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2026년 01월 01일(목) 16:00 가가
고니의 동전
김령희
김령희
“야, 비켜. 냄새나니까!”
태오가 앞서가던 고니를 확 밀치고 교실로 들어갔다.
고니는 고개를 숙이고 교실 맨 뒤 자기 책상으로 갔다. 햇살 좋은 여름날 운동장 수업을 하고 들어오는 길이라 고니에게 땀냄새가 났다. 같은 운동을 했는데도 태오에게는 비누 향이 났다.
태오는 자기 자리에 앉자마자 책가방에서 상자를 꺼내 열었다. 안에는 인터넷 게임에 사용하는 아이템 동전이 가득 들어있었다. 새로운 왕국의 왕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검은 사자 동전도 있었다. 사자의 검은 갈기가 근사하게 새겨진 동전. 아이들은 동전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만지지 마! 보기만 해!”
태오는 2학년 2반의 왕이라도 된 듯 명령했고, 아이들은 고분고분 따랐다.
“진짜 많이 모았다. 검은 사자는 어디서 구한 거야?”
“내가 말만 하면 아빠가 다 사줘.”
짝꿍이 부러워하며 묻자 태오는 으스대며 말했다.
고니는 사자 동전이 궁금했다. 엉덩이가 들썩들썩했지만 태오 옆으로 갈 수 없었다. 제자리에서 머리를 쭉 빼고 태오를 보기만 했다.
“자, 이제 4교시 시작해야지? 다들 책 펼치세요.”
선생님의 말에 태오는 상자를 가방에 다시 넣었고, 아이들은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 내내 교실은 시끌벅적했지만, 고니는 조용했다.
딩동댕동, 종이 울리고 수업이 끝나자 태오와 아이들은 급식실로 몰려갔다.
고니는 제일 늦게 급식실에 들어가서는 맨 구석에 앉았다. 멀뚱멀뚱 식판만 보며 오물오물 밥을 다 먹고는 급식으로 나온 딸기주스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주스를 마시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고니의 팔을 세게 쳤다. 태오였다. 고니의 얼굴과 옷은 딸기주스 범벅이 됐다.
“갑자기 움직이면 어떡해? 나한테까지 튀었잖아!”
태오가 소리쳤다.
잘못은 태오가 했는데, 고니가 고개를 숙였다.
태오가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공을 던져 때리고, 이유 없이 괴롭혀도 고니는 늘 가만히 있었다. 그럴 때마다 태오를 따라다니는 무리는 고니를 걱정스럽게 보았지만, 선뜻 돕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모두 태오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태오가 급식실을 나가자 으레 그랬듯이 아이들이 따라 나갔다.
고니는 손으로 옷을 툭툭 털고는 식판을 반납하러 갔다. 급식 선생님이 고니를 보더니 주스 묻은 얼굴과 옷을 휴지로 닦아주었다.
“에구, 어쩌다 이랬어?”
고니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급식 선생님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젤리 하나를 꺼내 고니에게 주었다.
“이거 먹으면 기분 좋아질 거야.”
고니가 좋아하는 쫀득쫀득 젤리다. 고니는 젤리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아직 점심시간이 남아 있었다. 태오가 있는 교실에 들어가는 것보다 걷는 게 나았다. 아이들이 없는 곳으로 마냥 걷다가 학교 창고까지 갔다.
창고 벽에는 하얀 날개를 펼친 아기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칫, 천사가 어딨어? 있으면 나와 보든지…….”
고니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딸기꽃이 피겠구나!”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청바지를 입은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고니는 눈을 끔벅거리며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너한테 좋은 냄새 난다고.”
“아닌데…….”
고니가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너는 네 냄새를 모르는구나? 진짜 냄새를 맡을 줄 알아야지.”
할아버지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는 콧구멍을 넓히고 바람을 깊이 들이마셨다.
“오래간만에 바람도 쐬고 좋네. 불러줘서 고맙다.”
“부른 적 없는데…….”
고니가 중얼거리자 할아버지는 천사 벽화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네가 나와 보라며?”
“네? 할아버지가 아기천사라고요?”
