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정신의 미래화’를 위하여-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2024년 05월 20일(월) 21:30
5·18 민주화운동이 44주년을 맞았다. 5월 민주 영령들을 기리며, 1980년 광주에서 최후까지 한국 민주주의를 지킨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는 주간이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5·18 기간에는 광주 전야제와 공식 기념식장에서 있거나, 혹은 서울의 기념식장에 있곤 했다.

민주 세력은 지속적으로 ‘광주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도록 요구해 왔다. 이번 4월 총선에서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광주 5·18 정신이 숭고한 국가유산이 되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발 더 나아가, 나는 광주 5·18 정신이 지속적으로 되돌아보고 기념하는 ‘과거’ 국가유산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 유산이 되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광주 5·18 정신의 미래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감으로서 나는 그 출발점이 미래세대의 광주 5·18교육이라고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5·18 민주화운동은 점점 더 과거사가 되고, 학생들에게는 교과서에서 보는 역사가 되어간다. 이는 불가피하다. 5·18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기억하고 그 의미를 체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미래세대의 지식과 기억 속에서 5·18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이정표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광주 5·18 정신이 미래에도 점점 더 깊은 의미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광주 5·18 정신의 미래화’라고 생각한다. 광주 5·18 정신의 부단한 재해석, 그리고 미래의제로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아시아의 많은 민주주의·인권활동가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됐다. 광주는 아시아의 많은 활동가들에게 성소(聖所)가 돼 가고 있다. 25년차를 맞은 ‘광주 인권상’은 이미 아시아에서 대표적으로 영예로운 상이 돼 있다. 이는 광주를 단지 한반도 남부의 지역도시가 아니라 아시아의 현재적·미래적 실천에 영감을 주는 도시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5·18 정신의 미래화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가운데 광주가 다른 지역과는 다른 미래의 모습을 앞당겨 구현할 때만 가능하다. 지방자치는 중앙정치 권력의 분산이라는 면에서 긍정적 의미를 띠고 있지만 지역 토호와 기득권, 지역주민의 삶과 분리된 중앙정치의 모방, 강고한 지역불평등 질서의 고착과 심화 등 부정적 측면도 있다. 나는 광주가 5·18 정신의 계승을 통해 지방자치의 전범이 돼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한 역사적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단체들 간의 균열과 분리 역시 인지상정 차원의 갈등을 넘어선 대안적인 미덕으로 극복하길 바란다. 이렇게 될 때, 광주는 다른 지역에 영감을 주는 미래도시로 지속될 것이다.

나는 박정희 정부 시절 긴급조치 9호로 투옥되었던 친구들과 함께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소기금’을 만든 적이 있다. 우리가 받은 형사 보상금을 모아 아름다운재단에 마련한 기금이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5·18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을 돕고자 했다. 최근에는 미얀마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는 국경 지역 활동가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을 포함한 민주화 운동 경험을 공유하는 ‘온라인 학교’ 지원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아시아 평화연방’을 구상하는 ‘논문 공모사업’도 있었다. 유럽의 평화연합과 유사한 초국가적인 평화 연합의 가능성을 민주화 정신의 연장선 위에서 모색하는 것이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안중근 의사가 ‘동아시아 평화회의’를 제안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만시지탄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나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에 온힘을 쏟고 있다. 단지 조례 하나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이 ‘글로벌 인권 선진국’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는 광주 5·18 정신이 있다. 물론 광주는 지금도 아시아 인권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키워가고 광주가 바람직한 미래를 앞당겨 실현하는 선진 인권도시가 된다면 그 상징성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1980년 5월 학살을 대면한 광주 시민이 느낀 절망을, 나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절망이 깊을수록 더 간절해지는 열망, 바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에 대해선 감히 공감한다. 그 열망을 기억한다면, 지금의 한계를 뛰어넘는 미래의 씨앗이 광주에서 꿈틀대리라고, 나는 해마다 5·18 기간이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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