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름드리터널과 숲길 : 사색하기 좋은 천년 숲길…삼라만상 이치 깨치리
2019년 03월 20일(수) 00:00
매표소 옆 편백나무 숲길·오른쪽은 오솔길 산책로
물소리길·동백숲길…찰나처럼 지나가는 사계절
세상만물 찰나이니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가리라

대흥사 천년숲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어 아름다운 풍광과 정취를 선사한다. <대흥사 제공>

국토의 최남단, 해남에 봄이 왔다. 봄은 먼 바다를 가로질러 뭍으로 왔다. 새색시마냥 부끄러워 슬며시 다가오더니 화사한 자태를 드리운다. 다투듯 피어난 봄꽃마다 시샘 많은 여인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속마음을 태울 대로 태우더니 어느 결에 화사한 꽃망울을 선사하니 말이다.

국도를 타고 느릿느릿 달린다. 차창으로 후욱 번져오는 남도의 바람이 향기롭기 그지없다. 며칠간 뿌옇던 미세먼지도 자취를 감추고 하늘은 물빛이다. 해남 땅에 들어서자 하늘은 맑은 얼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결에 장타령의 민요가 귓가로 흘러든다.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타령에 몸이 흔들린다.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산들산들 부는 바람 아리랑 타령이 절로 나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리듬이다. 민요조의 타령이라 몸이 먼저 반응한다. 생래적인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지난 주말 해남에서는 매화축제가 열렸다. 매년 이맘때 산이면 보해매실농원에서는 매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땅끝에서 피워 올린 매화향이 남도를 적시고 온 산하를 뒤덮는다. 매화나무마다 수천, 수만의 꽃송이가 하늘을 물들인다. 청매, 홍매, 백매 색깔도 고와 색색의 등을 닮았다. 선계인지 속계인지 분간할 수 없는 풍경에 넋을 잃는다. 사분사분 흩날리는 꽃잎은 찰나와 같은 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대흥사 일주문.
해남의 봄은 여느 곳과 달리 화사함과 푸르름이 더하다. 그러나 온몸으로 봄을 느끼려거든 대흥사 숲길에 가봐야 한다. 두륜봉을 타고 완만하게 형성된 산세마다 봄빛이 완연하다. 계곡은 계곡대로, 숲길은 숲길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어우러져 두륜산을 이룬다. 두륜봉 골짜기가 속한 곳은 삼산면 구림리(九林里) 장춘동(長春洞)이다. 아홉 개의 숲과, 긴 봄. 아마도 두륜산이 저잣거리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은전일 것도 같다.

“대흥사의 숲길은 전체적으로 천년 숲길로 통칭됩니다. 그 가운데 포장된 숲 터널 길은 사색길이라고 하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저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불교에서는 형상이 있는 모든 물체를 ‘색’이라는데, 온갖 만물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걷는 길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박충배 대흥사 성보박물관장의 설명이다. 박 관장의 말대로 이 길은 사색하기에 좋다. 매 계절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색’의 오묘함에서 삼라만상의 이치를 되새길 수 있다.

박 관장은 “매표소를 지나면 우측으로 편백나무 숲길이 있는데 오른쪽 오솔길은 산책로로 유명하다”며 “물소리길과 천년 동백 숲길은 풍치를 만끽할 수 있는 명품 길”이라고 덧붙였다.

동백나무 숲길.
박 관장의 설명을 뒤로 하고 천년 숲길로 들어선다. 물이 오른 노목에도 푸르름이 감돌아 그 빛이 선연하다. 느티나무,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는 스스로 자라 연륜을 발한다.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로써 존재를 드러내는 나무는 현자다.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가 이 순간 절창으로 다가온다.

천년고찰 숲길에도 봄이 왔다. 매화의 화사한 향과는 다른 슴슴한 향기가 그윽하다. 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리라. 삶의 유한함과 실존적 자각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굳이 화무십일홍을 떠올리지 않아도, 천년 숲길은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오지 않았던가.

동백나무 숲길.
그 시간을 견뎌온 나무의 인고가 몸서리처지도록 아름답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수려하고 풍성한 나무숲이 주는 이야기에 걸음을 멈춘다.

“잊어라. 잊어라, 또 잊어라.” 잎을 틔운 나무들이 그렇게 속삭인다. “또 잊어라. 다시 잊어라. 그리고 또 다시 잊어라.” 나무들은 오랜 벗처럼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눈을 들어 하늘을 덮은 두륜의 숲을 본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아니 “무엇을 깨달았고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

불교의 경전에는 ‘십이연기’가 있다. “모든 존재는 인연을 따라 생멸한다는 것인데 이를 연기라 말한다. 그 가운데 십이연기란 이 연기를 12단계로 정리하고 있다.” 인간의 태어남과 멸함은, 십이연기에서는 ‘무명’(無明)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무명으로 인한 잘못이 모든 고통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잊고 싶은 순간이 적지 않다. 이 숲길에 벅벅이 되새겨야 할 것은 깨달음이다. 무지의 열매는 너무도 가혹하여 곳곳마다 고통이고 상처였다. 모든 것이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생명을 틔우는 천년의 숲길에서 인과의 엄정한 법칙을 생각한다.

“나무처럼 살리라. 나무처럼 살리라. 빛나는 한때 분분한 낙화가 아닌, 노목의 심지와 같은 맘으로 침묵하고, 침묵하리라.”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에 혼곤한 몸과 마음이 씻겨나간다. 아름드리 터널이 주는 기운이 더없이 맑다. 어느 결에 발걸음이 당도한 곳은 동백나무 숲길. 동백 숲길 주위로 배롱나무, 왕벚꽃나무도 보인다. 한때 붉게 타올랐던 겨울동백이 선연한 자태로 객을 맞이한다. 에둘러 서로를 껴안은 나무들에 웃음이 나온다.

한때는 붉게 타올랐을 저 붉은 선혈. 뒹구는 꽃잎을 보며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진리의 실체를 본다. 사계절이 찰나처럼 지나갔구나. 이 봄날, 대흥사 숲길에서 생의 비의를 본다. 아니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참자유를 본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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