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 원류를 찾아서-9부 몽골 브럇트] 바이칼판 ‘선녀와 나무꾼’ 아들이 나라를 세웠다는데…
2016년 02월 22일(월) 00:00 가가
사람들 마음속에는 지도가 한 장 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위안을 줬던 공간과 이야기가 골목을 만들고, 오솔길과 산을 이룬다. 이 지도의 일부는 실제 있었던 공간이지만 상당 부분은 상상이 만들어 내기도 하고 이미 지워져 있기도 하다. 지도에 길을 그리고 집을 짓고, 호랑이며 괴물이며 천사 등을 숨겨두는 건 오래된 이야기 덕분이다. 추억처럼 쌓여있는 이야기가 흙과 나무와 돌이 돼 집을 짓고 마을을 이뤄 하나의 지도를 완성한다. 또 이 지도 속 공간이 던져주는 추억은 몹시 남루하더라도 위안을 주기에 충분하고, 간혹 슬픔이 너무 깊어 떠들어보기 싫더라도 쓴 약처럼 마음을 치유해준다. 마음속 지도는 이처럼 ‘실재와 허망’을 오가며 ‘있었던 듯’ ‘없었던 듯’ 우리 곁에 있다. ‘설화’ ‘신화’ ‘민담’ ‘전래동화’ ‘옛날이야기’ ‘야담’ ‘전설’ ‘우화’ ‘소화’. 인류가 남기고 좇은 수많은 이야기도 ‘사람의 마음속 지도’처럼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내기 충분하다. 또 이야기는 문화 원류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친절한 지도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고대종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바이칼 일대에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야 했던 고대종족은 자신들의 삶과 역사, 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를 구전으로 지켜 왔다.
바이칼의 대표적인 이야기는 ‘11 씨족의 기원설화’인 ‘호리 투메드’(Horitumed)다. 브럇트 민족의 이야기인 호리 투메드는 ‘호리오도이 사냥꾼’ 이야기로도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선녀와 나무꾼’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호리 투메드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변형된 형태로 전해오지만 ‘선녀와 나무꾼’형 설화라는 모티브는 유사하다.
소개하자면, 이렇다. 호리 투메드라는 사람이 바이칼호 주변을 걷다고 동북쪽에서 백조 아홉 마리가 날아와 호숫가에 백의를 벗고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게 된다. 호리 투메드는 그 중 한 벌을 훔친 후 날아가지 못한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부부는 열 한 명의 자식을 낳게 되고, 어느 날 아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아내의 간청이 계속되자 호리 투메드는 숨겨뒀던 옷을 꺼내준다. 옷을 입은 아내는 백조로 변해 하늘로 날아가려고 하자 호리 투메드는 아내를 붙잡으며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한다.
아내는 각각 후브두드, 갈조트, 호이차이, 할빙, 바트나이, 호타이, 고쉬드, 차강, 샤라이드, 보동고드, 하르가나 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이들 자손은 각각 11 씨족의 조상이 됐다.
브럇트·몽골 일각에서는 11번째 아들이 일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해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가 부여라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알타이산 인근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바르가 바타르란 사람에게는 일르테이 메르겡, 보리아다이 메르겡, 호리오도이 메르겡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사냥을 하며 살던 이들은 사이가 나빠져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바다 남쪽에 자리를 잡게 된다.
어느 날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사냥을 나갔다가 텡게르의 세 딸이 날아와 호숫가에 새옷을 벗어놓고 목욕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그 중 한 소녀의 옷을 훔쳐 가지고 나무 뒤에 숨었다. 얼마 후 물에서 나온 두 소녀는 새옷을 입고 날아가고 한 소녀만 남게 된다.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그녀에게 옷을 돌려주지 않고 집으로 데려와 다른 옷을 내줬다. 둘은 함께 살게 됐고 여섯 명의 자식을 낳았다.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옷을 달라고 간청하자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새옷을 주게 된다. 그러자 아내는 탁자 위에 올라가 천장으로 날아올랐고, 깜짝 놀란 호리오도이는 아내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백조의 다리는 검은색이 됐다.
