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한의 품에 안겨 광주에 삶의 둥지를 튼 지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이곳까지 올 때의 꿈과 희망은 온데간데없고 일가친척 없는 광주에서 나 홀로 새 터전을 일군다는 것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어쨌든 살아남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혼자 힘으로 사회를 인식하며 나름대로의 삶의 지혜도 터득하였고 평범한 광주시민으로 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자녀교육에서부터 당당한 사회인이 되기까지 너무나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새터민은 용어조차 생소하기만 하였고 우리는 우리대로 광주지역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처음 경험하는 낯선 곳이었습니다. 막상 살아가려고 하니 생활전반에 아무런 기반도 없었고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특히 취업의 문턱은 너무나 높아서 몇 번이나 거듭해서 쓴 잔을 마시고 처음 왔을 때 마음속에 품었던 꿈과 희망과 용기는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포기하면 더 이상 갈 데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30대 중반이었지만 대학진학을 결심하고 만학도가 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증을 얻었지만 현실은 정작 자격증이 있다고 반겨주지는 않았습니다. 일정한 인간관계가 취업에 한 몫 하는 것이 사회흐름일진데 일가친척도 없는 저는 또 하나의 외부인으로 취급받았으며 원하는 전문직에 취업한다는 것은 한낱 꿈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현실에 서 있는 제가 어떤 비현실적인 특혜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이것만큼은 우리 국민들이 꼭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우리가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는 것이 어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새터민의 좌절과 실패까지도 포용해줄 수 있는 이웃이 있을 때 우리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당당한 생활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래도 자신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제 노력보다는 긍정적인 말과 좋은 시선으로 위로해주고 바라봐주었던 대학동기들과 교수님들, 주위 분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새터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지원도 있지만 어찌보면 그보다 더 간절히 필요한 것이 정신적인 지주가 아닐까요?

새터민들이 초기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의 하나가 심리적 안정이 덜 된 상황에서 지역사회에 투입되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생활에 나선다면 십중팔구 실패하게 되고 다시 정상을 회복하는 데는 두세 배의 어려움이 겪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의 따뜻한 온정이 새터민의 마음을 녹이고 새터민에게 자신감을 주고 새터민이 지역사회를 떠받드는 든든한 기둥으로까지 성장하게 합니다.

이런 지역사회의 온정도 필요하지만 새터민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곁들여지지 않고는 성공적인 정착은 불가능하고 영원히 외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광주에 새터민의 초기적응을 돕는 통일부 지정기관인 ‘하나센터’(광주전남북한이주민지원센터 운영)가 문을 열게 되었다는 소식에 큰 기대를 걸어봅니다. ‘하나센터’가 지역사회와 새터민을 연결하는 가교가 되어 새터민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일자리 찾기에 중요한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광주가 새터민을 품어내는 데 성공하여 한 차원 더 높은 인권도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세요. 새터민 여러분, 힘 내시고 꼭 잘 살아봅시다.

<41세·여·하나센터 자원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