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애 작가 “버려진 것들에 새 숨 불어넣는 나는 ‘인형 엄마’ 입니다”
2026년 01월 06일(화) 19:25 가가
40년 노하우 ‘인형엄마의 인형만들기’ 출간
납작·모자 인형, 인형극 그림자 상자 다채
신문지·폐박스·쌀푸대 등 모든 게 재료
서울·미국서 활동…2022년 광주 정착
5·18 행사 등서 시민들과 인형 제작
세월호·여성 독립운동가 프로젝트 등 참여
“인형만들기는 철학과 인생 비치는 작업
납작·모자 인형, 인형극 그림자 상자 다채
신문지·폐박스·쌀푸대 등 모든 게 재료
서울·미국서 활동…2022년 광주 정착
5·18 행사 등서 시민들과 인형 제작
세월호·여성 독립운동가 프로젝트 등 참여
“인형만들기는 철학과 인생 비치는 작업
‘인형 엄마’ 엄정애(70) 작가의 작업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광주극장 옆 작업실 계단을 오르면, 사람 키보다 훨씬 큰 토끼 인형이 먼저 반긴다. 작업실 안도 인형 천지다. 수많은 인형에 둘러싸여 그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인형을 만든다.
작가를 처음 인터뷰한 건 지난 2021년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열린 전시회에서였다. 5㎝ 크기의 작은 손가락 인형부터 3m가 넘는 대형 인형까지 그가 펼쳐보인 ‘인형의 세계’는 흥미로웠다. 당시 미국 미네아폴리스에 거주했던 그는 잠시 광주에 머무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다며 기회가 닿으면 광주에 살고싶다고 말했었다. 그 때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을 품어주고, 그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인형을 만드는 ‘인형엄마’가 함께 한다면 광주엔 ‘동화같은’ 아름다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썼는데, 그는 지금 광주에 정착해 사람들을 만나 함께 부대끼고 인형을 만든다.
◇인형 만들기 소개한 책 출간
그의 책 출간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했다. 지난해말 출간된 ‘인형엄마의 인형만들기’(상상창작소 봄)는 그의 첫 책이다.
“처음에는 인형 작품을 곁들인 수필을 써볼까 싶었습니다. 한데 오랫동안 인형 만들기 수업을 받은 제자들이 교재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수업을 할 때 따라서 만드는 데 집중하다보면 메모를 하거나 그럴 시간이 없거든요. 집에서 다시 해볼 때 도움이 되는 책이 필요하다고 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다 전해주고 싶었는데 잘 됐나 모르겠네요. 찬찬히 따라하다 보면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웃음)”
엄 작가는 책에 진심을 다했다. 인형 제작 과정을 그림으로 세세하게 기록했고 원고는 모두 손으로 썼다. 가독성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손글씨와 가장 비슷한 폰트로 대체됐지만 그 만큼 정성을 담았다. 직접 인형을 만든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책에 등장하는 인형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엄 작가 작품의 주재료는 종이다. 한지를 비롯해 신문지, 폐박스, 쌀푸대, 종이봉투, 호일·랩·휴지 등을 감아둔 종이 막대 등 ‘버려진 것들’이 ‘뚝딱뚝딱’ 그의 손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 또 병뚜껑, 나무젓가락, 헌옷 등도 유용하게 쓰인다. 책에 등장하는 인형은 종이 막대 인형, 관절인형, 마스크 인형, 큰 인형, 납작 인형, 손 인형, 모자 인형, 인형극 그림자 상자까지 다채롭다. 폐박스를 잘라 만든 납작인형은 앞 뒤 얼굴의 ‘극적인 반전’을 통해 즐거움을 주고, 장갑과 양말을 활용한 손인형은 유머스럽다.
서울에서 13년째 ‘테이블 인형극제’를 진행한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인형극은 ‘바리공주’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딸 바리데기가 온갖 역경을 딛고 부모를 살리는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바리데기 신화는 정말 아름답고 의미있는데 잊혀져가고 소홀히 다뤄져 너무 아쉽습니다.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3개월간 집밖에 나가지 않고 정신없이 인형을 만들었어요. 이 작품을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외국에서는 공연한 적이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무대에 올릴 기회가 없었어요. 광주에서 공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울, 미국에서 활동 후 광주 정착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아 엄마 속바지를 잘라 인형 옷을 만들곤 했다. 간호학을 공부했지만 1976년 ‘종이와 인형’ 극단에 들어가며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고, 2000년 극단 ‘인형엄마’를 창단, 인형극 제작과 인형만들기를 이어왔다. 남편과 일찍 사별해 홀로 두 아이를 키운 엄 작가는 음악을 하던 미국인 남편을 과천 마당극축제에서 만났고, 아이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미국으로 떠났다.
