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의 철학 … 나는 걷는다 고로 사유한다
2017년 09월 01일(금) 00:00 가가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고층건물, 카페, 상가 등 오늘의 도시 거리는 복잡하다. 도시의 산책자에게 도시는 미지의 가능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면서 한편으로는 범죄, 위생 등 다양한 위험이 상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공적 공간을 자유롭게 거닐며 영감을 창조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도시를 마음놓고 걸을 수 없다. 도시의 교외화와 복잡한 공간은 일상에서 걷기를 점점 몰아내고 있다. 걷기의 위기는 곧 공간의 위기이자 아날로그의 위기인 셈이다.
사실 근래의 걷기는 인문학적 주제로 인식된다. 걷기와 인문학에는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걸으면서 사유하고, 걸으면서 창조하고, 걸으면서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평론가이자 작가인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사실 걷기는 생산 지향적인 문화와는 거리가 먼 행위로, 사람들은 걷기 자체를 목표로 생각한다. 인문학의 특징도 걷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장은 눈앞에 효과가 없지만 먼 장래에는 의미있는 변화를 견인한다.
저자는 보편적인 행위인 걷기를 철학적이고 창조적인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걷는 사람들의 모임, 공간, 역사를 매개로 걷기와 관련된 내용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걷기와 사유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철학자들을 소환한다. 보통은 그리스 철학자들을 호출하지만 저자는 루소를 비롯한 동시대인들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그리스인들이 많이 걸은 것은 사실이고, 소요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이름이 걷기와 관련돼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걷기와 연결한 이는 루소다. ‘잡종 철학자, 철학적 작가’ 루소로 불리는 것은 걸으면서 사유하고 저작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한 걷기로서의 순례 의미 또한 조명한다. 치마요 성지 순례를 했던 경험과 ‘평화 순례자’로 알려져 있는 반전 활동가의 글과 삶도 담아낸다.
“순례는 스포츠가 아니다. 순례자들이 종종 고행을 자초하는 것도 스포츠와 다른 점이지만, 순례의 목적이 많은 경우 치유라는 것도 스포츠와 다른 점이다. 스포츠에서는 준비를 최대한 면밀히 하는 반면에, 순례에서는 준비를 최대한 허술하게 한다.”
무엇보다 책의 미덕은 공간화된 역사를 신화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식 정원이 ‘자연주의’를 최신 트렌드로 받아들이면서 사유지였던 정원이나 산책로가 공적인 공원이 되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저자는 “정신과 육체, 내면의 성찰과 사회의 결성,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도시와 시골, 개인과 집단. 이 양쪽은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대립하는 듯한 두 항이 이 책에서는 보행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이라고 설명한다.
〈반비·1만9500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사실 근래의 걷기는 인문학적 주제로 인식된다. 걷기와 인문학에는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걸으면서 사유하고, 걸으면서 창조하고, 걸으면서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평론가이자 작가인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사실 걷기는 생산 지향적인 문화와는 거리가 먼 행위로, 사람들은 걷기 자체를 목표로 생각한다. 인문학의 특징도 걷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장은 눈앞에 효과가 없지만 먼 장래에는 의미있는 변화를 견인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걷기와 연결한 이는 루소다. ‘잡종 철학자, 철학적 작가’ 루소로 불리는 것은 걸으면서 사유하고 저작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한 걷기로서의 순례 의미 또한 조명한다. 치마요 성지 순례를 했던 경험과 ‘평화 순례자’로 알려져 있는 반전 활동가의 글과 삶도 담아낸다.
“순례는 스포츠가 아니다. 순례자들이 종종 고행을 자초하는 것도 스포츠와 다른 점이지만, 순례의 목적이 많은 경우 치유라는 것도 스포츠와 다른 점이다. 스포츠에서는 준비를 최대한 면밀히 하는 반면에, 순례에서는 준비를 최대한 허술하게 한다.”
무엇보다 책의 미덕은 공간화된 역사를 신화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식 정원이 ‘자연주의’를 최신 트렌드로 받아들이면서 사유지였던 정원이나 산책로가 공적인 공원이 되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저자는 “정신과 육체, 내면의 성찰과 사회의 결성,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도시와 시골, 개인과 집단. 이 양쪽은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대립하는 듯한 두 항이 이 책에서는 보행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이라고 설명한다.
〈반비·1만9500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