“얘야, 천사도 늙는단다. 사람들이 진짜가 뭔지 모르니까 천사를 이렇게 그려놨지. 이런 데 있으려니 내가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
고니는 할아버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벽화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보다가 손가락으로 벽화의 천사 날개를 가리켰다.
“날개? 너무 낡아서 잘라버렸어. 사람들 머리카락 지저분해지면 자르는 것처럼. 난 편한 게 좋아. 청바지도 편해서 좋고.”
그때 할아버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오랜만에 움직였더니 배가 고프네.”
고니는 들고 있던 젤리를 내려다보았다.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또 들리자, 고니는 쭈뼛거리며 젤리를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나 주는 거야?”
할아버지가 묻자 고니는 머리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봉지를 뜯고, 젤리를 한입에 다 넣고는 씹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받아. 계산은 정확히 해야지.”
“괜찮은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받을 게 있으면 받고, 말할 게 있으면 똑바로 말을 해야지!”
할아버지가 말하자 고니는 고개를 숙였다.
“고개 들고!”
그러자 고니가 얼굴을 들어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말이 잘 안 나와요.”
“왜 말이 잘 안 나와? 목소리도 이렇게 예쁜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사람들 앞에서는…….”
고니가 말끝을 흐렸다.
“눈에 힘 팍 주고, 주먹 불끈 쥐고 말해 봐. 그럼 목소리에 힘이 생길 거야!”
할아버지는 주먹 쥐고, 눈을 부릅뜨고 고니를 보았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는 몸에 힘주지 않아도 편하게 말이 나올 거야. 너한테 새로운 힘이 생길 거거든! 어서 연습해 봐. 눈에 힘! 주먹 불끈!”
고니는 할아버지를 따라 하다 말고 물었다.
“근데 진짜 천사 맞아요?”
“날 못 믿겠니? 그럼 널 믿으렴!”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동전을 다시 내밀었다. 그제야 고니가 동전을 받았다. 천사 날개가 새겨진 금빛 동전이었다.
“멋지지? 이 날개 너 줄게! 이걸로 뭐든 살 수 있을 거야.”
검은 사자라도 새겨져 있으면 자랑이라도 할 텐데, 고니는 이것으로 뭘 살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고니는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자 고니는 오줌이 마려워졌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리를 배배 꼬고, 몸을 비틀어도 소용이 없었다. 고니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교실 뒷문으로 달렸다.
“고니야, 어디 가니?”
선생님이 물었지만 고니는 교실을 뛰쳐나갔다. 정신없이 화장실로 가서는 소변기 앞에 섰다. 서둘러 반바지 지퍼를 내리려는데, 그 잠깐을 못 참고 노란 물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바지가 젖었다.
“헉!”
허겁지겁 휴지로 닦았지만 오줌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고니는 도망치듯 화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운동장 모퉁이에 있는 나무 뒤에 숨었다. 한참을 있다 보니 젖은 바지가 여름 햇볕에 조금씩 마르고 있었다.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고니는 왜 안 들어오지?”
수업하던 선생님이 복도 쪽을 보며 말했다.
“제가 찾아올게요.”
태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태오는 얼른 교실을 나갔다.
고니는 주머니에서 금빛 날개 동전을 꺼내 보았다. 갈아입을 바지는커녕 젤리 하나도 살 수 없는 동전이었다. 눈살을 찡그리고 동전을 보다가, 화풀이라도 하듯 화단으로 휙 던졌다. 그런데 막상 동전을 던지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저걸로 뭐든 살 수 있다고 했는데…….’
고니는 화단으로 들어갔다. 동전을 찾아 이곳저곳 들추다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유난히 더듬이가 긴 노린재가 보였다. 건드리기만 해도 지독한 방귀 냄새가 나는 노린재! 고니는 냄새가 묻을까 봐 조심조심 노린재를 피해 동전을 집어 들었다.
“윽, 냄새! 너 오줌 쌌냐?”
어느새 태오가 뒤에 와 있었다. 고니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야, 선생님이 너 데려오래!”
이때 고니가 들고 있던 동전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태오가 동전을 뺏어 들었다.
