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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懲毖) 정신

2017. 09.06. 00:00:00

조선 선조 때 재상(宰相)을 지낸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징비록’(懲毖錄)을 편찬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이전의 대일 관계를 비롯해 전란이 일어난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책이다. 참혹했던 전쟁을 회고하고 여러 실책을 반성하며 후세가 앞날을 대비하는 데 교훈으로 삼도록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징비’는 중국 최초의 시가집인 ‘시경’ 소비편(小毖篇)의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대비하자는 게 ‘징비 정신’인 것이다.
하지만 전란 후 조선 사람들은 징비록을 거의 읽지 않았고, 오히려 가해자인 일본은 징비록을 책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이 읽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임진왜란이 끝난 뒤 300여 년이 지난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의 역사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는 역사 강의를 통해 “한·일간 외교적 현안이 생길 때 일본에 밀렸던 이유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실을 철저히 분석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징비 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조선 인조 때 발생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원인도 주변 국가 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외교적 실책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이 군신 관계였던 명나라와의 외교에 치중하면서 신생 국가인 후금(청)을 무시한 탓이 컸다는 것이다. 조정의 외교적 실책이 불러온 두 차례의 호란은 수만 명의 백성들이 목숨을 잃는 등 물적·인적 피해를 불러왔다. 그러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한이 수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제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동북아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다. 이런 가운데 ‘코리아 패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한반도 관련 논의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이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미국과 일본의 협의는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로 중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역사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징비 정신’을 다시 한 번 새겨 볼 때가 아닌가.
/최권일 정치부 부장 c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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