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라는 ‘연극’이 끝난 후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5년 06월 04일(수) 00:00 가가
마침내 새로운 날이 밝았다. 물고 물리는 사생결단의 싸움이 끝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매번 그렇지만 선거는 드라마틱한 사건의 연속이다.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기에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허를 찔린다는 말이 종종 회자되는 것은 예측 불허의 상황이 곧잘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을 뽑는 대선은 단 한 명을 선출하기에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임을 당하는’ 모 아니면 도와 같은 게임의 양상을 보인다.
선거 운동이 끝나면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뜻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 만큼 겸허히 그 결과를 기다린다는 것은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전제한다.
소년공의 장애와 어머니의 눈물
이재명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각본 없는 드라마와도 같았다. “천신만고 끝에”, “천 길 낭떠러지에서 회생한” 등등 지난한 과정을 수사하는 말들이 이를 방증한다. 다른 무엇보다 그의 삶은 극적이며 파란만장했다. 가난한 소년공에서 인권변호사를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 보통의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가혹한 시련을 견뎠다. 특히 민주당 주장대로 윤석열 정권의 이재명에 대한 ‘정적 죽이기’는 교묘하면서도 집요했고 무도했다.
지난 밤 개표가 시작되고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자 필자의 뇌리에 불현듯 한 노래가 떠올랐다. 1980년 4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샤프가 부른 ‘연극이 끝난 후’가 그것이다. 다소 진중한 멜로디와 재즈 같은 선율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은유적으로 비유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1절은 관객의 시점에서 텅 빈 무대를 바라보는 단상을, 2절은 배우의 시점으로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마음을 표현했다. 최명섭의 시적인 노랫말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생에 대한 통찰과 더불어 잔잔한 울림을 준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중략)/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침묵만이 흐르고 있죠(후략)”
대선이라는 연극이 막을 내린 지금, 유권자들은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이재명을 어떤 이미지로 떠올릴까. ‘사법고시’, ‘인권변호사’,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등으로 집약되는 성공 스토리 이면에, 소년공 시절 입은 장애의 상흔을 생각할 수 있다. “프레스에 눌려 성장판이 비틀어져 버린 왼팔을 숨기려고 한여름에도 긴팔 셔츠만 입는 저를 보며 속울음 삼키시던 어머니, 공장에서 돌아와 허겁지겁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제가 깰 새라 휘어버린 제 팔꿈치를 가만히 쓰다듬으시던 어머니”라고 회고했던 그의 페이스북 글이 인간적인 연민과 뭉클함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번에는 무대 위 배우의 시점에서, 다시 말해 이번 선거의 주인공인 유권자들 시선으로 바라 본 텅 빈 객석(관객)에 대한 단상이 있을 수 있겠다. 배우가 아닌 ‘요주의 관객’으로 눈총을 받다 퇴장당한 윤석열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무대의 주인공이던 그가, 비상계엄이라는 자책골을 넣지 않았다면 여전히 독불장군처럼 무대를 쥐락펴락했을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도 일말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치졸한 행태를 보였지만 더 이상 그에게 허락된 ‘객석’은 없어 보였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었던 대선이라는 ‘연극’은 마침내 끝났다. 호사가들은 저마다 결과를 평가하고 의미를 분석하겠지만, 필자는 각기 동서양 고전을 예로 작금의 상황과 연계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서양의 고전문학 가운데 하나인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무모함과 자기 광신에 대한 경고를 담은 소설이다. ‘모비딕’이라는 흰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은 동료들의 만류를 외면한 채 복수심에 불타 먼 바다로 나간다. 결국 고래를 잡고야말겠다는 일념은 선장을 포함해 승무원 전원이 바다에 수장되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윤석열이 ‘보수’를 위기에 빠뜨린 것은 그의 무모함과 자기광신, 타협이 없는 극한 대립이 불러온 자승자박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달리, 출발선에 선 이재명 대통령은 맹자의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을 되새겼으면 한다. 맹자의 ‘양혜왕 상편’에 나오는 말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기간 강조했던 ‘먹사니즘’과 상통하는 것으로, 생활이 안정된 연후라야 항심을 견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곧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라는 ‘군주민수’(君舟民水)와도 직결된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엎기도 하는데, 불과 두달 전 윤석열 파면이 이를 명징하게 보여주지 않던가.
이재명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각본 없는 드라마와도 같았다. “천신만고 끝에”, “천 길 낭떠러지에서 회생한” 등등 지난한 과정을 수사하는 말들이 이를 방증한다. 다른 무엇보다 그의 삶은 극적이며 파란만장했다. 가난한 소년공에서 인권변호사를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 보통의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가혹한 시련을 견뎠다. 특히 민주당 주장대로 윤석열 정권의 이재명에 대한 ‘정적 죽이기’는 교묘하면서도 집요했고 무도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음악 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중략)/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적이 있나요/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침묵만이 흐르고 있죠(후략)”
대선이라는 연극이 막을 내린 지금, 유권자들은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이재명을 어떤 이미지로 떠올릴까. ‘사법고시’, ‘인권변호사’,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등으로 집약되는 성공 스토리 이면에, 소년공 시절 입은 장애의 상흔을 생각할 수 있다. “프레스에 눌려 성장판이 비틀어져 버린 왼팔을 숨기려고 한여름에도 긴팔 셔츠만 입는 저를 보며 속울음 삼키시던 어머니, 공장에서 돌아와 허겁지겁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제가 깰 새라 휘어버린 제 팔꿈치를 가만히 쓰다듬으시던 어머니”라고 회고했던 그의 페이스북 글이 인간적인 연민과 뭉클함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번에는 무대 위 배우의 시점에서, 다시 말해 이번 선거의 주인공인 유권자들 시선으로 바라 본 텅 빈 객석(관객)에 대한 단상이 있을 수 있겠다. 배우가 아닌 ‘요주의 관객’으로 눈총을 받다 퇴장당한 윤석열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무대의 주인공이던 그가, 비상계엄이라는 자책골을 넣지 않았다면 여전히 독불장군처럼 무대를 쥐락펴락했을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도 일말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치졸한 행태를 보였지만 더 이상 그에게 허락된 ‘객석’은 없어 보였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었던 대선이라는 ‘연극’은 마침내 끝났다. 호사가들은 저마다 결과를 평가하고 의미를 분석하겠지만, 필자는 각기 동서양 고전을 예로 작금의 상황과 연계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서양의 고전문학 가운데 하나인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무모함과 자기 광신에 대한 경고를 담은 소설이다. ‘모비딕’이라는 흰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은 동료들의 만류를 외면한 채 복수심에 불타 먼 바다로 나간다. 결국 고래를 잡고야말겠다는 일념은 선장을 포함해 승무원 전원이 바다에 수장되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윤석열이 ‘보수’를 위기에 빠뜨린 것은 그의 무모함과 자기광신, 타협이 없는 극한 대립이 불러온 자승자박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달리, 출발선에 선 이재명 대통령은 맹자의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을 되새겼으면 한다. 맹자의 ‘양혜왕 상편’에 나오는 말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기간 강조했던 ‘먹사니즘’과 상통하는 것으로, 생활이 안정된 연후라야 항심을 견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곧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라는 ‘군주민수’(君舟民水)와도 직결된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엎기도 하는데, 불과 두달 전 윤석열 파면이 이를 명징하게 보여주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