“못 보던 건데, 무슨 아이템이지? 이건 내가 가져간다!”
“내 거야…….”
고니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게 왜 네 거야? 너도 주운 거잖아!”
“주운 거 아니야…….”
고니는 입술을 옴짝거렸다. 고니의 목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야! 너 지렁이 같아. 입술만 꿈틀꿈틀!”
그때 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고니는 눈에 힘을 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 지렁이 아니야!”
드디어 고니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너 지금 나한테 소리 질렀냐?”
태오가 주먹으로 고니의 어깨를 때렸다. 다시 때리려고 하자 이번에는 고니가 맞섰다. 둘은 엉겨붙었고, 화단에서 엎치락덮치락 뒹굴었다. 그렇게 싸우다가 지쳐 일어났다. 싸움이 끝나는 것 같았는데 태오가 뒤에서 고니를 힘껏 밀었다. 꽈당! 고니가 넘어졌다. 무릎에서 빨간 피가 나왔다.
“이제 까불지 마라!”
태오가 날개 동전을 들고 교실로 가려고 하자 고니가 황급히 외쳤다.
“동전 줄게. 대신 냄새 팔아!”
“뭐?”
“네 냄새 나한테 팔라고.”
“그래라, 그럼.”
태오는 고니를 비웃더니 교실로 걸었다.
고니는 이대로 교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오줌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 딸기 비누가 있었다. 비누로 몽글몽글 거품을 내고 얼굴을 닦고, 목을 닦고, 다리를 닦았다. 무릎 상처는 피해서 닦았다. 상처는 아파서 만질 수 없었다.
그사이 교실에 도착한 태오가 당당하게 앞문을 열었다.
“선생님, 고니 찾았어요!”
태오가 교실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코를 막았다. 이상한 냄새가 교실에 퍼졌다. 기분 나쁜 냄새는 점점 더 지독해졌다. 자기 등에 노린재 여러 마리가 붙어있는 것을 태오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은 창문을 활짝 열고, 손부채질을 하기도 했다.
이때 고니가 뒷문으로 들어왔다. 고니의 걱정과 다르게 아무도 오줌 냄새를 맡지 못했다. 오히려 고니 근처의 아이들은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
“고니야 괜찮니? 왜 다친 거야?”
무릎 상처를 본 선생님이 고니에게 다가왔다.
“운동장에서 혼자 넘어졌어요!”
선생님이 고니에게 물었는데, 태오가 불쑥 끼어들었다.
“태오 말이 맞아?”
선생님이 허리를 숙여 고니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아뇨…… 태오가 그랬어요!”
고니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고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태오가 괴롭힌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은 태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오 엄마는 학교로 달려와서 고니의 손을 붙잡고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태오의 손은 잡지 못했다. 엄마인데도 아들의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 태오는 집에 가자마자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목욕을 한참 했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태오가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코를 막고 태오를 피했다. 태오 근처에 앉은 아이들은 슬그머니 책상을 옆으로 옮기기도 했다. 태오는 냄새만 사라지면 아이들과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도 태오에게 노린재 냄새가 났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태오를 빼고 놀았다. 태오는 혼자 점심을 먹고, 혼자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는 향 좋은 비누로 씻고 또 씻었다.
하지만 다음 날도 태오는 여전히 혼자였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교실 뒤로 몰려갔다. 태오는 동전 상자를 꺼내 열었다.
“얘들아, 이거 보여줄게!”
태오가 검은 사자 동전을 꺼냈지만 아무도 그 옆으로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더 이상 태오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았다. 태오는 풀이 죽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고니가 태오 옆으로 갔다. 태오는 고니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나한테 나쁜 냄새 나?”
고니가 고개를 저었다.
태오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입을 앙다물고 상자 속을 뒤적거렸다.
“이상하다. 네 동전 분명히 여기 뒀는데…….”
“나 검은 사자 봐도 돼?”
고니는 눈에 힘을 주지 않았다. 주먹을 쥐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말이 나왔다.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 고니에게 새로운 힘이 생긴 것 같았다.
“고니야 미안. 네 동전 없어졌어. 대신 이거 가질래?”
