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1주년에 부쳐-정론 직필의 횃불로 지역 사회 밝히겠습니다
2023년 04월 20일(목) 00:00
호남 언론의 종가(宗家), 광주일보가 오늘로 창간 71주년을 맞습니다. 1952년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타블로이드판 두 개 면으로 고고성(呱呱聲)을 울린 광주일보는 지역 언론의 선구자로서 지역민과 동고동락해 왔습니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 IMF 외환위기, 촛불 혁명 등 격동의 물결을 헤치며 현대사의 증인이자 지역 사회 파수꾼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숱한 도전과 역경에도 광주일보가 호남 대표 언론으로서 위상을 올곧게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지역민과 애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창간을 맞아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이 시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적지 않고, 지금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절실한 과제는 경제와 안보, 민생 전선에 동시다발로 밀려드는 다중 위기의 극복입니다. 지난해부터 고물가·고환율·고유가의 3고(高)에 허덕여 온 우리 경제는 글로벌 경기 둔화 및 금리 상승으로 성장과 고용의 부진이 우려됩니다. 이미 경제의 3대 축인 투자·생산·소비는 물론 수출마저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식량 위기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간 신냉전 구도가 고착화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선제 타격’을 앞세운 군비 경쟁으로 남북 간 충돌 가능성마저 커지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은 저출생 고령화로 인구 감소가 가속화되면서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실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복합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국민적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이 엄중한 시기에 정치권은 극단적 진영 대결로 날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화 이후 최소 득표율 차이로 신승한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일성으로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야당 대표와 만남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채 대화나 타협이 없는 ‘정치 실종’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양곡관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작으로 ‘입법 대 행정’ 대결이 심화될 조짐입니다.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탈원전·문재인 케어 등 전임 정부 정책은 잇따라 폐기되고 있습니다. 가해자인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강제 징용 3자 변제안’과 과로를 부추기는 ‘주69시간 근무제’는 국민적 반발을 부르고 있습니다.

169석의 거대 야당인 민주당 대표로는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이재명 후보가 선출되면서 승자와 패자가 다시 격돌하는 연장전 정치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여야가 당파성과 강성 팬덤에 기대어 서로 적대시하면서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협치는 실종됐습니다.

극단으로 갈린 정치 구조는 국민통합은 물론 복합 위기 극복에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얼키설키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 주체는 결국 정치권입니다. 대통령과 여야가 지금이라도 대화하고 협상해야 합니다. 집단 지성과 초당적 협력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정치 개혁과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4년째로 접어든 코로나19 팬데믹의 암울한 터널을 조기에 벗어나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또 다른 감염병 유행에 대비해 전남 지역 의대와 광주 공공의료원 등 공공 의료를 서둘러 확충해야 합니다. 소득·자산·주거·일자리 양극화로 커진 불평등의 완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발전으로 심화된 지방 소멸 위기 해소를 위해 국정 운영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기회 불균형이 유지되는 한 인구 감소는 막을 수 없는 만큼 과감한 지방 분권과 인구 분산 정책이 절실합니다.

민선 8기 출범 이후 광주시와 전남도는 산적한 현안에 대한 해법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광주시의 복합 쇼핑몰은 신계계와 현대백화점 그룹이 사업 제안서를 제출하고 롯데도 참여를 공식화하면서 유통 3사의 3파전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근대 산업유산인 옛 전남·일신방직 부지는 국제 공모로 마스터플랜 설계를 확정했고, 17년 넘게 답보 상태인 어등산 관광단지는 오는 7월 제3자 공모를 통해 사업자를 정할 예정입니다. 광주 군 공항 이전도 국가 지원을 명시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본궤도에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남도는 신안 섬 주민들의 20년 숙원이었던 흑산공항 건설 예정 부지가 국립공원 구역에서 해제돼 사업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국립 갯벌 세계자연유산 보전본부(신안)에 이어 우주발사체 단(段) 조립장(순천)을 유치하는 등 성과를 거뒀습니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선정에서 광주는 미래 자동차, 전남은 우주발사체 산단 조성이 확정돼 또 다른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광주시와 전남도는 특별지방자치단체 설치를 통한 초광역 협력을 모색하면서도 상생의 상징이자 지역 발전 싱크탱크인 광주전남연구원을 8년 만에 또다시 분리하기로 해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양 시도가 공동 추진하는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도 과제입니다. 여기에는 낙후 지역 발전을 위한 정부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군 공항과 제2차 공공기관 이전 등에 공동 대응하며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지사의 리더십이 절실한 때입니다.

올해로 43주년을 맞는 5·18 광주민중항쟁은 전두환 씨 손자 우원 씨의 사죄 행보로 새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진실 규명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5·18 정신의 헌법 전문 반영을 앞당겨 민주주의의 새 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5·18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특전사 동지회와 성급한 화해를 추진한 데서 비롯된 오월 단체 및 시민사회 간 분열도 조속히 수습해야 합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과 입지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승자 독식 구조로 다수의 사표를 발생시켜 민심과 괴리가 크고,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과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등 폐단이 큽니다. 따라서 지역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현역 의원들부터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지역민들도 지역의 미래를 열어 갈 역량과 비전을 갖춘 일꾼들을 선출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눈여겨봐야 합니다.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열악하지만 연대와 협치, 상생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광주일보는 지난 71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문화 창달과 지역 발전의 기수로서 첩첩한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고 호남 도약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을 것입니다.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진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던 디오게네스처럼 정론 직필의 횃불을 높이 들어 지역 사회를 밝힐 것입니다. 사실 보도와 품격 높은 논평으로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신발 끈을 바짝 졸라맬 것입니다. 올바른 공공 의제를 설정하고 지역 현안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도 배전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디지털 시대 빠르게 변화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쇄신과 차별화를 통해 호남 대표 언론으로서 명예를 지킬 것입니다.

호남인의 진정한 대변자이자 공기(公器)가 되겠다는 초심을 되새기고, 오늘의 시대정신을 직시하며, 100년 역사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겠습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애정 어린 충고와 편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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