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속 ‘두고 온 아이’ 소환했죠”
2023년 12월 18일(월) 19:25
배세복 시인 ‘두고온 아이’ 펴내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잠재 기억 속 오래된 이야기 풀어
제 1회 선경작가상 수상도

배세복 시인

“최신 시의 경향이 ‘상상력’이지만 제 시의 상상력은 현실 쪽에 발을 딛고 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저 자신이 먼저 독자 앞에 진실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죠. 그럼에도 꾸준히 헤쳐 나가야겠지요.”

201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배세복 시인이 최근 시집 ‘두고 온 아이’(상상인)를 펴냈다.

지난 2021년 두 번째 시집 ‘목화밭 목화밭’을 발간한 지 2년 만에 새 작품집을 들고 독자 앞으로 다가온 것.

2년 전 그는 “시에 더 신경이 많이 가고 더 많이 써야만 버틸 수 있다는 것”이란 말로 시 쓰기의 어려움과 창작의 의미를 말했다.

배씨는 얼마전 제1회 선경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경작가상은 시 전문지 ‘상상인’과 선경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했으며, 배 시인의 ‘추녀는 치솟고’ 외 4편이 선정됐다.

현재 충청도에서 국어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관계로 배 시인과는 전화로 시집 발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제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이 이야기들이 보편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러기 위해선 더욱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서사를 끌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사성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구성하다 보니 그 속에 서정이 깃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누구나 유년 시절의 ‘두고 온 아이’가 있을 것이고 제 기억의 편린들로 ‘누구나의 아이’를 불러오려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해되는 대목이다. 누구나 내면 깊은 곳에는 ‘두고 온 아이’가 있을 거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대부분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을 것이며 대체로 외로운 정서에 갇혀 있을 듯했다.

다양한 시편들은 기억의 편린들을 매개로 오래 전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물론 풀어내는 주체는 시적 화자일 게다.

이번 시집에 대해 시인인 황정산 평론가는 “그의 시들은 서정을 통해 서사를 만들고 또한 서사를 통해 서정을 강화한다. 그래서 그의 시들을 읽으면 ‘서정적 서사’ 또는 ‘서사적 서정’이라는 문학 이론서에 없는 새로운 조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평한 바 있다.

배 시인은 서정과 서사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리얼리티라고 하는 사실성에 방점을 두면서도 그것을 서정적인 목소리로 형상화한다. 그 서정성은 상상력과 함께 결합돼 다시 이야기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안개주의보 속에 이정표가 서 있고/ 길 끝에 그가 있다는 표식이다/ 병은 눈두덩을 부벼댔으나/ 발끝은 돌부리를 지나치지 못했다/ 어떠한 사실을 잊을까 봐/ 손바닥에 글씨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병이 놀고 있다/ 짚단을 쌓아논 볏누리를 헤집고/ 그가 고함을 질렀다”

위 시 ‘이정표가 있었고’는 어린 시절 짚단을 쌓아둔 논에서 놀던 때를 묘사한 작품이다.

기성세대들은 한번쯤 경험했음직한 추억과 풍경들이 그려져 있다. 이렇듯 작품집에는 곳곳에 ‘두고 온 아이’들이 존재한다. 시를 읽으면서 독자들 또한 ‘두고 온 아이’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두고 온 아이들을 잘 위로해 주셔야 해요”라고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무심한 듯 건네는 말은 시인 자신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모든 독자들에게 건네는 당부의 말이다.

교사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에 그는 “방학을 이용해 시를 쓴다”고 했다. “방학 기간만큼은 이틀에 한 편 정도는 쓰려고 집중합니다. 그때는 머릿속이 온통 시로 가득 찹니다. 방학이 아닌 기간은 시도 안 나올뿐더러 시보다는 학생들과 교과 수업에 집중해야 하니 방학이야말로 좋은 창작 기간이라 할 수 있지요.”

시인은 지난해에는 시를 많이 쓰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봇물 터짓듯 시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특히 올 여름방학에는 도서관을 다니면서 하루 한 편 쓰고 그다음 날 전날 쓴 시를 고치면서 온통 시 창작으로 방학을 보냈다”며 웃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시집 한권 분량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더니 “다시 시를 쓰는 것”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진부하지만 가장 적합한 답이다. 부지런히 시를 써서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것이다.

“역사 서사시거나 영웅 서사시가 아닌 아주 평범한, 평범하다 못해 시대에 뒤처진 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저도 자못 기대됩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