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궤(劉仁軌, 601-685)의 자는 정직으로 변주 울지 출신이다. 당 태종, 고종 때의 명신이다. 강직한 성품으로 조야의 존경을 받았다.

관직에 나가 하급관리직을 수행했다. 정관 14년(640) 진창현위로 있던 중 진창의 절충도위 노녕이 죄에 연류 되었는데 그를 모독하자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태종은 격노해 장안으로 소환해 그에게 힐문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노녕이 백성들 앞에서 신을 능욕하였기에 분하여 그를 죽였습니다.” 황제 옆에 있던 간관 위징이 황제에게 “수나라가 망한 까닭을 아십니까?”라고 말하였다. “수 말기에 백성들이 강해 관리들을 능욕하였는데, 노녕 같은 사람을 여기에 비할 수 있습니다.” 태종이 발탁해 역양현승으로 삼았다.

이후 순조롭게 승진해 급사중이 되었는데 간신 이의부의 모함을 받아 청주자사로 쫓겨났다. 고종 원삭 원년(661) 백제와 싸우는 당군의 해상 운송을 감독했는데 배가 전복되어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하였다. 백제 의자왕의 아들 풍이 주류성에서 농성하였다. 이에 조서를 내려 유인궤를 대방주자사로 삼아 백제군에 포위된 장군 유인원을 구하도록 하였다. 그는 “하늘이 꼭 이 늙은이를 부귀하게 하겠구나”라며 “내가 동이(東夷)를 평정하고 당의 제도를 반포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군대를 엄중히 통제해 싸우는 곳마다 모두 승리해 백제의 부흥노력을 저지했다. 백제의 명장 흑치상지의 항복도 받아들였다.

660년 우상으로 승진했다. 668년에는 요동도부총관이 되어 고구려 정복 전쟁에 참여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아들간 갈등으로 평양성이 함락되고 당에 투항했다. 670년 태자좌서자 673년 동중서문하삼품이 되었다. 같은 해 허경종이 주도한 역사 편찬이 부실하자 재편찬토록 명을 받았다. 674년 신라가 당의 통치에 반발하자 계림도대총관이 되어 이필과 이근창을 부총관으로 삼아 군사를 발동해 신라 토벌에 나섰다. 칠중성에서 신라군을 대파하였다. 결국 신라왕 김법민은 공물을 바치고 사죄했다. 675년에는 상서좌복야 겸 동중서문하삼품을 겸해 황제를 보좌했다. 677년 토번이 국경을 어지럽혔다. 청해성 낙도현에 군대를 주둔시켜 방어하고 본격적인 토벌 작전에 나섰다. 681년 태자소부를 겸하였다. 소부감 배비서가 황실에 있는 말의 분뇨를 팔면 2백만 전을 얻을 수 있다고 주청했다. 고종이 그에게 하문하자 “이익은 두텁습니다만 아마도 후대에 당 황실에서 말의 분뇨를 팔았다고 불리게 되면 명성에 누가 될까 걱정입니다.”고 답해 계획을 중지시켰다. 눈앞의 이익보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일화다.

682년 장안에 기근이 들자 고종을 모시고 동도인 낙양으로 옮겨 큰 화를 면하였다. 683년 고종이 붕어하자 중종이 즉위했다. 다시 좌복야로 발탁되어 중서령 배염, 시중 유경신과 함께 새 황제를 보좌했다. 684년 중종의 위황후가 친정아버지 위현정을 시중으로 삼으려 하는 등 권력을 휘둘렸다. 측천황후는 재상 배염 등과 공모해 중종을 폐위시켰다. 여릉왕으로 강등되 15년간 유폐생활을 하게 되고 위현정은 흠주로 귀양조치 되었다.

측천은 그에게 편지를 주어 말하기를 “옛날에 한나라는 관중의 일을 재상 소하에게 맡겼는데 지금 공에게 맡긴 것 역시 이와 같소.” 그는 나이 들어 일을 감당키 어렵다며 사임을 주청했다. 황후는 “공의 충성스럽고 곧은 절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고, 굳세고 정직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교할 것이 드뭅니다. 공은 이전의 조정에서 오랫동안 덕망을 쌓아서 먼곳과 가까운 곳을 모두 굽어볼 수 있으니, 바라건대, 바로잡고 구원하는 것을 가슴에 품고, 연로하다고 사직하겠다는 청원은 하지 않도록 하시오”라며 사직을 극력 만류하였다.

재상 배염의 역모 사건이 일어나자 엄정한 자세로 조사에 임해 강사종의 공모 사실을 보고해 처벌토록 했다. 685년 정월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로 현종 때 문헌공으로 추증되었다. 저서로 ‘유씨행년기’가 남아있다. 태종과 고종 때의 정쟁에 휩쓸리지 않고 횡액을 면한 명예로운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