이후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두 번째 아내를 맞아 11명의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들이 열 한 씨족을 이루게 된다.
호리오도이 메르겡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내가 탁자 위에 올라가 하늘로 날아간다는 줄거리는 브럇트, 몽골족의 집인 유르타와 게르의 형태와 의미가 잘 녹아 있는 부분이다. 브럇트, 몽골족은 자신들의 유르타 게르의 청장에 구멍을 뚫어 이곳으로 신이 드나든다고 믿고 있다.
또 목욕하는 여자의 옷을 훔쳐 아내를 맞는다는 이야기는 약탈혼의 유목민의 습속이 투영돼 있다고 보는 학자도 많다.
무엇보다도 하늘의 백조나 선녀가 옷을 잃어버려 사람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가 옷을 찾아 다시 날아간다는 이야기는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 온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야채 이야기’, 중국 ‘혹녀전설’, 일본 ‘우의설화’ 스칸디나비아 ‘백조 처녀’, 이탈리아 ‘비둘기 아가씨’, 인도 ‘공주와 학’, 아랍 ‘사냥꾼과 깃털 모자를 쓴 미녀’, 베트남 ‘아 측과 창 응으우’, 티베트 놉상 왕자’ 등이 ‘선녀와 나무꾼’ 범주에 속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들 유사 설화에 대한 비교 연구도 활발하다. 전문가들은 천상적 여성 존재와 지상적 남성 인물의 만남과 이별 과정에 주목한다. 또 이들의 부부 관계 뿐 아니라 부모, 자녀까지 등장해 한 단위의 전통 가족구조를 지니고 있는 점도 눈여겨본다.
천상적 존재 선녀(백조)와 지상적 인물 나무꾼(사냥꾼)의 결합은 동질적 민족, 동질적 문화 기반의 남녀가 아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하늘에서 온 종족’이라는 세계관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의미 있는 것은 게세르, 단군신화처럼 하늘과 인간의 결합을 통해 민족이 탄생할 수 있는 구조로 연계된다는 것도 흥미롭다.
선녀와 나무꾼 유형의 이야기 중 선녀(백조)가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가는지, 그냥 두고 가는지도 눈여겨봐야 한다. 자녀를 두고 가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씨족 신화로 연결된다. 브럇트와 몽골처럼 백조가 자녀를 두고 하늘로 가면 이들 자녀가 하나의 씨족을 이루게 된다. 반면 한국의 경우처럼 씨족신화가 아니기에 선녀가 자녀를 데려가는 이야기도 등장하게 된다.
씨족 신화와 연계된 나무꾼 이야기는 각 씨족의 토템 설정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브럇트 홍고도르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백조에서 나왔다고 믿고, 호리 브럇트족은 기러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다.
민족의 오래된 ‘이야기 지도’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옛이야기가 단순한 흥미에 그치지 않고 민족과 문화를 형성하는 가치와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또 숱한 이야기를 따라가야만 아시아 문화 원류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kroh@kwangju.co.kr
호리 투메드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변형된 형태로 전해오지만 ‘선녀와 나무꾼’형 설화라는 모티브는 유사하다.
소개하자면, 이렇다. 호리 투메드라는 사람이 바이칼호 주변을 걷다고 동북쪽에서 백조 아홉 마리가 날아와 호숫가에 백의를 벗고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게 된다. 호리 투메드는 그 중 한 벌을 훔친 후 날아가지 못한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부부는 열 한 명의 자식을 낳게 되고, 어느 날 아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아내의 간청이 계속되자 호리 투메드는 숨겨뒀던 옷을 꺼내준다. 옷을 입은 아내는 백조로 변해 하늘로 날아가려고 하자 호리 투메드는 아내를 붙잡으며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한다.
아내는 각각 후브두드, 갈조트, 호이차이, 할빙, 바트나이, 호타이, 고쉬드, 차강, 샤라이드, 보동고드, 하르가나 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이들 자손은 각각 11 씨족의 조상이 됐다.
