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은폐·오도’ 군 의문사 진실 밝혀졌다
2023년 10월 05일(목) 20:50 가가
군사망진상규명위 활동 보고서 ‘광주·전남 출신 피해사례’ 보니
흑산도 故 황영채 병장 ‘자살’→야간 근무 중 총기사고 ‘순직’
12·12 쿠데타 저항 영암 정선엽 병장, 40년만에 ‘순직’→‘전사’
‘과로사’ 故 최승균 소위, 물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한 ‘쇼크사’
‘무단 이탈’ 이정희 이병 “술안주 잡아와” 지시에 저수지서 익사
흑산도 故 황영채 병장 ‘자살’→야간 근무 중 총기사고 ‘순직’
12·12 쿠데타 저항 영암 정선엽 병장, 40년만에 ‘순직’→‘전사’
‘과로사’ 故 최승균 소위, 물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한 ‘쇼크사’
‘무단 이탈’ 이정희 이병 “술안주 잡아와” 지시에 저수지서 익사
흑산도 출신인 故 황영채 병장의 아들 승순씨는 평생을 아버지의 존재를 몰랐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당시 군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믿고 모든 집안 사람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승순씨는 지난 2018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위)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정을 제기하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됐다.
군사망위는 ‘황병장이 야간 사격훈련장에서 가설병으로 근무 중 총기 사고로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인정했다.
국방부는 황 병장에 대해 뒤늦게 순직결정을 했다.
황씨와 같이 군에서 사망했지만 수십 년 동안 사망원인이 은폐 축소된 사건들의 진실이 드러났다.
2018년 9월에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군사망위는 5년간의 활동을 종료하고 지난달 종합활동 보고서를 내놨다.
총 1787건의 진정사건 중 1134건(64%)을 진상규명 결정했고, 203건(11%)을 기각했다. 나머지 88건은 진상규명불능, 151건은 각하, 211건은 종료 결정 및 취하했다.
결정문의 부록인 ‘나의 명복을 빕니다’의 제목의 피해사례집에는 유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있다.
1979년 12·12 쿠데타에 저항하다 숨진 영암 출신 정선엽 병장의 형과 친구들의 사연도 주변을 안타깝게 한다. 정 병장을 기억한 건 국가가 아닌 그와 함께 광주에서 흥사단 활동을 한 고교 동창들이었다. 그의 친구들이 군사망위에 진정을 넣어 40여년만에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됐다.
1984년 화순군의 동복유격장에서 유격훈련 중 사망한 고 최승균 소위의 누나 정희씨도 37년 만에 동생이 숨진 진실을 알게 됐다.
최 소위 사망 당시 군이 내린 결론은 ‘과로사’였다.
하지만 군사망위는 최 소위의 사망의 원인에 대해 ‘유격훈련 과정에서 교관들의 구타·가혹행위로 인한 탈수와 그로 인한 전해질 불균형, 영양 결핍, 전신 폭행에 의한 손상 등에 의한 ‘쇼크사’ 또는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급성 심장사’로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최 소위는 유격훈련 첫날 광주 상무대에서 동복 유격장까지 행군과정에서 발목을 다쳐 선착순 구보에서 낙오하게 됐다.
최 소위는 교관으로부터 강가에서 일명 ‘물빳따’를 당했고 이에 최소위는 순간 반항을 했다. 교관들은 목에 로프를 맨 채 그를 질질 끌고다녔고, 거꾸로 매달아 코에 물을 붓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
결국 최 소위는 며칠 후 숨졌지만 당시 부대에서는 과로 또는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은폐했다.
정희씨는 “당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직후 였고 더구나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왔던 터라 군에 이의제기할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공소시효 만료 때문에 가해자들을 밝히고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5·18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군의문사도 40여 년만에 진실이 드러났다.
1980년 5월 29일 전주시 비행장 활주로 옆 저수에서 사망한 이정희 이병의 사인은 헌병대 수사결과 ‘부대를 무단 이탈해 혼자 수영하다 심장마비로 죽었다’였다.
