금지를 주장하는 등 중국인 혐오 현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부 보수 단체는 “관광 목적의 중국인 입국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청와대 국민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6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4년간 웹상에서 많이 사용된 부정적 언어 개념 중 하나가 ‘혐오’다. ‘○○충’ ‘극혐’ ‘왕따’ 등이 보여 주듯 우리 사회는 ‘혐오 사회’가 된 지 오래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카롤린 엠케는 ‘혐오 사회’라는 책에서 ‘다름’을 이유로 누군가를 멸시하거나 방관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공모된다고 주장한다. 혐오의 표적이 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표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배제된다는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벌레로 변한 인간의 기이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영화 ‘기생충’에는 희망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루저’들의 고통도 드리워져 있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과 증오, 이에 대한 방관과 공모는 명백히 폭력이며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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