인형이 깨우면 일어나고, 인형 손을 잡고 밥을 먹었던 두 딸은 ‘인형 만드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했고 엄마의 끼를 물려 받아 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배우인 큰 딸 공예지씨는 TV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대운을 잡아라’ 등에 출연했고 은지씨는 청소년단체에서 근무하며 그림책 작가로도 활동중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가 중 갑작스런 남편의 별세 소식을 들은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남편의 유해와 함께 다시 광주를 찾았고 2022년부터 광주는 그의 ‘집’이 됐다. 엄 작가가 광주와 인연을 맺은 건 2019년 전남대 시민대학이 진행한 큰 인형만들기 행사부터다. 당시 ‘광주의 5월’을 접한 그는 오월기록관을 찾고 관련 책을 읽으며 5월을 알아갔고, 다음해가 5·18 40주년이라는 이야기에 꼭 광주 사람들과 인형을 만들고 싶었다. 이듬해 광주의 예술가, 시민들과 함께 윤상원 열사 등 45개의 얼굴 인형을 만들었고 인형을 쓴 이들은 5·18 행사에서 시민행진을 벌였다. 오월 이야기는 올해도 이어졌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인 동호의 실재 인물 문재학 열사와 그의 어머니를 큰 인형으로 만들었고, 5·18 전야제 때는‘5·18 엄마가 만든 주먹밥’을 제작했다.
그의 인형은 세상과도 연결돼 있다. 미국에 정착하기 전 해외입양아의 부모 찾아주기에 나섰던 그는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떠나는 입양아에게 선물로 들려준 한지 인형 다섯 점이 계기가 돼 인디애나폴리스 박물관에서 전시를 열게 됐고, 워크숍에 참여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큰 인형 만드는 법을 배웠다. 세월호를 알리기 위해 미국에서 인형을 쓰고 이어간 도보행진, 여성독립운동가 프로젝트는 사회를 향한 목소리였다.
40년 넘게 인형과 함께 해온 그는 ‘딱 하루’ 인형이 싫어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언젠가 제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인형이더군요. 당시 닥종이 한장 한장을 뜯어붙이며 20~24㎝짜리 인형을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형들이 저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 보기 싫어서 궤짝이랑 집안 곳곳에 인형을 넣어뒀는데 하필 그날 일본에서 인형을 보러오겠다는 사람이 있어 결국 하루만에 인형을 다시 풀어놓았죠. 인형이 저를 놔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명이라고 할까요. 그 이후로 편안해졌지요. 인형은 온화하고, 힘든 걸 모두 받아주는 것같습니다.”
엄 작가의 고민 중 하나는 인형을 보관하는 일이다. 그의 작품은 해남, 청주, 곡성 등 곳곳에 흩어져 있고 수미터가 넘는 대형 작품은 얼굴만 남기고 잘라서 버리기도 했는데 그럴 땐 “마음이 갈래갈래 찢어지는” 기분이 든다. 큰 인형들을 만들 수 있는 작업공간을 갖는 게 꿈이기도 하다.
그는 과천 한마당축제, 춘천 인형극제, 춘천마임축제, 5·18 등 다양한 행사에서 시민워크숍을 진행하며 인형만들기를 소개하고 있다.
“인형을 만들면서 사람들은 너무 행복해해요. 인형 만들며 찡그린 사람을 단 한명도 보지 못했어요. 시민워크숍에 왔던 한 가족이 기억에 남아요. 전형적인 무뚝뚝한 아버지와 엄마, 두 아들이 왔는데 다른 팀들과 달리 대화도 없고 협업을 하지 않더라고요. 한달 쯤 함께 인형을 만들며 아버지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뿌뜻했죠. 인형은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해주기도 하죠. 친구들에게 인형 선물하는 걸 좋아했는데 결혼한 친구 아이의 100일 때 집을 방문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만들어준 체크무늬 조랑말이 매달린 모빌을 보고 그 시절이 떠올라 뭉클했죠.”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인형 만들기는 만든 삶의 솜씨, 색깔, 철학과 인생이 비치는 작업이자 작품 그 자체이다. 만드는 동안의 수고와 고단함 또한 기쁨이고, 인형만이 갖고 있는 환상과 인형만이 뿜어낼 수 있는 유머의 극대화, 기쁨과 치유를 만날 수 있다.”
앞으로 ‘인형엄마’의 손에서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탄생하고, 그들은 또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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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마개, 판지, 나뭇가지로 만든 납작인형. <상상창작소 봄 제공> |
그의 책 출간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했다. 지난해말 출간된 ‘인형엄마의 인형만들기’(상상창작소 봄)는 그의 첫 책이다.
