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와 함께 한 정감넘치는 ‘하나의 봄, 고운 이야기’
2024년 05월 18일(토) 13:00
16일 하나은행 ‘컬처뱅크 광주’서 시민 상대로 대화의 시간
수도원 생활, 시 소재로 이야기…90분간 시종일관 웃음꽃

16일 하나은행 ‘컬처뱅크 광주’에서 열린 이해인 수녀와의 ‘하나의 봄, 고운 이야기’에서 한 참석자가 시를 낭송하고 있다.

“수녀원 들어 간 지 벌써 60년이 다 됐어요. 지금까지 독자들로부터 시를 쓰며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눈물의 진수를 독자들이 알아봤기 때문인 것 같아요.(중략)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검버섯이 피어 있는 모습을 봤죠. 로션을 바르면서 ‘나도 잘 관리했으면 이영애 씨처럼 예뻤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수를 치며 공감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표정이 어렸다.

지난 16일 이해인 수녀 초청 행사가 열린 하나은행(은행장 이승열) ‘컬처뱅크 광주’(하나은행 광주지점 1층, 전일빌딩245 1층). 이해인 수녀의 달변으로 시종일관 좌중에선 시종일관 웃음꽃이 만발했다. 중간 중간 탄식과 슬픔, 공감의 추임새도 섞여 나왔다.

‘하나의 봄, 고운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이야기는 광주 하나은행이 명사 특강 일환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컬처뱅크는 광주 하나은행이 ‘소통 공간’을 목표로 지난 2020년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 공간으로 지금까지 주철환 PD, 김용택 시인 등 명사들이 다녀갔다.

이날 약 90여 분에 걸쳐 진행된 행사는 이야기가 지닌 스토리의 힘, 시가 지닌 감성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쾌하고 명랑하게 말을 풀어내는 시인에게서는 암투병 환자라는 느낌이 조금도 배어 나오지 않았다.

행사장에는 중년 여성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50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했다. 참석자들은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가 들려주는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는 강연 앞부분에서는 젊은 시절 수녀원에서 겪었던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수녀원 생활은 청중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넘어 박장대소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젊은 시절엔 연극을 많이 했어요. 어느 땐 관객들에게 ‘여러분 박수도 쳐달라’고 청했는데, 지도수녀님께 바로 불려가 ‘겸손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또한 무대에 오르기 전 치장을 위해 거울을 자주 보는 경우도 있는데, 어느 땐 ‘허영심 많다’고 혼나기도 했죠.”

재미난 일화는 그뿐 아니다. 어느 때는 낯선 남자가 길을 물어보는 경우와 맞닥뜨릴 때도 있었다. 남자가 가고 나면 “수녀원선생님이 ‘누구냐고 꼬치꼬치 묻곤 한다’”며 “옛날에는 수녀원 규칙이 심해 아는 오빠가 와도 혹여 오해를 받을까 봐 ‘빨리 가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수도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율은 필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규율 이면에, 수녀의 삶 이면에 드리워진 인간적인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수녀원마다 입소하는 젊은 여성들이 눈에 띄기 적다고 한다.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요즘은 수녀가 되려는 이들이 적어 규율이나 훈육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6일 이해인 수녀가 ‘컬처뱅크 광주’에서 진행된 ‘하나의 봄, 고운 이야기’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이해인 수녀는 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낼 때는 직접 시 구절을 인용해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특히 직접 조개껍데기에 성경구절이나 시를 쓴 것을 40개나 준비해 가지고 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예전에 문학수업을 진행하면서 조개껍데기에 시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며 “오늘 강연을 위해 선물로 가지고 왔다”고 말해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지금까지 시인이 쓴 작품은 모두 1500여 편.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모두 유작이 될 것이다. 이야기 중간중간 ‘민들레영토’ 등 시와 관련된 구절이나 상황을 언급할 때는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해인 수녀의 주옥같은 시를 낭송하는 시간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각기 ‘행복한 풍경’, ‘행복의 얼굴’, ‘5월의 시’, ‘중심잡기’, ‘엄마’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저마다 가슴에 와 닿는 시를 선택해 진심을 담아 낭송하는 순간은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엄마’라는 작품을 낭송한 스텔라라는 세례명의 신자는 “수녀님의 많은 시들이 좋지만 특히 ‘엄마’라는 시는 많은 감동을 준다”며 “저 또한 시 속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 여운을 주었다.

한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소속인 이해인 수녀는 첫 서원 때 받은 수도명이 ‘클라우디아’다. ‘넓고 어진 바다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시집 ‘민들레 영토’를 비롯해 ‘이해인의 햇빛일기’, ‘인생의 열가지 생각’ 등 다수의 작품집, 수필집을 통해 종교를 초월해 사랑과 위로, 감사의 글과 말을 전하고 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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