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미디어아트, 인간과 인간·세계와 세계를 잇다
2023년 12월 12일(화) 20:10 가가
‘백남준;사랑은 10,000마일’
지맵, 미디어아트 특별 전시
비디오·드로잉·아카이브 등
설치작품 ‘안심낙관’ 최초 전시
지맵, 미디어아트 특별 전시
비디오·드로잉·아카이브 등
설치작품 ‘안심낙관’ 최초 전시
“루벤스 시대의 뛰어난 화가는 임금 얼굴을 잘 그리는 것이고 현대에 오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거지. 지루한 일상에 재미를 던져주는 것. 요즈음을 보라고. 우리 주위에 어디 하나 부족한 게 있냐고. 21세기는 살 물건이 없는 시대야. 뭐든지 다 있거든. 그러니까 무언가 할 것을 만들어줘야 하는 거야. 예술가는 욕망의 창조자가 돼야 하는 거지.”
백남준의 어록이다. 1992년 7월 어느 날 뉴욕 맨해튼 작업실에서 했던 말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생전의 백남준이 주옥같은 말들, 삶과 예술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느껴지는 어록들과 만난다.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지맵)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아트 특별전시 ‘백남준; 사랑은 10,000마일’(2024년 3월 31일까지).
전시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네온TV 연작’에서 따온 것으로, 1950~60년대 빈티지 브라운관 TV안에 네온사인과 페인팅 등을 활용해 백남준 예술관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미디어가 물리적 거리나 한계를 초월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아가 사람과 사람, 세계와 세계를 잇는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맵 1, 2, 3관에서 대규모로 진행된다는 데 특징이 있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을 비롯해 드로잉, 아카이브 자료 외에도 무엇보다 국내외 문화예술기관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설치작품 ‘안심낙관’을 현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경호 센터장은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대 개인 소장가인 김수경 우리들그룹 회장, 홍성은 레이니어 그룹 회장에 의한 특별 전시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백남준 미디어아트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자리”라고 말했다.
제1전시실 입구 앞에는 컬러 TV가 놓여 있다. 화면에는 백남준과 관련한 내용이 방영되는데 젊은 시절 작가의 활동 내역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백남준의 대표작들과 조우하게 된다. ‘Green: Meditation’이라는 1전시실 주제는 동양과 서양, 과학기술과 전통적 사유 등 상이한 개념이 매체와 맞닿은 세계에 초점을 맞췄다.
“예술과 기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과학적 장난감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 표현 방식인 기술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일이다”라는 말과 대면한다. 백남준이 1974년 이르멜린 리비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TV아쟁’은 작가가 한국적인 미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주자가 ‘TV아쟁’을 연주하면 충돌하는 전자음이 만들어지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TV 속 화면이 일그러진다. 작가는 음악을 생성하는 과정을 매개로 인간과 기술의 결합을 숙고하게 한다.
가부좌를 튼 부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블루부처’도 이색적이다. 네온사인과 4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작품은 고전적인 부처의 상과 화려한 네온이 맞물려 모순적인 이미지를 창출한다. 푸른색은 전체 작품을 자비, 평화와 같은 불교 사상으로 초점화한다.
제2전시실은 ‘Red: passion’을 주제로 한다. 이곳에서는 백남준의 과거, 다시 말해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자료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백남준의 역사적인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TV’ 기록물을 시작으로 사진을 비롯해 서신, 자료 등이 관객들을 맞는다.
“비디오 테이프는 되감기 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삶은 되감기 할 수 없다. 비디오 테이프 녹화기에는 ‘빨리 감기’, ‘되감기’, ‘정지’ 버튼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시작’ 버튼 하나뿐이다.”라는 문구는 오늘의 우리에게 삶과 예술, 현재의 중요성 등을 일깨운다.
양 벽면에 부착된 작가의 다양한 드로잉 작품은 마치 백남준이 여전히 생존해 있는 듯한 현실감을 준다. 어디에선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스케치를 하고 있을 것만 같다.
푸른색이 상징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코너도 있다. 제3전시실 ‘Blue:Hope’는 자연과 인류가 전자매체를 매개로 공생하는 ‘디지털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췄다. 기술의 구현과 활용에 중심을 두기보다 전자기술을 ‘인간적으로’ 다루자는 취지다.
이 전시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안심낙관’.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치료 받을 당시 주치의에게 감명을 받아 제작했다. 주치의는 그가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고 안심시키는 것은 물론 낙관적 사고를 하게끔 유도했다.
고영재 학예사는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많은 환자들에게 안심낙관의 의미와 삶의 태도 등을 보여주고 있다”며 “오늘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이 이 작품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지맵)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아트 특별전시 ‘백남준; 사랑은 10,000마일’(2024년 3월 31일까지).
전시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네온TV 연작’에서 따온 것으로, 1950~60년대 빈티지 브라운관 TV안에 네온사인과 페인팅 등을 활용해 백남준 예술관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미디어가 물리적 거리나 한계를 초월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아가 사람과 사람, 세계와 세계를 잇는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다.
제1전시실 입구 앞에는 컬러 TV가 놓여 있다. 화면에는 백남준과 관련한 내용이 방영되는데 젊은 시절 작가의 활동 내역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백남준의 대표작들과 조우하게 된다. ‘Green: Meditation’이라는 1전시실 주제는 동양과 서양, 과학기술과 전통적 사유 등 상이한 개념이 매체와 맞닿은 세계에 초점을 맞췄다.
“예술과 기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과학적 장난감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전자 표현 방식인 기술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일이다”라는 말과 대면한다. 백남준이 1974년 이르멜린 리비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TV아쟁’은 작가가 한국적인 미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주자가 ‘TV아쟁’을 연주하면 충돌하는 전자음이 만들어지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TV 속 화면이 일그러진다. 작가는 음악을 생성하는 과정을 매개로 인간과 기술의 결합을 숙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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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부처’ |
제2전시실은 ‘Red: passion’을 주제로 한다. 이곳에서는 백남준의 과거, 다시 말해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다양한 자료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백남준의 역사적인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TV’ 기록물을 시작으로 사진을 비롯해 서신, 자료 등이 관객들을 맞는다.
“비디오 테이프는 되감기 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삶은 되감기 할 수 없다. 비디오 테이프 녹화기에는 ‘빨리 감기’, ‘되감기’, ‘정지’ 버튼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시작’ 버튼 하나뿐이다.”라는 문구는 오늘의 우리에게 삶과 예술, 현재의 중요성 등을 일깨운다.
양 벽면에 부착된 작가의 다양한 드로잉 작품은 마치 백남준이 여전히 생존해 있는 듯한 현실감을 준다. 어디에선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스케치를 하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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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문화예술기관에서 처음 선보이는 설치작품 ‘안심낙관’ |
이 전시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안심낙관’.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치료 받을 당시 주치의에게 감명을 받아 제작했다. 주치의는 그가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고 안심시키는 것은 물론 낙관적 사고를 하게끔 유도했다.
고영재 학예사는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많은 환자들에게 안심낙관의 의미와 삶의 태도 등을 보여주고 있다”며 “오늘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이 이 작품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