브럇트·몽골 일각에서는 11번째 아들이 일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해 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가 부여라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알타이산 인근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바르가 바타르란 사람에게는 일르테이 메르겡, 보리아다이 메르겡, 호리오도이 메르겡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사냥을 하며 살던 이들은 사이가 나빠져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바다 남쪽에 자리를 잡게 된다.
어느 날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사냥을 나갔다가 텡게르의 세 딸이 날아와 호숫가에 새옷을 벗어놓고 목욕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그 중 한 소녀의 옷을 훔쳐 가지고 나무 뒤에 숨었다. 얼마 후 물에서 나온 두 소녀는 새옷을 입고 날아가고 한 소녀만 남게 된다.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그녀에게 옷을 돌려주지 않고 집으로 데려와 다른 옷을 내줬다. 둘은 함께 살게 됐고 여섯 명의 자식을 낳았다.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옷을 달라고 간청하자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새옷을 주게 된다. 그러자 아내는 탁자 위에 올라가 천장으로 날아올랐고, 깜짝 놀란 호리오도이는 아내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백조의 다리는 검은색이 됐다.
이후 호리오도이 메르겡은 두 번째 아내를 맞아 11명의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들이 열 한 씨족을 이루게 된다.
호리오도이 메르겡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내가 탁자 위에 올라가 하늘로 날아간다는 줄거리는 브럇트, 몽골족의 집인 유르타와 게르의 형태와 의미가 잘 녹아 있는 부분이다. 브럇트, 몽골족은 자신들의 유르타 게르의 청장에 구멍을 뚫어 이곳으로 신이 드나든다고 믿고 있다.
또 목욕하는 여자의 옷을 훔쳐 아내를 맞는다는 이야기는 약탈혼의 유목민의 습속이 투영돼 있다고 보는 학자도 많다.
무엇보다도 하늘의 백조나 선녀가 옷을 잃어버려 사람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가 옷을 찾아 다시 날아간다는 이야기는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 온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야채 이야기’, 중국 ‘혹녀전설’, 일본 ‘우의설화’ 스칸디나비아 ‘백조 처녀’, 이탈리아 ‘비둘기 아가씨’, 인도 ‘공주와 학’, 아랍 ‘사냥꾼과 깃털 모자를 쓴 미녀’, 베트남 ‘아 측과 창 응으우’, 티베트 놉상 왕자’ 등이 ‘선녀와 나무꾼’ 범주에 속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들 유사 설화에 대한 비교 연구도 활발하다. 전문가들은 천상적 여성 존재와 지상적 남성 인물의 만남과 이별 과정에 주목한다. 또 이들의 부부 관계 뿐 아니라 부모, 자녀까지 등장해 한 단위의 전통 가족구조를 지니고 있는 점도 눈여겨본다.
천상적 존재 선녀(백조)와 지상적 인물 나무꾼(사냥꾼)의 결합은 동질적 민족, 동질적 문화 기반의 남녀가 아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하늘에서 온 종족’이라는 세계관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의미 있는 것은 게세르, 단군신화처럼 하늘과 인간의 결합을 통해 민족이 탄생할 수 있는 구조로 연계된다는 것도 흥미롭다.
선녀와 나무꾼 유형의 이야기 중 선녀(백조)가 아이를 데리고 하늘로 가는지, 그냥 두고 가는지도 눈여겨봐야 한다. 자녀를 두고 가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씨족 신화로 연결된다. 브럇트와 몽골처럼 백조가 자녀를 두고 하늘로 가면 이들 자녀가 하나의 씨족을 이루게 된다. 반면 한국의 경우처럼 씨족신화가 아니기에 선녀가 자녀를 데려가는 이야기도 등장하게 된다.
씨족 신화와 연계된 나무꾼 이야기는 각 씨족의 토템 설정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브럇트 홍고도르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백조에서 나왔다고 믿고, 호리 브럇트족은 기러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다.
민족의 오래된 ‘이야기 지도’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옛이야기가 단순한 흥미에 그치지 않고 민족과 문화를 형성하는 가치와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또 숱한 이야기를 따라가야만 아시아 문화 원류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kro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