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에서 탈출…놀이 즐기며 운동하니 일석이조
2026년 01월 04일(일) 19:35
기자가 해 봤다…‘경도(경찰과 도둑)’ 모임 직접 참가해보니
젊은층 중심 게임 접목 러닝 열풍…당근마켓 모임 30여명 참여
술래 잡기·얼음땡 등 숨가쁜 달리기 영하 날씨 속 금세 땀방울

지난 3일 밤 광주시 남구 봉선동 유안근린공원 일대에서 ‘경·도(경찰과 도둑)’ 놀이 모임이 열렸다. 경찰과 도둑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이 술래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최근 새해 전후로 운동 열풍과 ‘논디지털 취미생활’ 트렌드와 접목돼 젊은층을 중심으로 ‘경·도(경찰과 도둑)’놀이 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경도는 도망 다니는 ‘도둑’과 이들을 잡는 ‘경찰’로 역할이 나뉘는 술래잡기 놀이다.

지난 2주간 광주 지역에서 추진된 경도 모임만 20여개, 총 참가자는 2500명이 넘는다. 가장 많은 방은 1600여명이 참여하고 있어 인기를 실감케 했다.

지난 3일 밤 광주시 남구 봉선동 유안근린공원 일대에서도 ‘경·도’ 놀이가 열렸다. 모임에 직접 참가해 처음 보는 사람과 어울리며 경도부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마피아 게임’ 등을 하며 스트레스를 잊어버릴 정도로 뛰어다녔다. 오랜만에 ‘동심’에 빠져드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밤 9시께 유안근린공원 일대에 모인 사람은 총 30명으로, 19세 고등학생부터 36세 직장인까지 연령도, 사는 곳도 제각각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인기를 끌었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워밍업을 했다. 출발점인 배드민턴 코트장에 서서 공원 가로등 아래에 선 술래를 바라보니, 침도 함부로 못 삼킬 만한 긴장감이 엄습했다. 술래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외침에 맞춰 참가자들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하다 멈춰서길 반복했고, 술래가 뒤늦게 움찔거리는 사람을 지목하자 곳곳에서 웃음을 참는 소리도 들렸다.

술래는 ‘걸린’ 참가자들과 줄줄이 새끼손가락을 걸어 잠궜다. 참가자들을 구하기 위해 고리를 끊어내자, 배드민턴 코트장 방향으로 전력질주를 하면서 마치 아이처럼 신난 비명이 터져나왔다.

‘경도’를 시작하기 앞서 휴대전화로 QR코드를 찍고 모임에 참가 신청한 뒤 동 구역을 표시한 ‘구역 제한 지도’도 휴대전화로 공유받았다.

경찰 역할 참가자들은 야광조끼나 랜턴을 착용하고 있었고, 게임 시작 직전에는 체력을 보충하겠다며 아르기닌이나 녹용을 챙겨 먹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제한 시간은 10분이고, 터치된 사람만 풀려나요.”, “경찰에 잡히면 양팔로 엑스자를 하고 감옥으로 오시면 됩니다.”

규칙 설명이 끝나자 도둑 역할 참가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공원 한가운데가 순식간에 술래잡기판으로 바뀌며 젊은이들이 이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뒤에서 야광조끼가 번쩍이자 본능적으로 속도가 붙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숨이 턱에 걸렸다. 목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도망치다 수풀 사이에 몸을 숨겨봤지만, “도둑이 여기 있다”는 외침과 함께 다시 추격이 시작됐다.

영하 4도의 추위에도 땀은 목덜미를 타고 흘렀고, 숨을 고르던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뛰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밥 먹은 게 다 꺼진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외투를 벗어던진 참가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후 자정이 다 돼도록 ‘얼음땡’ 놀이, ‘마피아 게임’ 등 놀이가 이어졌다.

이날 모임에 참여한 이연준(31)씨는 “친구 권유로 나왔는데, 평소 노트북만 보며 지내다가 이렇게 뛰어다닌 게 정말 오랜만”이라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숨고 쫓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재밌다. 요즘 사회가 ‘남 신경쓰기 보다는 내 할일만 하자’ 주의라 각박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은데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한도균(26)씨도 “SNS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고 재밌어 보여서 당근마켓에 검색해 들어왔다”며 “같이 해보니까 좀 끓어오르는 게 있다. 현실은 잊고 아무 생각없이 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재미인 것 같다”고 했다.

틱톡·쇼츠 등 자극적인 디지털 콘텐츠에서 벗어나 오감 체험으로 만족감을 느끼려는, MZ세대의 ‘논디지털 취미생활’과도 연결된다는 것이 전문가 해석이다. 또 최근 열풍을 일으켰던 ‘러닝’ 문화의 대체재로서 자리잡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치옥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부원장은 “청년들이 과거 추억의 놀이를 다시 찾는 현상은 최근 일상속으로 스며든 인공지능 기술 등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사회가 일부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는 방증이다”며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여가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이들이 동심을 자극하는 공동체적인 여가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벗어나 활력을 얻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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