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우리 시대 만화가 열전 한창완·박인하 지음
2024년 01월 20일(토) 08:00
시사 만평부터 생활 웹툰까지…만화, 시대를 이야기하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목사가 상원 의원에 출마했다가 시사만화가의 만평 때문에 낙선한 사례가 있다. 만화가는 목사의 비리나 인간적인 문제에 대해 한 컷의 만평으로 비판했다. 낙선한 목사는 만화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지만 미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만화가 대중에게 보여주는 의미는 모두 열려 있다’고 판결했다. 만화가 갖는 비판 기능은 물론 과장 등 은유화된 유머 효과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지금까지 만화는 도전적인 소재와 실험정신으로 다채로운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만화가들은 시대의 장벽에 주저앉지 않았다. 때로는 이념과 탄압의 굴레를 극복하며 독자들을 향해 의미있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와 만화평론가인 박인하 서울웹툰아카데미 이사장이 펴낸 ‘우리 시대 만화가 열전’은 독자들이 애정한 37명의 만화가들을 소환한다. 국내 1호 만화이론 교수 한창완과 박인하가 들려주는 만화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는, 만화는 곧 ‘시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고 김종필 의원이 국무총리이던 시절이었다. 모 신문에서 시국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여주인공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기자가 이에 대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는 “만화가 날 그리면 난 살아 있는 겁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한 교수는 “살아 있는 정치인의 존재 근거가 만평의 표현이라는 노정객의 한마디는 만화가 갖는 시대의 자존감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만화의 시대성은 항상 도전적인 소재와 실험적인 장르를 통해 급변하는 메시지의 다양함을 제시했으며, 그때마다 스타 작가들의 작품은 시대의 선물처럼 등장했다”고 말한다.

박 평론가는 “만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매체로 존재하는 만화를 바라보아야 한다”며 “표현의 매체로 존재하는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당대를 치열하게 반영한다는 점”이라고 언급한다.

책은 194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이르는 만화가들의 주요 작품 등을 토대로 기술돼 있다. 먼저 1940~1960년대 작가들로는 김성환을 비롯해 고우영, 길창덕, 김산호, 박수동, 이상무, 이두호 등을 꼽을 수 있다.

▶‘고바우영감’은 경무대 똥통사건 등 해학과 풍자를 버무린 에피소드로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고바우영감’ 표지와 만화컷(ⓒ김성환)
지난 1955년 7월 ‘동아일보’에 실린 ‘고바우영감’은 한국전쟁 당시 청년 김성환이 다락방에서 숨어 그렸던 네 컷 만화다. 우리나라 최장기 연재 기록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고바우영감’ 탄생 50주년 기념우표 발간, 세계만화대백과사전에 한국 만화가로 유일하게 등재됐다.

이밖에 ‘만화의 문학적 도전과 성인 만화의 뉴노멀’이었던 고우영, ‘한국 명랑 만화의 보물섬’이었던 길창덕, ‘격랑의 시대에 독고탁으로 마구를 던졌던 작가’ 이상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1970~1980년대 데뷔 작가로는 백성민, 허영만, 김동화, 김수정, 이현세, 김혜린 등이 있다. 80년대는 잡지 발간이 봇물을 이루면서 만화계에 불멸의 스타들이 탄생했다. ‘아기공룡 둘리’의 김수정은 한국 캐릭터 산업의 시작을 알렸고,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는 방황하는 청춘의 해방구를 그렸다.

1990년대 데뷔 작가로는 문흥미, 윤태호, 이빈, 손희준, 곽배수, 홍승우 등이 있다. 윤태호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과감하게 재현했는데 신선함과 도전정신으로 ‘이끼’와 ‘미생’ 같은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웹툰 ‘마음의 소리’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조석은 마법 같은 섬세한 위트와 줄거리가 담긴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를 창조해가며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고 있다. ‘마음의 소리’ 표지와 만화컷
마지막으로 2000~2010년 데뷔 작가는 ‘장편 서사 웹툰의 개척자’ 강풀을 비롯해 소재는 대중적이지 않지만 대중적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김보통 등이 있다. 이밖에 조석, 하일권, 심홍아 등이 있다.

박민하 평론가는 “만화는 시대를 드러내는 여러 DNA를 품고 그 시대를 드러낸다”며 “‘만화는 시대’라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행성B·2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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