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출신 위난희 시인 ‘나무가 하는 말, 산책할까요’ 펴내
2023년 06월 12일(월) 14:52
“소녀는 해마다 꽃씨를 정성껏 모았다. 노란 종이봉투에는 삐뚤빼뚤 채송화, 봉선화, 백일홍, 과꽃 등을 적었다. 그리고 겨우내 기다렸다. ‘씨앗을 심을 거야, 봄아!, 어서 오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씨앗이 힘들까 봐, 흙을 체에 쳐서 보드랍게 만들었고 작은 온상을 만들어 투명 비닐을 씌웠다.”

여수 출신 위난희 시인이 첫 시집 ‘나무가 하는 말, 산책할까요’(그림과책)를 펴냈다.

모두 80여 편의 시들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흙과의 교감을 정리한 서정적인 ‘일지’ 내지는 감수성이 풍부한 ‘생태보고서’로 다가온다.

작품은 자연과의 교감, 흙과의 일체감, 나무와 같은 마음 등 생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군가의 마음에 시의 꽃밭이 되어서 잠시라도 고운 이들의 작은 안식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버들강아지 장난칠 궁리하는 개천을 따라/ 인생 한번 환히 피어날 때가 있답니다/ 벚나무 늘어선 강둑을 따라/ 봐요, 푸른 강가 끊임없이 출렁이는 물결을/ 억지로 잔잔해지려 하지 마세요/ 젊은 부부 라일락 향기를 쌓아가는 돌담집/ 아래 배시시 벙그는 석류알 터지는 아침/ 히어리, 귀걸이 주렁주렁 달고/ 기웃거리는 산기슭을 돌아(후략)”

표제시 ‘나무가 하는 말, 산책할까요’는 시집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화자는 자연을 스스럼없는 지인으로 여기는 것을 넘어 ‘산책하고, 팔짱을 끼고, 상처를 기억해주는’ 이심전심의 벗으로 상정한다.

시집에는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도 있지만, 고향 여수의 상흔을 절절하게 형상화한 시도 있다. ‘곡성댁의 애가’, ‘반월댁의 진혼곡’, ‘흰 진달래를 보며’, ‘서교동 그 집, 능소화 피고’ 등의 작품에서 역사적 상흔과 고통의 무게를 읽을 수 있다.

한편 시인인 신원석 평론가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대와 그로 인해 얻은 상처를 안고 살던 시인은 이제 씨앗을 줍는 소녀가 되어 ‘마음껏’,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보기로 한다”고 평한다.

한편 위 시인은 전남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했다. 빈여백 동인, 팔마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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