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재즈로 되살아난 100년의 기억
2025년 07월 15일(화) 20:00
아트스페이스 23일·8월 20일
음악극 ‘재즈오라토리오 흥학관’
흥학관의 역사성 담아낸 창작 무대
10곡으로 시대적 의미 서사 전개

공연을 기획한 최수희 작곡가 <흥학관 제공>

“일천구백이십일년, 꽃이 만개한 사월 여기 이 터에 큰 잔치가 열렸으니, 우리 젊은이들이 몸과 마음을 갈고 닦기 위해 하나 둘 모이네.”

광주 동구 광산동 한 길모퉁이. 잊힌 듯 잠들어 있던 그 자리에 다시 불이 켜졌다. 1920년대 청년들의 배움터이자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던 흥학관이 100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무대로 되살아난다.

복합 문화예술공간 ‘아트스페이스 흥학관’에서 오는 23일과 8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창작 음악극 ‘재즈오라토리오 흥학관’이 펼쳐진다. 이번 작품은 흥학관이 품어온 시간과 이야기를 국악과 재즈를 통해 풀어낸 창작 초연작이다.

공연의 기획과 작곡은 최수희 작곡가가 맡았다. 최 작곡가는 뉴욕 퀸즈 칼리지에서 석사, 파이브타운스 칼리지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재즈음악을 중심으로 광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는 “광주에서 자란 예술가로서 지역의 문화유산을 예술 콘텐츠로 풀어내고 싶었다”며 “흥학관은 단지 과거의 건물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지는 ‘광주 정신’의 상징과도 같다.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는 아트스페이스 흥학관의 관장이자 국내 재즈계를 대표하는 색소폰 연주자 박수용을 비롯해 플루티스트 황태용, 재즈피아니스트 강윤숙 등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오라토리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총 10곡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은 각 곡이 하나의 장면을 이루며 흥학관의 시대적 의미를 서사적으로 전개한다. ‘1921-잔치’, ‘청년-둥지를 틀다’, ‘계몽-어두움을 열다’, ‘희로애락’ 등 창작곡들은 공간의 태동과 청년들의 각성을 음악으로 형상화한다. 고은 시인의 시 ‘광주는 빛입니다’를 바탕으로 한 창작곡 ‘함께’에서는 “무등산 장불재 불빛 바람재 내려오며 어둠마다 밝히는 불빛”이라는 가사가 지성이 빛나는 공간이자 광주 정신이 시작된 장소로서의 흥학관을 환기한다.

특히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재즈에 국악적 색채를 덧입힌 점이 흥미롭다. 가야금 병창을 전공한 보컬리스트 심세희, 남도 판소리 제1호 전수 장학생 함승우가 보컬로 참여했다. 색소폰과 플루트는 대금처럼, 피아노는 가야금의 주법처럼 연주돼 새로운 질감을 만든다. ‘임을 위한 행진곡’, ‘상록수’, ‘희망가’ 등 기존의 민중가요는 재즈 편곡을 통해 현재의 감각으로 재해석됐다.

아트스페이스 흥학관에서 오는 23일과 8월 20일 ‘흥학관 재즈 오라토리오’ 공연이 펼쳐진다. 흥학관에서 열린 지난 공연 모습. <흥학관 제공>
공연은 또 콜 앤 리스폰스와 같은 전통적인 합창적 요소를 재즈적 언어로 재해석해 관객이 함께 노래하고 호흡하도록 유도한다. 즉흥 연주 파트에서는 각 연주자의 독창적 해석과 감정을 드러내 관객이 단발적 감상이 아닌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음악적 이야기에 참여하도록 했다. 최 작곡가는 “음악이 단지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관객, 시간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기를 바랐다”며 “전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했다.

공연에 앞서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의 강연도 함께 마련된다. 노 원장은 “흥학관은 1920~1930년대 학생·청년계몽운동의 요람이었으며, 청년 지식인들이 독립을 고민하고 민족의 앞날을 논의했던 공간”이라며 “당시 음악회 등 문화예술이 태동했던 장소에서 이번 공연이 열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박수용 흥학관장은 “이번 공연은 흥학관이라는 공간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담아낸 창작 무대로, 지역 청년 예술가들과 시민이 예술로 소통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며 “단순한 공연을 넘어 관객이 음악을 통해 공간의 기억을 함께 경험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흥학관은 1921년 광주 부호 최명구(1860~1924)가 자신의 회갑을 기념해 만 원을 기부하면서 광산동 100번지 일대에 건립됐다. 이곳에서는 방정환, 안재홍, 송진우 등 당대 지식인들이 초청돼 강연을 펼쳤고, 청년 계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광주시청 부속건물과 시의회 건물로 활용되다 1960년대 후반 시청이 계림동으로 이전되면서 철거됐다. 현재 옛 터는 상업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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