엄 작가는 책에 진심을 다했다. 인형 제작 과정을 그림으로 세세하게 기록했고 원고는 모두 손으로 썼다. 가독성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손글씨와 가장 비슷한 폰트로 대체됐지만 그 만큼 정성을 담았다. 직접 인형을 만든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책에 등장하는 인형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엄 작가 작품의 주재료는 종이다. 한지를 비롯해 신문지, 폐박스, 쌀푸대, 종이봉투, 호일·랩·휴지 등을 감아둔 종이 막대 등 ‘버려진 것들’이 ‘뚝딱뚝딱’ 그의 손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 또 병뚜껑, 나무젓가락, 헌옷 등도 유용하게 쓰인다. 책에 등장하는 인형은 종이 막대 인형, 관절인형, 마스크 인형, 큰 인형, 납작 인형, 손 인형, 모자 인형, 인형극 그림자 상자까지 다채롭다. 폐박스를 잘라 만든 납작인형은 앞 뒤 얼굴의 ‘극적인 반전’을 통해 즐거움을 주고, 장갑과 양말을 활용한 손인형은 유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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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박스로 만든 납작인. <상상창작소 봄 제공> |
“부모에게 버림받은 딸 바리데기가 온갖 역경을 딛고 부모를 살리는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바리데기 신화는 정말 아름답고 의미있는데 잊혀져가고 소홀히 다뤄져 너무 아쉽습니다.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3개월간 집밖에 나가지 않고 정신없이 인형을 만들었어요. 이 작품을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외국에서는 공연한 적이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무대에 올릴 기회가 없었어요. 광주에서 공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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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정애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극 ‘바리공주’를 표지로 한 책 ‘인형엄마의 인형만들기’ <상상창작소 봄 제공> |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아 엄마 속바지를 잘라 인형 옷을 만들곤 했다. 간호학을 공부했지만 1976년 ‘종이와 인형’ 극단에 들어가며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고, 2000년 극단 ‘인형엄마’를 창단, 인형극 제작과 인형만들기를 이어왔다. 남편과 일찍 사별해 홀로 두 아이를 키운 엄 작가는 음악을 하던 미국인 남편을 과천 마당극축제에서 만났고, 아이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미국으로 떠났다.
인형이 깨우면 일어나고, 인형 손을 잡고 밥을 먹었던 두 딸은 ‘인형 만드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했고 엄마의 끼를 물려 받아 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배우인 큰 딸 공예지씨는 TV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대운을 잡아라’ 등에 출연했고 은지씨는 청소년단체에서 근무하며 그림책 작가로도 활동중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가 중 갑작스런 남편의 별세 소식을 들은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남편의 유해와 함께 다시 광주를 찾았고 2022년부터 광주는 그의 ‘집’이 됐다. 엄 작가가 광주와 인연을 맺은 건 2019년 전남대 시민대학이 진행한 큰 인형만들기 행사부터다. 당시 ‘광주의 5월’을 접한 그는 오월기록관을 찾고 관련 책을 읽으며 5월을 알아갔고, 다음해가 5·18 40주년이라는 이야기에 꼭 광주 사람들과 인형을 만들고 싶었다. 이듬해 광주의 예술가, 시민들과 함께 윤상원 열사 등 45개의 얼굴 인형을 만들었고 인형을 쓴 이들은 5·18 행사에서 시민행진을 벌였다. 오월 이야기는 올해도 이어졌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인 동호의 실재 인물 문재학 열사와 그의 어머니를 큰 인형으로 만들었고, 5·18 전야제 때는‘5·18 엄마가 만든 주먹밥’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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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 모자인형을 쓴 어린이의 모습. <상상창작소 봄 제공> |
40년 넘게 인형과 함께 해온 그는 ‘딱 하루’ 인형이 싫어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언젠가 제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인형이더군요. 당시 닥종이 한장 한장을 뜯어붙이며 20~24㎝짜리 인형을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형들이 저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 보기 싫어서 궤짝이랑 집안 곳곳에 인형을 넣어뒀는데 하필 그날 일본에서 인형을 보러오겠다는 사람이 있어 결국 하루만에 인형을 다시 풀어놓았죠. 인형이 저를 놔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명이라고 할까요. 그 이후로 편안해졌지요. 인형은 온화하고, 힘든 걸 모두 받아주는 것같습니다.”
엄 작가의 고민 중 하나는 인형을 보관하는 일이다. 그의 작품은 해남, 청주, 곡성 등 곳곳에 흩어져 있고 수미터가 넘는 대형 작품은 얼굴만 남기고 잘라서 버리기도 했는데 그럴 땐 “마음이 갈래갈래 찢어지는” 기분이 든다. 큰 인형들을 만들 수 있는 작업공간을 갖는 게 꿈이기도 하다.
그는 과천 한마당축제, 춘천 인형극제, 춘천마임축제, 5·18 등 다양한 행사에서 시민워크숍을 진행하며 인형만들기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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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동구청과 진행한 여성독립운동가 프로젝트에서 큰 인형을 제작중인 엄정애 작가. <상상창작소 봄 제공> |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인형 만들기는 만든 삶의 솜씨, 색깔, 철학과 인생이 비치는 작업이자 작품 그 자체이다. 만드는 동안의 수고와 고단함 또한 기쁨이고, 인형만이 갖고 있는 환상과 인형만이 뿜어낼 수 있는 유머의 극대화, 기쁨과 치유를 만날 수 있다.”
앞으로 ‘인형엄마’의 손에서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탄생하고, 그들은 또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