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2026년 01월 01일(목) 16:00

김중일 시인

국내외로 여전히 불안정한 시국이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불안’은 그 ‘끝’을 기다릴 수 있는 일시적 ‘변수’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받아들여야 할 일상의 일단이다. 이번 응모작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특히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에 대해서는, 시적 표현과 상상력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될 수 있는 언어의 ‘전시실’을 얼마나 개성적인 설계로 구축하고 있는가를 보다 집중적으로 살폈다. 그 과정에서 남은 작품은 ‘파도의 감정’, ‘유령의 목록’, ‘튤립’이었다. ‘튤립’의 응모자는 그 언술 속에 유희성 짙은 특유의 리듬이 깊이 배어있었다. 그것은 단지 흥을 돋우는 운율의 층위가 아니라, 이미지의 확장으로 탐미적인 시공간을 만들어 낼 만큼의 힘이 있었다. ‘유령의 목록’의 응모자는 현실과 우화 사이 절묘한 위치에 시공간을 구축할 줄 안다. 가령 “7층과 8층 사이” 7.5층에 멈춘 승강기의 공간이다. 응모작 중에서 ‘유령의 목록’에 특히 주목했다. 섬광과 함께 남겨진 “빈 의자” 위에 구르고 있는 “펜 하나”의 이미지는 쓸쓸한 삶과 죽음의 선연한 잔해였다.

당선작으로 ‘파도의 감정’을 선정했다. 시의 외관은 가벼운 돛배 같았지만 묵직한 닻을 질질 끌고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최종심의 다른 응모자들처럼 자신만의 색깔로 시공간을 경쾌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한 가지 더 눈길이 가는 점이 있었다. 시라는 형식이 미지의 “오로라”를 향해 여행하는 돛이라면, 돛을 올린 바로 그 자리에 현실의 “여름”을 닻처럼 깊이 내리고 있었다. 그 무겁고 차가운 닻은 현실 세계와 미적 세계 사이에 균열을 내며 박혀 있다. 그 균열 속에서의 첨예한 균형감각이 다른 응모자에 비해 조금 더 주목되는 점이었다. 더구나 금도끼 은도끼 같은 그의 닻은 다른 응모작 속에서도 “딥시크”, “산성비”, “비관세 장벽” 등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 든든했다. 그 넓고 깊은 여행을 계속하시길 바란다.



김중일 시인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현대시작품상, 신동엽문학상 등 다수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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