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피치보다 뜨거운 소설 - 김병운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2022년 12월 01일(목) 00:30 가가
월드컵 열기가 뜨거운 요즘이다. 월드컵에서 우리가 강호였던 적은 없지만, 강호가 아닌 한국이 다른 축구 강국을 가끔 잡아내는 장면은 귀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 귀한 장면에 열광한다. 카타르 월드컵에 나선 국가대표팀은 이전의 국가대표팀과 조금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선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인터뷰에서 ‘우리의 축구’를 하겠다고 말한다. 월드컵 이전 몇몇 평가전에서 도대체 우리의 축구라는 게 무엇인지 의심 어린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본선 조별 리그 두 경기를 치른 후에는 결과를 떠나서 우리 축구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어 많은 이가 뿌듯해 하고 기뻐했다. 그래서 지금의 결과가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우리의 축구를 하기보다는 상대에게 맞춤한 축구를 해왔다. 객관적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그런 축구는 정답처럼 여겨졌다. 예컨대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빠르게 역습을 하는 것이다. 미드필드를 거치지 않고 높게 띄워 문전으로 볼을 보낸 다음 세컨드 볼을 노리는 것이다. 강한 정신력과 투혼으로 상대의 능수능란한 공격을 결연히 막아내는 것이다. 이런 축구 또한 그 자체로 매력이 있고, 좋은 결과를 가져왔던 기억도 많지만, 어쨌든 그것은 나의 정체성을 대놓고 드러내는 주체적인 축구는 아니었다. 상대의 정체성에 나를 맞추어 대응하는 소극적인 축구라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우리가 경기를 주도한다. 선수들의 말처럼, 우리의 축구가 무엇인지 알고, 그 축구를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좋은 결과까지 얻어내면 좋겠지만, 축구는 인생과 같고, 꼭 인생이 내 마음처럼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토록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음에도, 좋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김병운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기다릴 때 하는 말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축구와 월드컵이라는 빌드업을 거쳤다. 다소 멀리 돌아왔나 싶지만 일곱 편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머뭇거리고, 실패하는 과정 그리고 이내 용기를 내고 스스로 빛을 내는 장면들은 피치(경기장) 안에서의 인물들의 움직임과 직관적으로 통했다. 소설의 중심인물들은 대체로 성소수자다. 그들은 사회적 억압과 편견에 맞춤하여 살기도 하고, 그것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하며 유연한 방식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혹은 오롯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주저하지 않는 모습도 있다.
표제작 ‘우리가 기다릴 때 하는 말들’에서 화자인 ‘나’는 문학 강좌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죽음을 두고 작가의 정체성을 대상화한 부적절한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그는 그곳에서 없는 사람이고 싶었으나 또 다른 수강생 ‘안부현’의 일갈과 눈빛이 거기에 제동을 건다. ‘나’는 당혹스러운 체념으로 상황을 넘기며 어쩔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강변하지만, 죽은 작가로 대체된 자신의 정체성이 조롱당하고 부정당한 기억은 상흔이 되어 남을 것이었다. 안부현의 어릴 적 친구 ‘임순영’은 상대적으로 정체성 찾기에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안부현의 부탁으로 아들 연기를 하게 된 나는 임순영을 기다리며 안부현에게서 고향 친구인 임순영을 떠나 급하게 결혼을 택한 사연을 듣게 된다. 안부현은 두려웠던 것이다. “이러다 우리가 뭐라도 될까 봐, 나를 향한 순영이의 마음이 진실하다는 걸 아니까, 내가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원한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그런 건 잘못됐고 비참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임순영은 결코 비참하지 않은 모습으로 안부현 앞에 나타난다. “마지막까지 용기를” 낸다.
카타르는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이자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이다. 그에 반대하기 위해 계획된 무지개 완장과 같은 표현의 자유 역시 억압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을 리 없다. 김병운 소설은 그 있음을 드러내려는 뜨거운 용기이자, 그 있음의 다양성을 조심스레 발설하는 스피커다. 거의 모든 소설은 정체성 드러내기의 과정이고,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것을 알았다면,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그 답을 알았다면, 그 답대로 살아야 한다. 오답임을 알아챘다면 행로를 변경해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소설이 되고 인생이 된다. 어떤가 이것은 꼭 축구와 같지 않은가? <시인>
표제작 ‘우리가 기다릴 때 하는 말들’에서 화자인 ‘나’는 문학 강좌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죽음을 두고 작가의 정체성을 대상화한 부적절한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그는 그곳에서 없는 사람이고 싶었으나 또 다른 수강생 ‘안부현’의 일갈과 눈빛이 거기에 제동을 건다. ‘나’는 당혹스러운 체념으로 상황을 넘기며 어쩔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강변하지만, 죽은 작가로 대체된 자신의 정체성이 조롱당하고 부정당한 기억은 상흔이 되어 남을 것이었다. 안부현의 어릴 적 친구 ‘임순영’은 상대적으로 정체성 찾기에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안부현의 부탁으로 아들 연기를 하게 된 나는 임순영을 기다리며 안부현에게서 고향 친구인 임순영을 떠나 급하게 결혼을 택한 사연을 듣게 된다. 안부현은 두려웠던 것이다. “이러다 우리가 뭐라도 될까 봐, 나를 향한 순영이의 마음이 진실하다는 걸 아니까, 내가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원한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그런 건 잘못됐고 비참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임순영은 결코 비참하지 않은 모습으로 안부현 앞에 나타난다. “마지막까지 용기를” 낸다.
카타르는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이자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이다. 그에 반대하기 위해 계획된 무지개 완장과 같은 표현의 자유 역시 억압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을 리 없다. 김병운 소설은 그 있음을 드러내려는 뜨거운 용기이자, 그 있음의 다양성을 조심스레 발설하는 스피커다. 거의 모든 소설은 정체성 드러내기의 과정이고,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것을 알았다면,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그 답을 알았다면, 그 답대로 살아야 한다. 오답임을 알아챘다면 행로를 변경해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소설이 되고 인생이 된다. 어떤가 이것은 꼭 축구와 같지 않은가? <시인>