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 <3>광주 칠석고싸움과 농경문화
2017년 01월 17일(화) 00:00
긴장-이완 발전적 순환 … 공동체 번영의 원동력
칠석 고싸움놀이는 광주시 남구 대촌동 옻돌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10일께부터 2월 초하루까지 연희되고, 정월 대보름에 절정을 이루는 격렬한 남성집단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에 지정되었다.

고싸움에서 ‘고’는 옷고름의 고맺음하기나 씻김굿을 할 때의 고풀이 등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노끈의 한 가닥을 길게 늘여 둥그런 모양으로 매듭을 맺은 것을 말하며, 2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 싸움을 벌인다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고싸움은 광주, 장흥, 남평 등 호남 평야지대의 벼농사 즉 도작문화권 몇몇 지역에서 행하여진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어느 시기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고싸움의 기원은 줄다리기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는 설과 다른 하나는 줄다리기를 행하기 직전의 독립적인 사전놀이의 일종으로 전승되어왔다는 자체기원설 등 두 갈래가 있다.

고싸움에는 몇 가지 제의적 특성을 함의하고 있다. 먼저 고싸움에는 우리민족의 원초적 정서인 한(恨)이 응축되어 있다. 한은 중층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속성에 따라 집단적인 한과 개인적인 한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맺힌 한을 슬기롭게 풀어내면 신명으로 승화될 수 있지만,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마음에서 생겨나는 병인 우울증이나 홧병(火病)이 생기고 만다.

고싸움의 기원을 줄다리기라고 보기도 하는데, 줄다리기 줄에 고를 형성하면 고싸움 줄이 되는 것이고, 고싸움 시합을 여러 차례 벌이다가 끝까지 승부를 내지 못하면 곳줄을 다시 풀어 만든 줄로 줄다리기 시합을 벌여 최종 승부를 가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도식하여 보면, ‘풀림-맺힘-풀림’의 순환원리가 드러난다. ‘맺힘-풀림’ 또는 ‘풀림-맺힘’의 순환체계는 우리민족의 문화전승의 현장에서 중요한 생활영위의 원리로 작동하였다. 긴장상태가 고조되면 어느 시기에 특별한 사건(계기)을 만들어 긴장을 완화·해소하는 기제를 설정하고, 반대로 사람들이 마음의 상태가 이완되어 사회적 활력이 저하되면 어느 시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긴장과 이완의 순환적 반복을 통해 항상 안정된 상태를 추구해 온 향촌적 사회질서를 구현하고 유지하여 온 것이다.

고싸움놀이 역시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그 기제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서부와 동부로 상징되는 암 곳줄과 숫 곳줄이 서로 맞부딪힌다는 점에서 암수의 성적 결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또한 고싸움 곳줄의 형태가 용, 이무기, 뱀 등의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고 여기는 영물(靈物: 파충류)로 인식하는 이른바 용사(龍蛇)신앙의 구체적 상징물로 보는 것이다.

또한 고싸움에는 ‘신명’이라는 축제의 흥취를 통해 구성원들 간의 화합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대동단결을 도모함으로써 공동체 번영의 원동력을 얻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있다.

고싸움놀이가 과거 또는 현재 연희되는 곳은 벼농사가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평야를 가지고 있으며, 300여호에 이르는 거대한 마을(大村) 또는 4∼5개 마을이 인접하여 형성된 촌락이 집단(集落)을 이루는 지역들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농업생산성을 갖춘 마을이 아니면 고싸움 민속놀이가 생성되어 연행(演行)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농업의 기계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시기에는 모든 농사작업이 사람의 육체적인 힘(人力)으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논농사는 그 특성상 모내기, 논매기, 벼 베기, 탈곡 등의 작업이 보름에서 1달가량의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모내기나 벼 베기 등은 4∼5명 가량의 소수의 인원만으로는 작업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부상조하는 협동작업이 필수 불가결하였다. 품앗이나 두레와 같은 여러 사람의 노동력을 하나로 모으는 전통적 작업관행의 핵심요소는 협업이다.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줄다리기, 고싸움 같은 대동놀이는 농경사회에서 생겨난 것으로 이를 통해 힘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로 삼았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민속놀이를 연희함으로써 힘겨운 농업노동을 행할 때 일사분란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훈련 즉 ‘예행연습의 장(場)’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70년대 후반에 이미 농업사회를 탈피하였고 현재 급속한 정보화와 세계화를 기반으로 한 후기산업사회에 진입한 상황이다. 지금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민속놀이 칠석고싸움도 중대한 시대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주민들의 고령화와 이농현상으로 인하여 동질집단인 옻돌마을 사람들만으로는 온전하게 고싸움놀이의 ‘고’를 띄워낼 수 조차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여 있는 것이다. 고싸움놀이의 항구적인 보존과 전승을 위한 보다 심도 있고 근본적인 고민이 요구되는 연유이다. 이제 국내적 범위를 뛰어넘어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의 도약도 나름 꿈꾸어야 한다.

아울러, 현재 운영중인 ‘고싸움놀이 전수관’도 중장기적으로 ‘광주 칠석고싸움 박물관’ 체제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지역민들의 많은 관심과 폭넓은 공감대 속에서 진지하게 검토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신호남지 필자 김형주 프로필

-전남대학교 사학과 졸업

-전남대 대학원 국문과 수료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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