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돌 한글날을 보내며
2016년 10월 14일(금) 00:00
지난번 칼럼의 내용이 제법 괜찮았던 모양이다. 많은 독자들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상찬(賞讚)을 아끼지 않았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그중 몇 개를 소개한다.

“집에서 손맛 좀 있다는 아줌마가 만든 음식 먹다가 고급호텔 레스토랑에서 일류 셰프가 만든 음식을 먹는 기분이랄까. 역시 프로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올해의 칼럼상 뭐 이런 건 없나?” 최고의 찬사(讚辭)다.

“세상만사 재미있게 잘 읽었네. 자꾸만 곱씹게 하는 글. 미소 띤 ‘야지’가 비수 같구만.” 역시 칭찬이다. 한결같은 칭송(稱頌),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은 문자를 보내 온 이들이 모두 내 친구들이다. 친구 좋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이러니 친구가 장에 가면 ‘망옷’(거름) 지고서라도 따라나서는 것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고 ‘미소 띤 야지’라니. 야지가 뭐지? 일본말인가? 또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일본말 같지는 않다면서 ‘야지랑’이란 단어와 비슷한 뜻 아니겠느냐고 한다. 그래 ‘야지랑’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얄밉도록 능청맞고 천연스러운 태도’라고 나와 있다.

아 그렇구나. 같은 뜻의 그림씨(형용사)도 있었다. ‘야지랑스럽다’ ‘이지렁스럽다’. 모두 ‘능청맞고 천연스럽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야지는 순수한 우리말인가? 이제부터는 혼자서 야지란 말의 뿌리(어원, 語源)를 찾아 나선다.

이윽고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다듬기에서 ‘야지’를 대체할 말로 ‘야유’(揶揄)를 선정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야유는 ‘남을 빈정거려 놀림, 또는 그런 말이나 몸짓’을 뜻한다. 이제서야 야지가 순우리말이 아님을 알겠다. 그게 우리말이라면 국립국어원에서 그렇게 다듬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야지랑’이나 ‘이지렁’이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어 사전에 ‘야지’(野次)와 ‘이지’(彌次)는 ‘짓궂게 굴거나 웃음거리로 만들어 놀림 또는 놀리는 말’로 풀이돼 있다.

결국 야지, 야지랑, 이지랑 이 모두 일본말 야지(やじ)에서 온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지만(혹은 거꾸로 우리말 ‘야지’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것일지도 모르지만) 순우리말인 것처럼 보이는 낱말이 실은 외국에서 들어와 변한 말들은 의외로 많다. 밀가루로 만든 ‘빵’이 원래는 포르투칼어이며 고무신의 ‘고무’가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것임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더욱이 한자어에서 변한 말은 셀 수도 없이 많으니 ‘마냥 그립다’에서의 ‘마냥’도 그렇다. ‘항상’ ‘늘’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마냥’의 원말은 뜻밖에도 ‘매상’(每常)이라는 한자말이다. ‘강냉이’나 ‘깡냉이’도 순우리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자말(‘江南’)이 변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글’과 ‘글씨’도 한자(契: 문서 ‘결’ 또는 ‘계’)의 변이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말이 잠시 옆길로 샜지만 애초 ‘야지’라는 말의 탐험에 나선 것은 어수선한 정국 때문에 잠시 한글날을 잊고 넘어갈 뻔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야지랑’-만약 이게 순우리말이라면 울림소리(유성음, 有聲音)가 들어가는 멋진 말을 또 하나 발견한 희열을 느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울림소리!

우리말의 울림소리에는 크게 흐름소리(유음, 流音)와 콧소리(비음, 鼻音)가 있다. 이 콧소리(ㄴ, ㅁ 및 받침 ㅇ)와 흐름소리(ㄹ)가 들어가는 단어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이 매우 청아하고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다.

예를 들면 ‘말랑말랑’ ‘찰랑찰랑’ ‘살랑살랑’ 따위의 시늉말이나 ‘어강됴리’ ‘다롱디리’ ‘동동다리’ ‘얄리얄리얄라셩’ 따위의 남는소리(餘音)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가치인 ‘사랑’이란 단어에 은하수를 뜻하는 순 우리말 ‘미르내’(용이 살고 있는 강 또는 시내)까지.

울림소리로 어우러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이런 동요는 또 어떤가?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구슬비’라는 제목의 이 동요는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60년이 넘도록 교과서에 실렸으니 이를 모르는 이는 간첩일시 분명한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쓴 가장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동시 100년의 역사에서 ‘송알송알’ ‘총총’ ‘송송송’ 등 시늉말(의태어)을 이토록 잘 살려 쓴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전병호(63) 시인의 극찬이다.

‘구슬비’를 작곡한 이는 ‘우리의 소원’을 만든 안병원(1926∼2015)이요 노랫말을 만든 이는 권오순(1919∼1995) 시인이다. 작사자 권 시인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앞서 말한 전 시인의 입을 통해 권 시인의 생애를 살짝 더듬어 보자.

“권오순 시인은 세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는데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되자, ‘미운 일본 글 일본말을 배우기보다 더 많은 다른 공부를 집에서 나 혼자 하겠다’고 결심하고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고 해요. 시인은 아버지께 사 달라고 부탁해 받은 ‘한글대사전’으로 우리말과 글을 익히면서 밤새워 시를 썼습니다. 우리말과 글을 아름답게 갈고 다듬어 시를 쓰는 것이 장애를 이기고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지요. 1937년 ‘카톨릭 소년’에 발표한 ‘구슬비’는 시인의 이런 마음을 담은 대표적인 시입니다.”

“1948년 11월, 시인은 홀로 고향인 황해도 해주에서 인민군의 총소리를 들으며 조각배를 타고 캄캄한 바다를 건넜습니다. 남한에서 ‘구슬비’가 동요로 작곡되어 널리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았기 때문이지요. 남한에 온 시인은 결혼도 하지 않고 고아원에서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돌보는 등 평생을 재속(在俗) 수녀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삶을 살다 가신 것이지요.”

570돌 한글날을 보내며 많은 선각자들을 떠올린다.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은 물론 한힌샘 주시경(1876-1914) 선생,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 그리고 앞서 언급한 권오순 시인 등 우리말과 글을 아름답게 갈고 다듬는 것이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형극(荊棘)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던 숱한 분들. 이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 아닐까.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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