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프롤로그 : 호국·한국 불교의 중심 도량, 천년고찰 대흥사
2019년 01월 09일(수) 00:00
“삼재 들어오지 않고 만세토록 파괴됨 없는 땅” 두륜산에 위치
창건연대 신라 말 추정…대종사 13명·대강사 13명 배출
서산대사 사당·초의선사 기거 일지암 등 문화유산 즐비

신라 말에 창건된 대흥사는 남도의 대표 가람이자 한국 불교의 중심 도량으로 경내 안팎에는 서산대사 사당 등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대흥사 제공>

‘해남’(海南)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바로 땅끝과 대흥사(大興寺·주지스님 월우)다. 남도 사람이 아니어도 타지 사람도 마찬가지다. 푸른 눈의 이방인도 그러할 것 같다. 땅끝과 대흥사를 빼놓고 해남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땅끝과 대흥사는 해남을 대표하는 대명사이자 본질 그 자체다.

하여 땅끝을 향해 가는 자는 반드시 천년고찰 대흥사에 들러야 한다. 이것은 당위인지 모른다. 당위(當爲)라고 말하니 다소 억지스럽다. 그러나 해남 땅에 들어서면 그 당위에 절로 수긍이 된다. 바다에 면한 남쪽 땅이 발하는 지고한 기운과 준령의 줄기로 이어진 두륜산 8봉의 자태가 발길을 붙든다. 혹자는 ‘해남찬가’에서 연유를 찾는다.

“기름진 넓은 벌에 두륜산 높이 솟고, 맑은 물 굽이쳐 서해로 흐르니 아름다워라”

그렇다. 해남의 넓은 벌과 두륜산, 맑은 물과 서해가 결부좌한 것처럼 연결돼 있다. 만물이 저마다 홀로 된 것이 없이 무엇인가 연(緣)으로 지음 받았다는 증거다.

해남의 땅끝이 땅끝이 아닌 것은, 문자를 넘은 의미의 영역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땅끝은, 다시 말해 토말(土末)은 시작이자 도약의 출발점이다. 바라보는 자의 눈길이 어느 방향이냐에 따라 끝과 시작은 달라질진대, 그러나 해남의 땅끝은 어느 편으로도 무방하다. 각기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가는 웅혼한 기상이 담겨 있어서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인 것은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같은 의미로도 상통될 수 있겠다.

일찍이 서산대사(1520~1604) 또한 이러한 지세를 가늠했을 게다. 임란이 발발하자 선조의 부탁으로 의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는 평양을 되찾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묘향산 원적암에서 마지막 설법을 하고는 애제자 사명당과 처영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니, 의발(衣鉢)을 대둔산에 전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기화이초(奇花異草)가 항상 아름답고 옷과 먹을 것이 끊이지를 않는다. 내가 보건대 두륜산은 모든 것이 잘될 만한 곳이다. 북으로는 월출산이 있어서 하늘을 괴는 기둥이 되고 남에는 달마산이 있어 지축에 튼튼히 연결되어 있다.”(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1』, 창작과비평사, 1993.)

서산대사는 그렇게 입적했다. 그의 나이 만 84세, 법랍 67년. 두륜산과 대흥사에 대한 서산대사의 혜안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사명당은 스승의 유골을 수습해 묘향산 보현사에 안치했다.

대흥사 월우 주지스님은 “임진왜란 때 호국의 깃발을 들었던 서산대사의 충혼을 바탕으로 민족 화해와 통일의 의미를 담아 서산대사 제향을 북한과 공동 개최했으면 한다”며 “향후 대사가 입적한 북한 묘향산 보현사에서 제향 행사를 열기 위해 북측과 교류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산대사의 통찰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에까지 이어진다. 사물과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보는 지혜의 눈빛이 두륜산 고봉마다 스며있다. 고승대덕(高僧大德) 통찰이 빛나는 건 시간을 넘어 명징한 현재성을 담보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산대사의 정신과 대흥사에 깃든 불심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마중물로서 그 자장을 확산해나갈 것이다.

그 서기(瑞氣) 때문이었을까. 대흥사는 지난해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7~9세기 창건 이후 지속성, 역사성이 세계유산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기준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를 비롯해 순천 선암사,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등이 포함됐다.

1000개의 옥불이 모셔진 천불전.


그 가운데 남도의 대표 가람(伽藍) 해남 대흥사의 위상은 남다르다. 서산대사의 사당이 있는 포충사와 1000개의 옥불이 모셔진 천불전, 조선 차의 중흥을 이끌었던 다성(茶聖) 초의선사가 기거했던 일지암 등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또한 대웅전 현판은 조선 후기 명필 이광사가 쓴 것으로 활달한 필치가 압권이다.

도립공원인 두륜산에 자리잡고 있는 터라 풍경도 빼어나다. 남도의 여느 사찰치고 아름다운 곳이 없으련만 대흥사의 사계는 유독 수려하다. ‘대흥’(大興)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값지다.

대흥사와 해남군은 지난해 10월 대흥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선포식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가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펼쳐진 기념식에서는 대흥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늠하는 행사들로 다채롭게 채워졌다.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대흥사의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학자들은 대체로 신라 말로 추정한다. 3층석탑과 북미르암 마애불 등이 나말여초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대흥사의 건립이 나말여초일 거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대종사(大宗師) 13명, 대강사(大講師) 13명을 배출했다. 명찰이며 명도량이다.

월우 주지스님은 지난 12월 동짓날 절에서 쑨 동지죽을 들고 관내 35개 경로당을 돌았다. 2000여 그릇의 동지 죽을 나누며 평안을 기원했다. 면사무소, 파출소, 소방서 등 관내 기관에도 동지 죽을 전달했다. 고유한 정신은 지지하되 산에서 ‘산 아래로’의 의미를 앞으로도 구현하겠다는 의미다.

이 시리즈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도의 대표 사찰 대흥사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확산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를 통해 서산대사의 충혼이 서린 천년 고찰 대흥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조명할 계획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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