태오는 사자 동전을 내밀었다.
검은 사자 동전을 받아 들고 고니가 환하게 웃었다.
금빛 날개 동전은 할아버지 손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천사 벽화 앞에서 동전을 흐뭇하게 보다가 움켜쥐었다.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
태오가 앞서가던 고니를 확 밀치고 교실로 들어갔다.
고니는 고개를 숙이고 교실 맨 뒤 자기 책상으로 갔다. 햇살 좋은 여름날 운동장 수업을 하고 들어오는 길이라 고니에게 땀냄새가 났다. 같은 운동을 했는데도 태오에게는 비누 향이 났다.
“만지지 마! 보기만 해!”
태오는 2학년 2반의 왕이라도 된 듯 명령했고, 아이들은 고분고분 따랐다.
“진짜 많이 모았다. 검은 사자는 어디서 구한 거야?”
짝꿍이 부러워하며 묻자 태오는 으스대며 말했다.
고니는 사자 동전이 궁금했다. 엉덩이가 들썩들썩했지만 태오 옆으로 갈 수 없었다. 제자리에서 머리를 쭉 빼고 태오를 보기만 했다.
“자, 이제 4교시 시작해야지? 다들 책 펼치세요.”
수업 내내 교실은 시끌벅적했지만, 고니는 조용했다.
딩동댕동, 종이 울리고 수업이 끝나자 태오와 아이들은 급식실로 몰려갔다.
고니는 제일 늦게 급식실에 들어가서는 맨 구석에 앉았다. 멀뚱멀뚱 식판만 보며 오물오물 밥을 다 먹고는 급식으로 나온 딸기주스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주스를 마시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고니의 팔을 세게 쳤다. 태오였다. 고니의 얼굴과 옷은 딸기주스 범벅이 됐다.
“갑자기 움직이면 어떡해? 나한테까지 튀었잖아!”
태오가 소리쳤다.
잘못은 태오가 했는데, 고니가 고개를 숙였다.
태오가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공을 던져 때리고, 이유 없이 괴롭혀도 고니는 늘 가만히 있었다. 그럴 때마다 태오를 따라다니는 무리는 고니를 걱정스럽게 보았지만, 선뜻 돕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모두 태오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태오가 급식실을 나가자 으레 그랬듯이 아이들이 따라 나갔다.
고니는 손으로 옷을 툭툭 털고는 식판을 반납하러 갔다. 급식 선생님이 고니를 보더니 주스 묻은 얼굴과 옷을 휴지로 닦아주었다.
“에구, 어쩌다 이랬어?”
고니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급식 선생님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젤리 하나를 꺼내 고니에게 주었다.
“이거 먹으면 기분 좋아질 거야.”
고니가 좋아하는 쫀득쫀득 젤리다. 고니는 젤리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아직 점심시간이 남아 있었다. 태오가 있는 교실에 들어가는 것보다 걷는 게 나았다. 아이들이 없는 곳으로 마냥 걷다가 학교 창고까지 갔다.
창고 벽에는 하얀 날개를 펼친 아기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칫, 천사가 어딨어? 있으면 나와 보든지…….”
고니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딸기꽃이 피겠구나!”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청바지를 입은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고니는 눈을 끔벅거리며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너한테 좋은 냄새 난다고.”
“아닌데…….”
고니가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너는 네 냄새를 모르는구나? 진짜 냄새를 맡을 줄 알아야지.”
할아버지는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는 콧구멍을 넓히고 바람을 깊이 들이마셨다.
“오래간만에 바람도 쐬고 좋네. 불러줘서 고맙다.”
“부른 적 없는데…….”
고니가 중얼거리자 할아버지는 천사 벽화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네가 나와 보라며?”
“네? 할아버지가 아기천사라고요?”
“얘야, 천사도 늙는단다. 사람들이 진짜가 뭔지 모르니까 천사를 이렇게 그려놨지. 이런 데 있으려니 내가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
고니는 할아버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벽화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보다가 손가락으로 벽화의 천사 날개를 가리켰다.
