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 - 김학진 지음
2023년 10월 15일(일) 14:00
“무시당한다는 감정은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생겨나고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걸까? 개인의 감정이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분류되는 반사회적 폭력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적절히 통제할 과학적 접근방법은 없을까?”

사회신경과학자인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가 펴낸 신간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최근 지하철역 등지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가 빈발하고 있는 현실에서 누구나 공감할 주제이다. 범인들은 공통적으로 ‘나를 무시해서’라는 이유를 댔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자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며 타인과 견실한 관계를 맺고 삶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하다”면서 “‘자기’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는 행위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삶의 좌표를 찾아가는데 중요한 통찰력을 심어줄 것이다”고 밝힌다. 저자는 흔히 사용하는 ‘자존감’대신 생물학 용어인 ‘자기감’으로 재정의한다.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뇌과학자의 자기감 수업’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눠 최신 뇌과학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자존감과 감정을 분석하고, 뇌과학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한다. 1부(자존감에서 자기감으로)는 ‘자기’(Self)에서 출발해 자존감 형성과 생물학적 기원, 뇌의 생존전략인 ‘알로스테시스’ 기능을 살피고, 2부(뇌가 자존감을 방해하는 방식)는 우울증과 분노조절 장애 등 다향한 자존감 불균형 등에 대해 들여다본다. 그리고 3부(감정을 직면하는 뇌)는 ‘자존감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뇌과학 기반의 방법론인 ‘자기감정 인식’을 제안한다.

뇌과학에 따르면 뇌는 ‘생존과 번식’에 목표를 맞추고 ‘선택과 집중’을 한다. 내부신호(신체)와 외부신호(환경)에 따라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불안과 분노, 편견, 혐오와 같은 감정 또한 뇌와 신체간의 소통장애, 또는 예측오류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신체 항상성이 깨졌거나 앞으로 깨질 수 있음을 뇌가 미리 감지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알람신호”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 관여하는 ‘알로스테시스’ 개념이 생소하다. 저자는 이를 “뇌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의 궁극적 목적을 위해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고 외부 환경을 활용하는 방식”, “생리적 또는 행동적 변화를 통해 안정성이나 항상성을 달성하는 생물학적 과정”으로 설명하며 왜 엄마가 자녀를 동일시 하는지, 왜 사람들이 나보다 낮은 계급을 혐오하는지, 한단계 한단계 이야기를 뇌과학으로 풀어나간다. 이런 ‘알로스테시스 과부하’로 인해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알리는 여러 신체신호를 무시하고, 사회적 보상에만 몰입하는 현상인 ‘인정중독’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차별과 혐오의 언어 또한 신체항상성 불균형때 비롯된다.

저자는 알로스테시스 과부하 상태인 ‘자존감 불균형’을 해소하고 건강한 ‘자기감’을 유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기감정 인식’을 제안한다. 뇌과학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하는 이 책은 ‘묻지마 범죄’가 횡행하는 요즘,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보여준다. 기능적 자기공영 영상기법(fMRI)를 이용해 인간의 신경학적 메카니즘을 연구하는 저자는 앞서 이타적 선택을 하는 이들의 신경학적 기제를 밝히는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2022년)를 펴내 주목받은 바 있다.

<갈매나무·2만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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