하지만 군사망위의 조사 결과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부대 인근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설치하다 심장마비(호흡중추마비)를 일으켜 익사한 것’이었다.
광주 등에 투입된 계엄군이 35사단에도 주둔 했는데 이 이병의 항공 대장이 계엄군 장교에게 잘 보이려고 ‘술안줏거리를 마련하라’며 저수지에 들어가도록 시킨 것이다.
이 이병의 진실이 밝혀진 것은 이 이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알고 싶다며 진정서를 들고 이사람 저사람을 찾아 다녔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이병과 같이 근무했던 방위병들을 찾아 다니며 아들의 죽음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자 불안을 느낀 당시 활동대장이 자진 출두해 사실을 털어논 것이다.
이 이병의 동생 금희씨는 “이제라도 형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알게 돼 다행이다 싶다”면서 “좀더 서둘렀다면 온 가족이 형의 이름을 더 다정하게 불렀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그의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당시 군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믿고 모든 집안 사람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승순씨는 지난 2018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위)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정을 제기하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됐다.
국방부는 황 병장에 대해 뒤늦게 순직결정을 했다.
황씨와 같이 군에서 사망했지만 수십 년 동안 사망원인이 은폐 축소된 사건들의 진실이 드러났다.
2018년 9월에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군사망위는 5년간의 활동을 종료하고 지난달 종합활동 보고서를 내놨다.
결정문의 부록인 ‘나의 명복을 빕니다’의 제목의 피해사례집에는 유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있다.
1984년 화순군의 동복유격장에서 유격훈련 중 사망한 고 최승균 소위의 누나 정희씨도 37년 만에 동생이 숨진 진실을 알게 됐다.
최 소위 사망 당시 군이 내린 결론은 ‘과로사’였다.
하지만 군사망위는 최 소위의 사망의 원인에 대해 ‘유격훈련 과정에서 교관들의 구타·가혹행위로 인한 탈수와 그로 인한 전해질 불균형, 영양 결핍, 전신 폭행에 의한 손상 등에 의한 ‘쇼크사’ 또는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한 ‘급성 심장사’로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최 소위는 유격훈련 첫날 광주 상무대에서 동복 유격장까지 행군과정에서 발목을 다쳐 선착순 구보에서 낙오하게 됐다.
최 소위는 교관으로부터 강가에서 일명 ‘물빳따’를 당했고 이에 최소위는 순간 반항을 했다. 교관들은 목에 로프를 맨 채 그를 질질 끌고다녔고, 거꾸로 매달아 코에 물을 붓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
결국 최 소위는 며칠 후 숨졌지만 당시 부대에서는 과로 또는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은폐했다.
정희씨는 “당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직후 였고 더구나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왔던 터라 군에 이의제기할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공소시효 만료 때문에 가해자들을 밝히고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5·18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군의문사도 40여 년만에 진실이 드러났다.
1980년 5월 29일 전주시 비행장 활주로 옆 저수에서 사망한 이정희 이병의 사인은 헌병대 수사결과 ‘부대를 무단 이탈해 혼자 수영하다 심장마비로 죽었다’였다.
하지만 군사망위의 조사 결과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부대 인근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설치하다 심장마비(호흡중추마비)를 일으켜 익사한 것’이었다.
광주 등에 투입된 계엄군이 35사단에도 주둔 했는데 이 이병의 항공 대장이 계엄군 장교에게 잘 보이려고 ‘술안줏거리를 마련하라’며 저수지에 들어가도록 시킨 것이다.
이 이병의 진실이 밝혀진 것은 이 이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알고 싶다며 진정서를 들고 이사람 저사람을 찾아 다녔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이병과 같이 근무했던 방위병들을 찾아 다니며 아들의 죽음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자 불안을 느낀 당시 활동대장이 자진 출두해 사실을 털어논 것이다.
이 이병의 동생 금희씨는 “이제라도 형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알게 돼 다행이다 싶다”면서 “좀더 서둘렀다면 온 가족이 형의 이름을 더 다정하게 불렀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