“날개? 너무 낡아서 잘라버렸어. 사람들 머리카락 지저분해지면 자르는 것처럼. 난 편한 게 좋아. 청바지도 편해서 좋고.”
그때 할아버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오랜만에 움직였더니 배가 고프네.”
고니는 들고 있던 젤리를 내려다보았다.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또 들리자, 고니는 쭈뼛거리며 젤리를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나 주는 거야?”
할아버지가 묻자 고니는 머리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봉지를 뜯고, 젤리를 한입에 다 넣고는 씹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받아. 계산은 정확히 해야지.”
“괜찮은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받을 게 있으면 받고, 말할 게 있으면 똑바로 말을 해야지!”
할아버지가 말하자 고니는 고개를 숙였다.
“고개 들고!”
그러자 고니가 얼굴을 들어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말이 잘 안 나와요.”
“왜 말이 잘 안 나와? 목소리도 이렇게 예쁜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사람들 앞에서는…….”
고니가 말끝을 흐렸다.
“눈에 힘 팍 주고, 주먹 불끈 쥐고 말해 봐. 그럼 목소리에 힘이 생길 거야!”
할아버지는 주먹 쥐고, 눈을 부릅뜨고 고니를 보았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는 몸에 힘주지 않아도 편하게 말이 나올 거야. 너한테 새로운 힘이 생길 거거든! 어서 연습해 봐. 눈에 힘! 주먹 불끈!”
고니는 할아버지를 따라 하다 말고 물었다.
“근데 진짜 천사 맞아요?”
“날 못 믿겠니? 그럼 널 믿으렴!”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동전을 다시 내밀었다. 그제야 고니가 동전을 받았다. 천사 날개가 새겨진 금빛 동전이었다.
“멋지지? 이 날개 너 줄게! 이걸로 뭐든 살 수 있을 거야.”
검은 사자라도 새겨져 있으면 자랑이라도 할 텐데, 고니는 이것으로 뭘 살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고니는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자 고니는 오줌이 마려워졌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리를 배배 꼬고, 몸을 비틀어도 소용이 없었다. 고니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교실 뒷문으로 달렸다.
“고니야, 어디 가니?”
선생님이 물었지만 고니는 교실을 뛰쳐나갔다. 정신없이 화장실로 가서는 소변기 앞에 섰다. 서둘러 반바지 지퍼를 내리려는데, 그 잠깐을 못 참고 노란 물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바지가 젖었다.
“헉!”
허겁지겁 휴지로 닦았지만 오줌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고니는 도망치듯 화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운동장 모퉁이에 있는 나무 뒤에 숨었다. 한참을 있다 보니 젖은 바지가 여름 햇볕에 조금씩 마르고 있었다.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고니는 왜 안 들어오지?”
수업하던 선생님이 복도 쪽을 보며 말했다.
“제가 찾아올게요.”
태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태오는 얼른 교실을 나갔다.
고니는 주머니에서 금빛 날개 동전을 꺼내 보았다. 갈아입을 바지는커녕 젤리 하나도 살 수 없는 동전이었다. 눈살을 찡그리고 동전을 보다가, 화풀이라도 하듯 화단으로 휙 던졌다. 그런데 막상 동전을 던지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저걸로 뭐든 살 수 있다고 했는데…….’
고니는 화단으로 들어갔다. 동전을 찾아 이곳저곳 들추다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유난히 더듬이가 긴 노린재가 보였다. 건드리기만 해도 지독한 방귀 냄새가 나는 노린재! 고니는 냄새가 묻을까 봐 조심조심 노린재를 피해 동전을 집어 들었다.
“윽, 냄새! 너 오줌 쌌냐?”
어느새 태오가 뒤에 와 있었다. 고니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야, 선생님이 너 데려오래!”
이때 고니가 들고 있던 동전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태오가 동전을 뺏어 들었다.
“못 보던 건데, 무슨 아이템이지? 이건 내가 가져간다!”
“내 거야…….”
고니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게 왜 네 거야? 너도 주운 거잖아!”
“주운 거 아니야…….”
고니는 입술을 옴짝거렸다. 고니의 목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야! 너 지렁이 같아. 입술만 꿈틀꿈틀!”
