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고음악 속으로…장중한 멜로디, 공연장을 채우다
2024년 10월 30일(수) 19:40
리뷰 - ‘제35회 이건음악회’
광주일보 후원…바흐 곡, 헨리 퍼셀·찰스 애비슨 협주곡·관현악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연주…레이첼 포저·신용천 협연

이건홀딩스가 ‘제35회 이건음악회’를 지난 29일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펼쳤다. 바이올린 협연자 레이첼 포저(왼쪽)와 오보이스트 신용천이 연주하는 모습. <이건홀딩스 제공>

과연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멋지게 차려입은 남녀가 웅장한 계단을 내려오는 듯하다”고 묘사할 법하다. 바흐 ‘관현악 모음곡 1번 C장조, BWV 1066’, 장대한 서곡이 흐르자 계단 위에서 턱시도 차림의 악단이 객석을 응시하는 착각마저 든다.

화려한 선율 속 존재감을 발하는 것은 바이올린 협연자 레이첼 포저의 탄주. 소규모 실내악 특성상 지휘자가 없었으나 그녀는 카리스마 있게 활대를 흔들며 마에스트라를 연상시켰다. 소리에 소리를 덧대는 배음, 앙상블이 남긴 잔향, 이날 공연장을 가득 채운 음향은 클래식필의 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29일 오후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은 ‘제35회 이건음악회’를 관람하려는 관객으로 붐볐다. 이건홀딩스가 주최하고 광주일보가 후원한 이번 공연은 바흐의 곡 네 편과 헨리 퍼셀, 찰스 애비슨의 협주곡·관현악 모음곡을 만나는 자리였다.

연주는 1979년 토론토에서 창단한 이래 “세계 최고의 바로크 오케스트라 중 하나”(그라모폰)라는 극찬을 받은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본무대에 앞서 중국계 비올리스트 브랜든 추이는 어색한 발음으로 “KIA 타이거즈가 우승한 광주는 지금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라며 “오늘만큼은 바로크 고(古)음악의 선율에 빠져 축제 여흥을 만끽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음악으로 교감하기 앞서 한국어, 스포츠를 매개로 관객을 흡인하는 모습이었다.

협연자 면면도 특별했다. 여성 최초로 2015년 왕립음악원 콘 재단 바흐상을 수상한 레이첼 포저, 한국 최초로 바로크 목관 연주단체 ‘서울 바로크 앙상블’을 창단한 신용천이 그 주인공. 이들은 ‘최고’, ‘최초’ 등 수식어를 떠나 악단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서곡을 지나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가 울려 퍼질 때, 레이첼은 오랜 호흡을 맞춘 듯 오케스트라에 녹아들었다. 바이올린의 격렬한 레가토(연음)를 콘트라베이스가 받고, 이를 다시 바이올린이 이어가는 구성의 묘가 돋보였다.

연주를 마친 뒤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협연자가 활대를 들어올리는 모습.
이어진 헨리 퍼셀 ‘요정 여왕’ 모음곡은 경쾌한 춤곡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 여름밤의 꿈’을 바탕으로 만든 세미 오페라인 터라 원곡에는 가무악 요소가 가미되나, 오직 소리에만 집중하는 오케스트라 버전도 매력적이었다.

밝은 분위기의 칸타빌레로 귀를 매료시킨 바흐 ‘칸타타 BWV42, 신포니아’도 울려 퍼졌다.

이 곡은 바흐가 부활절이 지난 첫 주일 예배를 위해 작곡한 ‘저녁에, 그러나 같은 안식일에’ 중 첫 곡이다. 합창으로 시작하는 일반 칸타타와 달리 도입부가 기악합주 신포니아로 길게 시작한다.

음악학자 알프레드 두르는 이 구성에 대해 “부활절 주간 혹사당한 성가대에 휴식을 주기 위한 바흐의 배려였을 것”이라 추측했다.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환기하듯 장중한 멜로디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안토닌 레이헤나우에르 ‘모음곡 Bb장조’도 들을 수 있었다. 비발디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난 이 악곡은 노래하듯한 선율이 도드라졌다.

이외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전환기 양상을 보여준 찰스 애비슨 ‘합주 협주곡 6번 D장조’도 감동을 선사했다. 전환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을 드러내듯 바로크의 동적 표현, 고전주의의 정형화된 형식미가 모두 깃들어 있었다.

라르고(매우 느린 속도로)에서 보여준 풍부한 표정 연기와 아다지오(매우 느리게) 선율은 말미의 비바체멘테 대목에 와서 생명력과 폭발력을 보여줬다.

공연은 바흐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c단조’로 끝맺었다. 유실된 바흐의 악보를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곡이다.

반복되는 독주와 합주(리토르넬로)로 인해 개인 기량과 합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무도를 펼치듯 춤을 추는 바이올린 주자들과 오보에의 합, 3박자 춤곡 파사칼리아의 변주와 반복은 헨델이나 할보르센의 그것과 또 다른 이채로움을 선사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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