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1000年 인물열전 <1> 프롤로그
2018년 01월 02일(화) 00:00 가가
정도전서 소록도 할매 천사까지 … 전라도 역사 빛낸 인물 조명
전라도를 규정하는 키워드를 세가지로 요약한다면 아마도 의향(義鄕)·예향(藝鄕)·문향(文鄕) 일 것이다. ‘의·예·문’의 고장으로 지칭하는데는 전라도 인물들이 역사속에서 보여준 의롭고 다재다능한 족적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고 말한 것처럼 전라도 사람들은 위기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서왔다. 몽골에 항거한 진도 삼별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의병, 동학농민혁명과 광주학생독립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전라도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한 고려 현종이후 1000년 동안만 보더라도 역사의 전환기마다 의로운 전라인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곡성의 유팽로는 전라도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고향에서 500명을 이끌고 이종사촌인 양대박과 함께 고경명을 만나 6000여명의 호남연합의병을 결성하고 금산전투에서 순절할때까지 왜군에 짓밟히는 조국을 구하는데 앞장섰다. 녹두장관 전봉준은 피탈로 고통받던 농민들의 뜻을 모아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고 경술국치로 일본에 국권을 상실하자 매천 황현은 절명시를 짓고 순국함으로서 항일정신의 불꽃을 지폈다.
일제시대 함평의 김철 선생은 김구 선생과 함께 의용단을 결성해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봉기를 주도했다. 보성의 나철 선생은 장원급제로 공직에 나섰지만 합병된 일본에서 녹을 먹을수 없다하여 그만두고 대종교를 창시해 단군의 정신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학문과 예술로 문향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인물들도 허다하다. 무안의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 관련 서적인 ‘동다송’을 지어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고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과의 교우를 통해 호남 예술의 토양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소치 허련은 초의선사의 소개로 김정희의 문하생이 된후 5대에 걸쳐 이어지는 진도 남종화의 태두가 됐다.
해남 윤선도에서 절정에 달한 시조문학은 담양의 가사문학으로 발전했다. 양산보는 소쇄원을 지어 송순, 김인후와 함께 자연에 은거하며 풍류를 즐기는 법을 배웠다. 송순과 정극인의 가사문학은 담양의 누정을 바탕으로 정원문화를 꽃피웠고 정철의 성산별곡을 낳았다.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을 벌인 기대승의 정신은 박수량의 청백리 정신으로 이어졌다. 조선후기 실학자 위백규는 장흥에 묻혀 지내면서도 향촌사회 개선론을 제기해 일찌기 지방자치의 모델을 제시했다.
전라도 출신은 아니지만 유배지로 전라도와 인연을 맺어 호남은 물론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도 많다. 삼봉 정도전은 유배 온 나주에서 민초들과 생활하면서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민본사상을 키워 조선의 설계자가 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 개혁가 조광조는 기묘사화에 연루돼 화순에 유배온지 한달 만에 사약을 받아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개혁정신은 호남학자들의 DNA로 남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강진에 머물면서 실학사상을 집대성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목민심서 등 5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썼는데 강진에서의 생활이 다작의 토양이 됐다.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을 들라고 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는 사람이 많다. 신안 하의도의 섬 소년이 갖은 고난속에서도 대통령의 꿈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소외된 전라도의 한이 그를 통해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는 오스트리아 태생이지만 전라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녀들은 정부조차 관심을 갖지 않을때인 1960년대부터 40여년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데 평생을 바쳤다. 요즘 정부가 나서 노벨상후보로 추천하는 이유도 그녀들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전라도 정도 1000년을 맞아 광주일보는 전라도를 빛낸 역사적인 인물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전라도 출신은 물론이거니와 전라도와 인연을 맺은 인물 가운데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사람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인물 발굴 차원에서 가능하면 덜 알려진 인물을 중심으로 전남지역 시군별로 1명씩을 선정해 2주에 1번씩 게재할 예정이다.
/장필수기자 bungy@kwangju.co.kr
이순신 장군이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고 말한 것처럼 전라도 사람들은 위기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서왔다. 몽골에 항거한 진도 삼별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의병, 동학농민혁명과 광주학생독립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전라도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한 고려 현종이후 1000년 동안만 보더라도 역사의 전환기마다 의로운 전라인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해남 윤선도에서 절정에 달한 시조문학은 담양의 가사문학으로 발전했다. 양산보는 소쇄원을 지어 송순, 김인후와 함께 자연에 은거하며 풍류를 즐기는 법을 배웠다. 송순과 정극인의 가사문학은 담양의 누정을 바탕으로 정원문화를 꽃피웠고 정철의 성산별곡을 낳았다.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을 벌인 기대승의 정신은 박수량의 청백리 정신으로 이어졌다. 조선후기 실학자 위백규는 장흥에 묻혀 지내면서도 향촌사회 개선론을 제기해 일찌기 지방자치의 모델을 제시했다.
전라도 출신은 아니지만 유배지로 전라도와 인연을 맺어 호남은 물론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도 많다. 삼봉 정도전은 유배 온 나주에서 민초들과 생활하면서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민본사상을 키워 조선의 설계자가 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 개혁가 조광조는 기묘사화에 연루돼 화순에 유배온지 한달 만에 사약을 받아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개혁정신은 호남학자들의 DNA로 남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강진에 머물면서 실학사상을 집대성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목민심서 등 5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썼는데 강진에서의 생활이 다작의 토양이 됐다.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을 들라고 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는 사람이 많다. 신안 하의도의 섬 소년이 갖은 고난속에서도 대통령의 꿈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소외된 전라도의 한이 그를 통해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는 오스트리아 태생이지만 전라도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녀들은 정부조차 관심을 갖지 않을때인 1960년대부터 40여년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데 평생을 바쳤다. 요즘 정부가 나서 노벨상후보로 추천하는 이유도 그녀들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전라도 정도 1000년을 맞아 광주일보는 전라도를 빛낸 역사적인 인물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전라도 출신은 물론이거니와 전라도와 인연을 맺은 인물 가운데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사람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인물 발굴 차원에서 가능하면 덜 알려진 인물을 중심으로 전남지역 시군별로 1명씩을 선정해 2주에 1번씩 게재할 예정이다.
/장필수기자 bung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