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미래 세대에게 5·18 이양할 기틀 마련하겠다”
2024년 04월 08일(월) 19:25
5·18 비당사자로 첫 이사
오월단체들, 미경험 세대 광주정신 계승 노력해야
5·18조사위 부실 보고서, 민간차원 대응하고 싶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미래세대에게 5·18을 이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겠습니다.”

박강배(60) 신임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그를 포함한 10명의 상임이사 중 처음으로 5·18을 직접 겪지 않은 비당사자다.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평생 5·18을 지켜봤다.

“5·18 직후인 1984년도에 조선대에 들어갔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5·18 진상규명과 관련된 집회에 자연스럽게 참여했고 졸업 후에는 5·18관련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지난 1994년 5·18특별법 제정 당시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광주·전남 공동대책위원회 간사를 맡으며 오월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전두환·노태우의 대법원 확정재판이 끝날 때까지 지 그는 5·18 유족들과 함께 전 재판 과정을 지켜봤다. 이후 이 경험을 살려 5·18기념재단 총무부장을 맡았고, 5·18기념행사준비위원회 간사를 8차례 거치며 오월과 늘 함께였다.

5·18을 떠난 시기도 있었다. 2004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공보관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팀장을 맡았고 광주시 문화재단에서 인권과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일 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5·18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고향인 신안에서 형과 함께 광주로 올라와 유학생할을 했죠. 중학생이던 1980년 당시 옛 전남도청 뒷담벼락 근방에 있던 자취방에서 직접 봤던 오월의 장면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항쟁 마지막날 의기양양하게 도청을 향해 퍼레이드를 펼치며 들어오던 계엄군의 모습과 상무대에 놓인, 수많은 피해자들의 관을 잡고 오열하던 유족들의 대비되는 장면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억으로 꼽았다. 오월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곁에서 봤던 광주시민으로 역할을 해내야겠다는 무의식적인 각오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기념재단 상임이사의 역할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기념재단의 30주년이자, 5년뒤에는 5·18민주화운동이 50주년이 된다는 점에서다.

“50주년까지 남은 시간 동안 5·18 비경험 세대에게 광주정신을 전면적으로 계승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합니다. 현재 5·18기념재단 사무처 직원과 5·18 단체의 집행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당사자들이 물러가고 비경험 세대가 전면에 등장할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만들고 5·18의 진상규명과 위상제고 등을 준비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 중심에 5·18기념재단이 있어야 하고요.”

또 지난 4년간의 5·18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담은 국가 차원의 종합결과보고서가 발간을 앞두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올해 기념재단은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세계적으로 국가범죄에 대한 국가차원의 보고서 발간 이후 민간차원의 보고서 제작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볼 때 5·18진상조사위는 조사방법의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진상조사위의 종합보고서가 나오고 나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실조사 부분에 대해 기념재단 중심으로 민간차원의 대응 보고서를 만들고 싶습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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