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설 대목 웃지 못하는 농심
2026년 02월 08일(일) 21:20
설 앞두고 시름 깊은 전남 농가
냉해·열과현상 겹쳐 생육 부진
지난해보다 가격 25.7% 떨어져
생산비 늘었는데 가격 하락 울상
쌀 농가도 “가격 올라도 이익 없어 올해 농사 계속해야 하나” 고민

8일 오전 나주시 금천면 배 저장창고에서 조성춘씨가 폐기해야 할 멍든 배를 살펴보고 있다.

설을 앞두고 농수산물 가격의 상승세에도, 나주 ‘배’ 가격은 오히려 하락하면서 농민들 시름이 깊다.

8일 만난 조성춘(70·나주시 금천면)씨는 가락시장에 보낼 배를 상자에 포장하는 작업 중이었다. 50년째 배 농사를 짓고 있는 조씨는 “기후위기 때문인지 해마다 물량과 품질이 불안정해지고 배 가격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창고 한 쪽에는 과육이 갈라지거나 멍드는 등 상태가 좋지 않은 배들이 10여개 상자에 가득 담겨 있었다. 지난해 봄 이상저온으로 냉해를 입은 데다 한여름 폭염으로 열과 현상까지 겹쳐 생육 부진이 심했고, 착과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많아 저장 배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 조씨 설명이다.

조씨는 “폐기해야 하는 배는 늘고, 제수용품으로 인기가 많은 ‘특·상품’이나 겨우 평소 수준을 유지하지 중·하품은 가격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명절을 앞두고 가격이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농민들은 지난해 추석 당시 가격 폭락의 여파가 연말·연초까지 이어지며 가격 회복이 더뎠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올해 배 가격은 전년 대비 4분의 1토막 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6일 기준 배(신고) 15㎏ 한 상자 기준 도매가격은 7만 4300원이다. 이는 한 달 전인 지난달 6일(7만 6600원)보다 3% 떨어지고,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 원과 비교하면 25.7% 하락한 수치다. 또 지난해 설을 기준으로 10일 앞선 1월 17일(10만 3000원)과 비교해도 27.87% 낮다. 생산비는 올랐는데 가격은 떨어지니 농민들 속이 좋을 리 없다.

사과(부사) 가격이 지난해 3만8067원에서 지난 7일 기준 5만9821원으로 57% 급등하고, 단감 가격이 1㎏ 기준 3970원에서 3767원으로 소폭(5%)하락한 것과 대비된다.

감귤과 샤인머스켓 등도 가격이 떨어졌다. 6일 기준 감귤 노지(10개) 가격은 476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375원)보다 25.3% 떨어졌다. 포도(샤인머스켓) 2㎏ 가격은 1만4858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8453원) 대비 19.48% 하락했으며, 평년 가격(2만8650원)과 비교하면 48.14% 낮은 수준이다.

나주에서 1만 3200㎡(4000평) 규모로 배 농사를 짓는 김성보 나주배생산자협회 집행위원장도 “지난해 수확 목표를 45t으로 잡았지만 실제 수확량은 32t 수준에 머물렀다”며 “그렇다고 가격이 크게 오르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배 물량 부족으로 가격이 폭등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올해는 가격 형성이 지나치게 낮아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도매상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 6일 찾은 나주배원예농협농산물공판장에서는 상인들이 곧 명절 제수용품을 사러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할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배 가격 자체가 높지 않다 보니 팔아도 남는 게 없을 것 같다는 걱정도 안고 있었다.

30년째 과일 도매상을 하고 있는 김모(여·70)씨는 “지난해 배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물량도 부족한데 가격까지 떨어져 마진을 남기기 어렵다”며 “물가를 고려하면 배 7.5㎏ 한 상자가 7만~8만 원은 돼야 수지가 맞지만, 가격이 더 오르면 소비자 발길이 끊길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정부 정책이 시장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가격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정부가 지정출하제를 통해 물량을 방출하면서 햇배 가격이 급락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올해도 정부가 물량을 대량 방출하면 그나마 낮았던 배 가격마저 떨어질까 두렵다는 것이 농민들 입장이다.

농민들은 지난달 1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경기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설 명절 기간만큼은 지정출하제 물량을 방출하지 말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쌀 농가도 설을 앞두고 쌀 가격은 오르는데 정작 농민에게 떨어지는 이익이 없어 당장 올해 농사부터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수확기 3개월간의 산지쌀값 평균은 20kg기준 5만7700원선이었다.

반면 쌀 소비자가(6일 기준)는 20kg 포대가 6만2456원으로, 지난해 동일 5만4494원에서 14.6% 비싸졌다. 광주의 한 하나로마트 관계자는 20kg 한 포대에 6만4000원에서 7만3000원 사이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쌀 소매가격은 올라 소비자 부담은 커졌지만, 농민들은 “소비자 가격만 높을 뿐, 농민들에게는 별로 돌아오는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강진에서 쌀 농사를 30년간 지어온 윤세주(62)씨는 “쌀을 사먹는 사람들은 비싸다 비싸다 해도 정작 이미 다 팔아버린 농민들에게는 남는 게 없다”며 “소비자들이 비싼 값에 쌀을 구입하는데도, 농민들이 농자재 가격 폭등 등으로 소득을 얻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통계 집계와 쌀 판로 확대, 가공상품 개발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나주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