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콘텐츠 살아나야 지역이 살아납니다”
2024년 04월 16일(화) 20:35 가가
로컬 크리에이터 이종인 ‘완도살롱’ 대표
‘완도’ 담은 칵테일 만들며 작가 초청 독서 모임…사교의 장 ‘입소문’
“로컬 정책 사람에 집중하고 지역 문화·산업 핵심역할 할 콘텐츠 필요”
‘완도’ 담은 칵테일 만들며 작가 초청 독서 모임…사교의 장 ‘입소문’
“로컬 정책 사람에 집중하고 지역 문화·산업 핵심역할 할 콘텐츠 필요”
완도읍의 한 어두운 골목길, 유일하게 형형색색의 빛을 뿜어내는 곳이 있다. 묘한 매력을 가진 이 공간은 서점이자 칵테일바, 그리고 사교 클럽인 ‘완도살롱’이다. 지역민과 여행자, 이방인들에게 인기를 끌며 핫플로 자리잡은 곳이다.
완도살롱 이종인 대표는 대학부터 마케팅 일까지 10년 간 서울에서 활동했다. 2017년 번아웃을 겪은 그는 친구가 머물고 있던 완도에 잠시 쉬러 내려왔다 고향도 아닌 완도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완도에 살아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동시에 저도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작가이기도 한 이 대표는 본인의 책을 판매하고 완도 지명 이야기가 담긴 칵테일을 만든다. 그는 독서모임을 구성해 서울에서 작가를 초청하기도 하고, 원어민 교사들과 소통하는 등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했다. 완도살롱은 기존에 완도에는 없던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며 빠르게 입소문이 났고 다양한 손님들이 교류하는 공간이 됐다. 덕분에 그는 완도에서 창의적인 지역 활동을 펼치는 ‘로컬 크리에이터’로 자리잡았다.
제주도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주최한 ‘지역 혁신가’에 선발된 일은 그가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지방 소멸과 인구 위기가 부각되던 시기 그는 지역을 혁신하는 사명감으로 활동하며 각 지자체와 사회 단체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목포대학교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 사업단이 생겨 학생들의 멘토로서 활약했다. 최근에는 전남 뿐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과정 매뉴얼’을 개발하고 싶다는 그는 “문화와 산업 전반에 로컬 콘텐츠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처음 완도에 왔을 때 청산도 축제를 통해 산업을 배우고 문화를 경험한 후 완도살롱을 탄생시킨 이야기와 많은 사례들을 공유한다”며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산업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직접 느낀 감정과 전할 메시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2년 정도 머무르다 떠날 생각으로 완도에서의 삶을 시작했다는 그는 이방인으로서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매달 완도 인구 수를 확인해요. 제가 완도에 왔을 때 5만 3000명이던 인구가 최근 4만 6000여 명으로 줄었어요. 완도의 작은 학교가 130명 정도 되니까 한 달에 학교 하나씩 사라지는 셈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무서움도 느껴요. 하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연주를 해야죠.”
이 씨는 현재 로컬과 관련된 정책의 기조가 금전적 지원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해결이 아닌 해소를 강조한 그는 “정책과 제도가 사람에게 집중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완도에 발령받아 온 청년들이 주말에 당장 뭐할 지 고민합니다. 완도에 남아있을 때 머무를 수 있는 공간 한 군데는 있어야죠. 그 공간을 제공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이 곳에 와서 위안받고, 마음이 충만해진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행복합니다. 언젠가 떠나더라도 완도살롱이라는 기능을 가진 공간은 남겨두고 싶어요.”
이날 방명록에는 ‘완도살롱 덕분에 1년을 버텼다’고 적힌, 완도를 떠나는 누군가의 글이 있었다.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완도에 살아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없었어요.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동시에 저도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작가이기도 한 이 대표는 본인의 책을 판매하고 완도 지명 이야기가 담긴 칵테일을 만든다. 그는 독서모임을 구성해 서울에서 작가를 초청하기도 하고, 원어민 교사들과 소통하는 등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했다. 완도살롱은 기존에 완도에는 없던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며 빠르게 입소문이 났고 다양한 손님들이 교류하는 공간이 됐다. 덕분에 그는 완도에서 창의적인 지역 활동을 펼치는 ‘로컬 크리에이터’로 자리잡았다.
이 대표는 “처음 완도에 왔을 때 청산도 축제를 통해 산업을 배우고 문화를 경험한 후 완도살롱을 탄생시킨 이야기와 많은 사례들을 공유한다”며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산업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직접 느낀 감정과 전할 메시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2년 정도 머무르다 떠날 생각으로 완도에서의 삶을 시작했다는 그는 이방인으로서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매달 완도 인구 수를 확인해요. 제가 완도에 왔을 때 5만 3000명이던 인구가 최근 4만 6000여 명으로 줄었어요. 완도의 작은 학교가 130명 정도 되니까 한 달에 학교 하나씩 사라지는 셈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무서움도 느껴요. 하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연주를 해야죠.”
이 씨는 현재 로컬과 관련된 정책의 기조가 금전적 지원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해결이 아닌 해소를 강조한 그는 “정책과 제도가 사람에게 집중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완도에 발령받아 온 청년들이 주말에 당장 뭐할 지 고민합니다. 완도에 남아있을 때 머무를 수 있는 공간 한 군데는 있어야죠. 그 공간을 제공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이 곳에 와서 위안받고, 마음이 충만해진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행복합니다. 언젠가 떠나더라도 완도살롱이라는 기능을 가진 공간은 남겨두고 싶어요.”
이날 방명록에는 ‘완도살롱 덕분에 1년을 버텼다’고 적힌, 완도를 떠나는 누군가의 글이 있었다.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