그때 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고니는 눈에 힘을 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 지렁이 아니야!”
드디어 고니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너 지금 나한테 소리 질렀냐?”
태오가 주먹으로 고니의 어깨를 때렸다. 다시 때리려고 하자 이번에는 고니가 맞섰다. 둘은 엉겨붙었고, 화단에서 엎치락덮치락 뒹굴었다. 그렇게 싸우다가 지쳐 일어났다. 싸움이 끝나는 것 같았는데 태오가 뒤에서 고니를 힘껏 밀었다. 꽈당! 고니가 넘어졌다. 무릎에서 빨간 피가 나왔다.
“이제 까불지 마라!”
태오가 날개 동전을 들고 교실로 가려고 하자 고니가 황급히 외쳤다.
“동전 줄게. 대신 냄새 팔아!”
“뭐?”
“네 냄새 나한테 팔라고.”
“그래라, 그럼.”
태오는 고니를 비웃더니 교실로 걸었다.
고니는 이대로 교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오줌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 딸기 비누가 있었다. 비누로 몽글몽글 거품을 내고 얼굴을 닦고, 목을 닦고, 다리를 닦았다. 무릎 상처는 피해서 닦았다. 상처는 아파서 만질 수 없었다.
그사이 교실에 도착한 태오가 당당하게 앞문을 열었다.
“선생님, 고니 찾았어요!”
태오가 교실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코를 막았다. 이상한 냄새가 교실에 퍼졌다. 기분 나쁜 냄새는 점점 더 지독해졌다. 자기 등에 노린재 여러 마리가 붙어있는 것을 태오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은 창문을 활짝 열고, 손부채질을 하기도 했다.
이때 고니가 뒷문으로 들어왔다. 고니의 걱정과 다르게 아무도 오줌 냄새를 맡지 못했다. 오히려 고니 근처의 아이들은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
“고니야 괜찮니? 왜 다친 거야?”
무릎 상처를 본 선생님이 고니에게 다가왔다.
“운동장에서 혼자 넘어졌어요!”
선생님이 고니에게 물었는데, 태오가 불쑥 끼어들었다.
“태오 말이 맞아?”
선생님이 허리를 숙여 고니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아뇨…… 태오가 그랬어요!”
고니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고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태오가 괴롭힌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은 태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오 엄마는 학교로 달려와서 고니의 손을 붙잡고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태오의 손은 잡지 못했다. 엄마인데도 아들의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 태오는 집에 가자마자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목욕을 한참 했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날 태오가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코를 막고 태오를 피했다. 태오 근처에 앉은 아이들은 슬그머니 책상을 옆으로 옮기기도 했다. 태오는 냄새만 사라지면 아이들과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도 태오에게 노린재 냄새가 났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태오를 빼고 놀았다. 태오는 혼자 점심을 먹고, 혼자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는 향 좋은 비누로 씻고 또 씻었다.
하지만 다음 날도 태오는 여전히 혼자였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교실 뒤로 몰려갔다. 태오는 동전 상자를 꺼내 열었다.
“얘들아, 이거 보여줄게!”
태오가 검은 사자 동전을 꺼냈지만 아무도 그 옆으로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더 이상 태오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았다. 태오는 풀이 죽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고니가 태오 옆으로 갔다. 태오는 고니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나한테 나쁜 냄새 나?”
고니가 고개를 저었다.
태오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입을 앙다물고 상자 속을 뒤적거렸다.
“이상하다. 네 동전 분명히 여기 뒀는데…….”
“나 검은 사자 봐도 돼?”
고니는 눈에 힘을 주지 않았다. 주먹을 쥐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말이 나왔다.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 고니에게 새로운 힘이 생긴 것 같았다.
“고니야 미안. 네 동전 없어졌어. 대신 이거 가질래?”
태오는 사자 동전을 내밀었다.
검은 사자 동전을 받아 들고 고니가 환하게 웃었다.
금빛 날개 동전은 할아버지 손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천사 벽화 앞에서 동전을 흐뭇하게 보다가 움켜쥐었다.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