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장자수업 (1·2권) - 강신주 지음
2023년 11월 04일(토) 10:00
대붕의 등에 올라탈 수 있는 48편의 이야기

철학자 강신주는 “장자의 정신은 우리 삶의 산소호흡기가 충분히 되리라 확신한다”면서 “‘장자’라는 창문을 열어 맑은 공기를 들이마셔보라”고 권한다. EBS 1TV에서 방송되는 ‘강신주의 장자수업’.

2500여 년 전, 중국대륙은 ‘천하’를 차지하려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전국시대였다. 군주들은 나라의 생존과 경쟁에 쓸모 있는 인재를 찾았고,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리는 철학자들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말을 쏟아냈다. 그 가운데 장자만은 결을 달리했다. 같은 시대 철학자인 혜시는 장자에게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네”라고 말한다. 이에 장자는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에 관해 함께 말할 수 있네”라며 이렇게 답한다.

“세상이 넓고도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발을 디딜 만큼의 땅이네. 그렇다면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땅을 모조리 파고들어가 황천에까지 이른다면, 그 밟고 있는 땅이 사람에게 쓸모가 있겠는가?”

교육방송(EBS)이 1년6개월에 달하는 기획·제작기간을 거쳐 최근 ‘강신주의 장자수업’을 활자와 방송으로 동시에 선보였다.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1999년) 특강에 이은 철학 대기획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20년 전 ‘장자’로 박사학위를 마친 뒤 다시 장자의 사유를 숙고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를 지금까지 여러 권의 단행본으로 펴낸 바 있다.

‘강신주의 장자수업’(1·2권)은 ‘황천 이야기’부터 ‘나비꿈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48편의 이야기로 구성돼있다.

장자는 자신의 사유가 무용(無用)하다라는 당대의 조롱에 ‘쓸모없음의 쓸모’를 말하며 맞섰다. 철학자 강신주는 인문학이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는 요즘 세대를 살피며 “바로 이때, 장자의 당당함은 우리 시대를 향한 죽비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국가나 자본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밥도 나오지 않고 쌀도 나오지 않는’ 쓸모없는 일들을 많이 할수록 우리 삶은 행복하니까요. 시도 글도 그리고 사유도 그리해야만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고전 ‘장자’는 ‘한번 읽고 쉽게 잊히는 흥미 위주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계속 자극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노나라 임금과 바닷새 이야기’, 배를 붙여서 황하를 건너려는 ‘빈배 이야기’, 말 4필이 끄는 수레 1000대를 매어놓을 수 있는 ‘거목 이야기’, ‘나비꿈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독자들을 장자의 세계로 이끈다. ‘소요유’(消遙遊·목적없는 여행)와 ‘오상아’(吾喪我·지금 나는 나 자신을 잃었다) 등과 같은 단어에 장자의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장자는 ‘무용(無用)의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타자를, 타자와의 관계를 고민했던 ‘타자의 철학자’였고, 문맥(context)에 주목했던 ‘문맥주의자’였다. 장자가 던진 메시지는 ‘쓸모과잉 시대’인 현재에도 유효하다. 그때나 2500여 년이 흐른 지금이나 ‘생존과 경쟁’의 논리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라는 책의 부제가 더욱 눈에 들어온다.

자존감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은 ‘남에게 쓸모있는 길을 갈 것인가, 나를 위한 길을 갈 것인가’라는 삶에 대한 물음을 품는다. 철학자 강신주는 “장자의 정신은 우리 삶의 산소호흡기가 충분히 되리라 확신”한다. 그가 건네는 ‘장자’ 48편 이야기를 들은 독자들은 우물 안에서 폴짝폴짝 뛰다가 마침내 우물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개구리, ‘폴짝인’이 되고 싶으리라. 한편 ‘강신주의 장자수업’ 48강(40분)은 매주 월~목요일 자정 EBS 1TV에서 방송된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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